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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슴 조이는 나날 천을산에 하루 이틀 사이에 봄꽃이 한꺼번에 폈다. 날이 갑자기 더워져서이리라. 3월인데 25도를 기록했다. 진달래, 목련, 개나리, 벚꽃이 줄줄이 반기는 길. 피어나는 생명의 몸짓에 심쿵하면서도 한편으론 심장이 조여드는 기분이었다. 봄을 마냥 기뻐할 수가 없었다. 이 숲을 다 태워서 어쩌나 걱정이 내내 따라왔다. 의성에서 안동 넘어 청송, 영덕까지 번진 산불 때문이었다. 화마가 하회마을 입구까지 갔다는데, 청송 주왕산 입구까지 갔다는데… 거길 다 태우면 어쩌나, 어쩌나… 무서워서 뉴스도 보지 않았다. 비극을 확인하는 게 무서워서… 동물들도 다 타죽을 텐데… 숲도 동물들도 어쩌나… 작년 가을, 경주 남산 이무기능선에서 신선대 쪽으로 하산할 때였다. 호젓한 산길을 내려가며 내내 가슴 벅찼다. 아름드리 소나무.. 2025. 3. 27.
봄, 아보카도 싹 3월에 눈보라가 두 번이나 쳐서 사람을 놀래키더니 어김없이 봄이 왔다. 신규교사 시절엔 2월말이면 목련과 개나리가 폈는데.. 봄꽃의 향연은 좀 더 기다려야 할 것 같다. 올해 내게 봄의 전령은 아파트 19층 베란다로 찾아들었다. 작년 가을, 겨울, 아보카도를 잔뜩 주문해 먹던 어느 날. 심심해서 아보카도 씨 3개를 베란다 빈 화분에 심었었다. 원래 봉숭아가 있던 화분인데.. 싹이 날까 반신반의하며.. 그리고 몇 달간 까맣게 잊고 있었는데 세상에나… 3월 중순 딱 되자 화분 2개에서 아보카도 싹이 올라왔다. 물도 안 줬는데 이 녀석들 어떻게 봄인 줄 알았지. 싹이 줄기가 아주 튼실하다.신기해서 한참을 들여다보았다. 식물의 탄생은 동물과 이렇게 다르구나 했다. 씨앗에서 출발하는 건 같지만 이후 전과정이 정말.. 2025. 3. 21.
[소설의 기술 / 밀란 쿤데라] __ 소설가는 실존의 탐구자 소설의 본질이 무엇인가. 소설은 무엇을 이야기하는가. 이 질문에 대해 소설가가 직접 들려주는 이야기는 흔치 않다. 대부분 소설가는 작품으로만 이야기한다. 문학론은 평론가들의 관심사다. 하지만 이 책은 작가가 직접 들려주는 보기 드문 소설론이다. 그 어떤 평론가보다도 소설의 본질을 명징하게 꿰뚫고 있다. 밀란 쿤데라는 세르반테스에서 카프카까지, 자신의 작품도 포함하여 근대를 관통해온 다양한 작품을 경유하면서 소설의 본질에 대해 이야기한다. 제목은 '소설의 기술'이지만 이 '기술'은 'art'의 번역이다. 예술로서의 소설에 대한 이야기라고 보면 되겠다. 단 한 장도 버릴 게 없는 소설에 대한 훌륭한 철학적 고찰. ## 소설가 각자의 작품에는 소설의 역사에 대한 어떤 함축적인 통찰이, '소설이란 무엇인가'.. 2025. 3. 19.
