4월 벚꽃이 다 질 무렵이었을까. 정확히 언제인지는 생각나지 않지만 그 무렵쯤의 일로 기억한다. 핸드폰에 한 통의 문자가 도착했다. 뭔가 싶어 열어보니 다음과 같은 내용이었다.
“선생님의 성과상여급 등급은 B입니다.”
지난 한 해의 업무에 대해 학교 측이 평가한 성과급 등급을 알리는 문자 통보였다. 교사의 성과상여급은 S등급, A등급, B등급의 3단계로 차등 지급되므로 B는 사실상 가장 낮은 등급이었다.
단지 B여서 속이 상한 건 아니었다. 작년에 나는 중학교 3학년 담임을 맡았다. 어느 학교든 고입 원서로 상대적으로 업무가 많은 3학년 담임이 B를 받는 것은 이례적인 일이다. 교원의 업무는 물건을 사고파는 일처럼 수량화된 성과가 나오는 일이 아니다. 학생을 상담하고 지도하는 일이나 담당 교과의 수업을 진행하는 일 모두 수치로 계량화할 수 있는 양적인 일이 아니라 ‘질적인’ 일이다.
그러다보니 학교에서는 부장 교사는 S등급, 담임 교사는 A등급, 비담임 교사는 B등급을 받는 경우가 많았다. 교무부장, 연구부장, 학생부장을 제외하고는 여타 부장 업무가 담임 업무보다 힘들다고 보기는 어렵지만, 대체로 그런 경향이 많았다. 학교마다 교원 수가 달라서 등급간 인원은 다른데, 담임 교사가 B를 받는 경우는 신규 교사일 때를 제외하고는 많지 않았다. 그것도 경력 15년 이상의 3학년 담임 교사가 말이다. 내 경우 담임을 맡으면서 성과급 B를 받기는 처음이었고, 내가 B를 받았다고 말하니 동료들도 모두 놀라는 눈치였다.
3학년 담임 업무가 그 자체로도 비중이 있는 업무였지만, 그렇다고 해서 내게 주어진 다른 행정 업무가 적지도 않았다. 그 해 우리 학교에서는 사서 교사와 사서 실무원이 모두 없었기 때문에 도서관, 독서교육 및 행사, 교과서 관련 업무에 책쓰기 동아리까지 모두 내가 담당하고 있었다.
먼저 도서관 업무를 한번 들여다보자. 3월 첫째 주와 둘째 주 동안 각종 계획서 기안을 올린다. 도서관운영계획, 인문교육(인성교육) 운영계획, 도서관 선정위원회 구성, 신입생 도서관 활용 안내 오리엔테이션 등이다. 이는 전년도 계획을 참고하면 되므로 그리 어렵지는 않다. 사서가 없다 보니, 전교생의 명단을 도서관 시스템에 맞는 엑셀 파일로 만들어서 시스템 상에서 학생들을 학년 진급 처리하고 신입생을 입력해서 시스템 상에서 대출, 반납 작업이 이루어지도록 하는 일도 품이 좀 들기는 하지만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다. 다만 이 모든 일을 3월초에 담임을 맡아 교실 관리를 하고 수업을 하는 중에 진행해야 하므로 정신이 없는 것이다.
이렇게 기본 계획서를 다 올리고 일 년 간 도서관 시스템이 돌아가도록 제반 정비를 하고 난 뒤에 본격적으로 해야 할 일은 도서 구입이다. 모든 학교는 예산의 3퍼센트 이상을 도서구입비로 쓰도록 규정되어 있는데, J중학교는 일 년 도서 예산이 약 구백만원가량이었다. 학생과 교사들로부터 신청 도서를 받지만 대부분의 책은 담당 교사가 권장도서와 신간도서를 참고해서 입수해야 한다. 좋은 책을 사려면 각종 목록을 뒤지며 검색을 많이 해야 하므로 품이 많이 든다. 이렇게 책을 골라서 출판사와 가격까지 명시한 구입 도서 목록을 전부 작성해서 도서선정위원회를 연 뒤 최종 결재까지 받는 일이 내 일이고 결재 완료 이후에는 행정실이 업체를 선정해서 책이 입고된다.
이 일을 일 년에 세 차례 한다. 전교생에게 일주일가량 도서 신청 기간을 주고 그것을 반영해서 교사가 목록을 작성하고 도서선정위원회를 열어 검토를 거치고 학교장 결재가 나기까지 대개 3~4주 정도 이 일을 붙잡고 있다. 학교평가 규정상 일 년에 두 번 이상 도서를 구입해야 하는데, 학교에 공급되는 책은 약 10퍼센트 할인가로 들여오므로 잔액이 남게 되고 남은 예산을 처리하게 되므로, 대개 일 년에 세 번 정도로 도서 구입이 이루어진다.