그들은 왜 숭배하는가 1.어젯밤 자기 전 요가를 잠깐 하려고 티비를 켰다. 유툽을 미러링 해서 보려고. 티비 화면이 켜지자 MBC 피디수첩이 나온다. 몇 초 눈길을 응시하다가 끝까지 보고 말았다. 그들이 왜 그렇게 사고하고 행동하는지 도저히 이해할 수 없어서. 대체 무슨 일인가 싶어서. 처음에 나는 물었다. "그들은 왜 윤석열을 숭배하는가." 티비를 보면서 이 질문이 올바르지 않음을 알았다. 이 질문은 이렇게 고쳐야 하리라. "그들은 왜 전광훈을 숭배하는가." 누군가를 숭배하고 싶다면 차라리 이순신 장군이나 세종대왕 같은 위인을 숭배하지, 왜 그런 사기꾼을 숭배하는가. 2.전광훈의 사랑제일교회는 한 주 헌금만 15억에 달하고 그가 운영하는 사업체는 기자가 확인한 것만 13개였다. 집회 음향 시설 담당은 물론 알뜰폰 사업,.. 2025. 3. 19.
한강 <소년이 온다> 감상팁 4가지 새로운 유툽에 도전했다. 여행 말고 문학. 여행 유툽은 얼굴 거의 안 나오는데, 이건 컨셉을 완전히 바꾸었다. 강의식이라 사람이 안 나올 수 없는 것 같다. 바빠서 한 달에 한 개도 업로드하기 힘들지만, 도전에 의의를 두기로. 대본 쓰는 건 어렵지 않았다. 예전에 서평을 써둔 게 있기에 약간만 수정.촬영한 걸 보니 입말에 맞게 더 대폭 수정해야겠다 싶지만, 귀찮아서 걍 패스. 영상 보니 촬영 각도도 마음에 안 들고, 머리 모양도 이상하고, 가까이 찍으니 화면 왜곡도 심하고, 뭐 다 이상하지만 다시 찍을까 생각하니 너무 귀찮아서 걍 패스. 이걸 새로 고치느니 그냥 다음 영상을 잘 찍어야겠다 싶다. 첫 번째 작품은 노벨문학상에 빛나는 한강!!!!줄거리 소개나 해설은 워낙 많아서 컨셉을 다른 쪽으로 잡았다.. 2025. 3. 16.
Ldl을 어떻게 줄이지 작년 하반기엔 이렇게 정성들여아침을 차려 먹었는데..물론 휴직이라 가능했지만..연말, 기대했던 Ldl 콜레스테롤 수치는줄기는커녕 160에서 230으로 폭주. 올해는 걍 대충 떼우고 있다 ㅎㅎ콜레스테롤 검사해서 약 먹어야 하는데중성지방 수치가 낮다고 차일피일 미루고 있다. 무서워서 병원에 못 가고 있네.벌써 반 년 이상 약 안 먹고 개기고 있는데이제는 가봐야 할 때다. 2025. 3. 12.
캄팔라에서 손흥민 우간다 체류시 많이 불편했던 세 가지다. 첫째, 식재료가 다양하지 않아 배불리 먹어도 뭔가 늘 허기졌다. 생채소를 먹을 수 없는 게 특히 아쉬웠다. 여긴 물이 안 좋기 때문에 무조건 익혀 먹어야 한다. 채소 종류도 제한된다. 한국의 쌈채소가 얼마나 그리웠는지..둘째는 물이다. 수돗물을 믿을 수 없어 양치도 생수로 해야 한다. 생수는 루헨게리 산맥에서 오는데 생수 용기가 통이 얇아 미세 플라스틱 범벅일 것 같고 제조과정이 깨끗한지도 믿을 수 없다. 아무튼 철저히 관리하는데도 D는 장티프스에 두 번이나 걸렸다. 외식할 때 감염됐을 확률이 높다. 그래서 난 가기 전에 예방접종을 했었다. 마지막으론 산책을 못하는 것. 선진국과 후진국 거리의 가장 큰 차이는 인도의 존재 유무다. 캄팔라엔 도심 아주 일부를 제외하.. 2025. 3. 12.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 밀란 쿤데라] 다시 읽기 프라하 여행 전에 함 봐야지 하며 집어들었다가 너무 재밌어 단숨에 읽은 책. 90년대 샀던 책들은 노랗게 변색되어 다 정리했는데, 감사하게도 민음사 판 이 책은 내지가 짱장한 채로 내 책장에 여태 꽂혀 있었다. 그리고 깜짝 놀랐다. 이 소설이 이렇게 훌륭한 소설이었다니... 이십대에 읽었을 땐 이 책을 전혀 이해하지 못했었네... 존재의 무거움과 가벼움을 각각 대변하는 테레사와 사비나. 이십대 시절엔 테레사의 무거움이 낯설었다. 그때는 이것저것 고민이 많았지만 내 삶이 존재론적 무게를 짊어진 건 아니었다. 부모님은 아직 건장했고, 대학생인 내겐 나 자신의 앞가림만 문제였을 뿐 타인에 대한 책임감 같은 건 없었으니까. 내 삶이 무거워지기 시작한 건 취업 이후부터고 결정적으로는 결혼 이후다. 마치 늪처럼 .. 2025. 3. 7.
일곱 번째 아프리카 D가 아프리카에서 일하면서 총 7번 아프리카에 다녀갔다. 르완다 왕복 4번, 우간다 왕복 3번. 비행 시간 편도 20시간 이상. 네 번째 다녀갈 무렵 비행기에서 내리면서 결심했다. 다시는 여기 올 일 없으리라고. 장거리 비행이 너무 힘들었기 때문이다. 말 그대로 피곤해 죽을 것 같았다. 비행기가 엔테베 공항 활주로에 도착할 때 속으로 되뇌고 또 되뇌었다. 이게 마지막이야, 진짜 마지막이야. 하지만 인간은 망각의 동물. 몇 달 지나니 그 기억은 희미해지고 이후로 두 번을 더 가긴 했다. 그래도 지난 달, 일곱 번째 길을 나설 땐 컨디션도 안 좋고 내 몸이 도저히 20시간 여정을 견뎌낼 것 같지 않았다. 주위에 조언을 구하니, 은퇴하신 쌤들이 남편한테 다녀가는 것도 젊을 때 한때라고 이럴 땐 비즈니스 타라 .. 2025. 2. 18.
장미의 계절은 지금 계절의 여왕, 5월도 아닌데 우리 집엔 겨우내 장미가 피었다. D가 작년 생일 때 보내온 네 개의 장미 화분에서. 장미꽃은 비싸기 때문에 가성비 최고라 할 수 있겠다. 이게 은근 손이 많이 간다. 하얀 곰팡이가 잎끝에 자꾸 생겨서 퐁퐁을 연하게 탄 물을 분무기로 때때로 뿌려줘야 하고, 물 조절도 잘해야 하고. 장미 화분이 물을 많이 먹는다. 걸핏 하면 식물을 잘 죽였기에 이 장미들은 살리려고 겨우내 특별히 신경을 썼다. 그리고 알았다. 내가 그간 왜 식물을 그토록 죽였는지를. 식물도 매일매일 지켜봐야 한다. 며칠 까먹고 일주일 까먹으면 시들시들 죽음의 길로 가는 것이다. 큰 화분에 담긴 나무가 아니라면. 매일매일 지켜보는 것, 매일매일 관찰하는 것, 식물 가꾸기의 기본이란 걸 알았다. 그리고 재미있는 건.. 2025. 2. 18.
선배 선생님의 퇴임 직장 생활에서 만나는 분들은 친구가 되기 어렵다고들 한다. 맞는 말이다. 특히 요새는 더 그렇다. 나이스 시스템 등장 전에는 쌤들끼리 수다도 많이 떨었는데, 뭐 요새는 말 한 마디 할 시간이 없을 때가 대부분이다. 일 년간 매일 학년실에서 만나도 각자의 컴퓨터만 정신없이 들여다보게 되니… 그럼에도 지나고 보면 몇몇 분과 좋은 인연을 맺게 된 곳이 학교다. 특히 나이를 초월해서 친분이 생기는 점이 좋다. 교육이라는 공통의 화두가 있고, 담임 등 하는 일이 대등하고, 또 사업적인 이해 관계가 없기에 순수한 동료애가 생기는 것 같다. 그분들 중 한 분이 올해 정년퇴임하셨다. 정년퇴임 5년을 남기고 경북으로 시도간교류를 써서 가셔서 교직 마지막 5년을 전교생 몇 십 명인 오지에서 보내셨다. 자기 인생에서 그게 .. 2025. 2. 18.