독서 행사는 일 년에 세 번 열었다. 학교평가에서는 4가지 행사를 개최하면 점수를 인정받지만 독서 행사 말고 다른 항목으로 점수를 대신해도 된다. 하지만 도서관 홍보를 위한 4월 책의 날 행사와 10월 한글날 백일장은 학생들을 위해 뺄 수 없는 활동이었다. 그리고 저자와의 만남은 교육청에서 예산이 교부되어 오므로 반드시 해야 하는 행사였다.
책의 날 행사는 그 날 도서관을 방문하는 학생들에게 간식을 주고 가벼운 퀴즈를 내거나 연체를 풀어주는 등으로 가장 간단하게 진행하면 되지만, 저자와의 만남은 좀 더 품이 든다. 일단 저자를 섭외해야 하고 섭외가 끝나면 저자의 책을 주문해서 학생들에게 미리 읽히고 행사를 진행한다. 저자의 신상 파일을 받고 저자의 강의료와 원고료를 모두 계산해서 결재를 내는 것도 담당 교사의 일이다. 학교 예산을 교사가 쓰고 행정실에서는 집행만 하므로 모든 계산을 교사가 해야 한다. 저자 섭외에서 행사 진행까지 저자와 이메일을 주고 받으며 강의 내용에 대한 피드백을 하면서 적어도 3주 정도 소요되는 행사이다.
백일장은 학생들에게 시제와 원고지를 나누어주고 행사를 치른 뒤에 전교생 작품을 모두 읽어본 뒤 수상작을 선정한다. 예산에 맞게 상품을 신청하는 기안을 올리면 행정실에서 상품을 사다준다. 그리고 수상자명단을 기안으로 올리고 결재가 나면 상장을 인쇄해서 나누어준다. 대회를 치르고 학생 작품을 읽어보고 기안을 하고 행정실에서 상품을 받아서 상장에 학교장 직인을 찍어서 나누어주기까지 역시 3주 정도 걸린다.
교과서 업무는 각 학년에 필요한 교과서를 나이스 시스템으로 주문하는 일이다. 학년마다 배우는 과목이 조금씩 다르므로 3개 학년의 교육과정 편성표를 꼼꼼이 살펴보아야 한다. 주문이 끝나고 교과서가 배송되어 오면 반별로 부수만큼 정리하여 학생들에게 나누어주면 된다. 문제는 재고 활용이다. J중학교에는 10년치 재고가 쌓여 있었다. 버리자니 아까워서 교사들에게 교과서의 내용이 바뀐 부분이 있는지 일일이 확인한 후 재고를 활용하기로 했다. 먼저 재활용 가능한 5년 이내의 교과서는 남기고 오래된 교과서는 모두 폐기했다. 그리고 과목별로 재고 부수를 다 조사한 뒤에 그 수량만큼 제외하고 3개 학년의 필요한 교과서를 주문했다. 전체 100부 이렇게 주문하면 쉽지만 재고를 활용하려면 교과서별로 주문 부수가 다 달라지므로 좀 번거로운 과정이다. 그래서 재고를 모두 버리고 새 책으로 일괄 주문하는 학교도 있었다. 하지만 국가 예산을 쓰는 일이고 남은 책도 아까워서 재고를 재활용하였고, 예산이 약 오백만 원 정도 절감되었다.
일상적으로 하는 일은 학생들이 반납하는 책을 서가에 제대로 꽂는 일이다. 과학 실무원 선생님이 점심 시간에 도서관은 지켜주지만 학생들이 대출반납을 하는 그 시간 안에 서가 정리까지는 무리였다. 그래서 수업이 비는 시간이면 도서관에서 책 정리를 하는 게 내 일상이었다. 공립학교의 특성상 도서관을 담당하는 교사가 해마다 바뀌므로 ‘버리는’ 작업이 잘 이루어지지 않았다. 다른 학교의 소식지를 비롯하여 소장 가치가 없는 십년치의 간행물이 여기저기 쌓여 있었다. 나는 과감하게 다 버렸다. 게다가 300번대 서가가 부족하여 도서관의 모든 책을 한 칸씩 옆으로 밀어 자리를 확보해야 하는 바람에 2학기에는 서가 절반 이상의 책을 모두 옮기는 작업을 했다.
한 주쯤 쉬어갈 만하면 교육청의 보고 요청이 오곤 했다. 그러니 단 한 주도 업무가 없는 주가 없었다. 그 사이에 수업과 담임 업무, 중학교 3학년 진학 상담과 원서 접수가 있었다. 그 해 우리 반은 운 좋게도 꽤 모범적이었다. 처음부터 구성원이 좋은 편이어서 담임 생활 중 반 학생들끼리 다투지 않은 유일한 해였다. 우리 반 학생이 옆 반 학생에게 맞아서 학폭이 열린 적이 한 번 있었고 학폭 가해자는 없었다. 1, 2학년 때 무단결석이 많았던 한 학생은 3학년 때 잘 적응하고 있었고, 실업계 고교에 지망하는 학생들도 희망하는 학교에 무난히 합격하였다. 내가 수업을 잘하는 최고의 교사는 물론 아니지만, 성실하게 수업을 진행하고 학생들과의 소통도 괜찮은 편이다. 다른 교사들보다 수업 시수가 적지도 않았다. 연간 필수 연수 시간 80시간도 다 채웠다. 교육학 박사 학위도 있다. 그런데 왜 B일까?
학교평가에서 학교에서 마련한 기준안의 점수가 80퍼센트이고 나머지 20퍼센트는 교장과 교감이 평가하기 때문이다. 기준안은 학교별로 조금씩 다른데 담임 교사와 부장 교사간의 점수 차가 클 때 불만의 목소리가 나오는 편이고, 전체 점수 합계를 내면 대체로 엇비슷하다. 그러니 실제적으로 등급을 결정할 권한은 교장과 교감에게 있는 셈이다. 결론적으로 나는 교감 혹은 교장으로부터 평균보다 낮은 점수를 받은 것이다.
굳이 업무를 논하지 않더라도 담임이면 으레 받는 A등급을 내가 받지 못한 이유를 생각해보았다. 첫째는 이 분들이 내가 정말로 일을 안 한다고 생각했을 경우이다. 나는 쉬는 시간마다 학생들이 들락거리는 비좁은 학년실이 산만해서 대부분의 수업 준비를 집에서 하는 편이다. 늘 정시 퇴근을 하므로 일을 안 한다고 생각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이것은 심각한 오류인데, 내가 교과서 재고분을 전수 조사하고, 도서관의 서가를 이동하는 대작업을 한 것을 몰랐다 하더라도, 중3 수업과 담임 업무, 도서관과 교과서 업무의 기본만 수행하는 것으로도 결코 적은 일은 아니기 때문이다. 사서가 없는 학교에서 도서관 업무는 대부분의 교사들이 기피하는 업무이다. 그리고 우리 학교는 도서관 업무가 대부분의 점수를 차지하는 학교평가 인성교육 항목에서도 만점을 받았다.
두 번째로 내가 B를 받은 이유는 교감 혹은 교장의 사견이 개입되었기 때문일 것 같다. 등급 발표가 나기 전인 겨울방학 근무일에 신학기와 관련하여 교감에게 희망 업무를 문의한 적이 있었다. 교감은‘선생님은 학교에 굉장히 비협조적이라고 들었는데’라고 이야기를 시작해서 깜짝 놀랐다. 내 할 일을 다 하고 있는데 뭐가 비협조적일까? 아마도 교감이 오기 전 해에 내가 직원회의에서 학교에 강력하게 이의를 제기한 일 때문이 아닐까 싶다. 그 건은 학교가 명백히 행정상 오류를 저질렀고, 그래서 교장도 내 건의대로 시정할 수밖에 없었던 일이었다. 그밖에 학업성취도 관련 회의에서 교감의 주장에 부정적인 견해를 피력한 것이 있었다. 보여주기 식의 의미 없는 행사나 새로 추가되는 일을 달가워하지 않은 것도 사실이다. 그 모든 인상들이 모여서 내 점수를 구성했을 것이다. 성과급이 B이니 근무평가 점수는 안 봐도 뻔했다. 근무평가 점수가 공개되지 않는 것도 교직 사회의 불합리함 중 하나이다.
학교는 ‘일’잘하는 사람을 좋아한다. 학교에서의 가장 중요한 ‘일’은 수업과 학생 상담이다. 하지만 나는 지금까지 이 ‘일’을 성심껏 했다고 해서 학교의 관리자로부터 어떠한 심리적 지지도 받아본 적이 없다. 관리자는 그 ‘일’을 적게 하더라도 그들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다른 ‘일’, 교육적 필요에 의해서라기보다는 자신의 점수에 도움이 될 것을 더 열심히 챙기기를 원하기 때문이다. 행정 업무의 경우에도 교과서 재활용처럼 국가 예산을 실질적으로 아끼는 일보다 남들 눈에 보이는 큰일을 더 선호하기 때문이다.
성과급이 없어져야 하는 이유는, 성과를 측정할 수 없는 일에 성과를 매김으로써 교직의 사기를 떨어뜨리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성과급으로 교원들을 통제하려고 할 때 사람들은 평가가 적용되는 부분에만 신경을 쓰면서 정작 해야 할 중요한 일들을 소홀히 하게 되기 때문이다. 공무원의 모든 일이 대개 그렇듯이, 교사의 일도 수업이건 행정 업무건 외재적 보상이 아니라, 본인의 양심에 따라 최선을 다하는 풍토가 마련될 때 일이 제대로 돌아간다. 그리고 행정 업무는 현행 교육법에 명시된 대로 교사가 아니라 수업을 하지 않는 교감과 교장이 맡아서 해야 할 것이다. 그것은 그들이 해야 할 일이다. 그들이 할 일을 그들에게 돌려주는 것이 교육개혁의 첫걸음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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