물신의 시대에 댓글 보고 뭉클~ 유툽에서 우연히 본 적이 있다. 김누리 교수였던가. 철학적 맥락에서 보통 중세 신 중심 사회가 근대 이후 인간 중심 사회로 옮겨왔다고 이야기하는데 그건 틀렸다고. 지금 우리가 사는 세상은 인간이 아니라 ‘물신’을 섬기는 사회라고. 자본이 새로운 신으로 등극한 사회라고. 맞는 말이다.그리고 문득 가슴을 쓸어내렸다. 나 또한 무엇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가를 생각해보니. 영혼인가, 돈인가. 물론 생활인이 우리에게 그 둘을 이분법적으로 나눌 것은 아니지만. 종교는 ‘생사관’과 떼놓을 수 없다. 삶과 죽음을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 한 사람의 인생관과 가치관은 그 부분에서 근본적인 방향이 결정된다. 나는 지금 내가 살아있는 이 시간만을 내 삶으로 여기는가. 내 삶 이전과 이후의 시간까지, 죽음 이후까지 포함하여 내.. 2025. 2. 17.
아프리카의 보름달 밤하늘을 보고 알아차렸다. 오늘이 보름이구나. 적도의 달은 마치 태양을 흉내내듯이 그 밝은 빛이 사방팔방으로 퍼진다. 하늘에 커다란 등불을 걸어둔 것만 같다. 12일에 찍은 사진이다. 달빛에 홀려 하늘에서 시선을 거두지 못하는 밤. 도시 한가운데지만 우주적인 적막이 느껴지는 이 순간을 사랑한다. 고요하고 차가운 흰 빛 속에 눈길이 머무노라면 시공간에 대한 감각이 넓어진다. 지금 이 순간이 아니라 머나먼 고대와 연결된 듯한 느낌. 찰나 같은 인간의 시간이 아니라 우주의 드넓은 시간과 더불어 흘러가는 느낌. 고대인들도 그렇게 느꼈을까. 달빛이 내 눈과 뺨에 머무는 사이, 고대와 현대, 순간과 영원, 인간과 우주가 함께 항해를 시작한다. 2025. 2. 15.
[우리들 / 예브게니 이바노비치 자먀찐] __ 디스토피아 소설의 원조 "병이 심하군요! 영혼이 생긴 겁니다." 영혼? 고대에 사용하다 오래전에 사라진, 이상한 단어. '영혼을 일깨워', '영혼 없이'라는 표현은 종종 사용해도, '영혼'은? "몹시... 몹시 심각한가요?" 내가 중얼대자, 가위가 매섭게 자른다. "치유 불가능." (...)"하지만 영혼이 갑자기 왜, 왜 나오나요? 나는 지금까지 영혼이 없었는데, 갑자기... 왜... 아무도 없는 영혼이 왜 나만...?" (...) "상상력을 잘라내야 한다고. 누구든... 상상력 박멸. 오로지 수술, 철저하게 수술하는 방법으로..." 1.이 훌륭한 소설을 이제야 읽다니... 조지 오웰이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보다 영감이 더 풍부하다며 극찬한 책이다. 그의 '1984'에 깊은 영향을 주기도 했고. 1894년생 자먀찐은 볼셰비.. 2025. 2. 3.
[한 걸음 뒤의 세상 / 우치다 타츠루 외] __ 후퇴하는 사회에서 살아남기 2024년에 출간된 우치다 타츠루 선생의 신간이다. 이분은 어쩜 이렇게 거의 매년 좋은 책을 써내는지 모르겠다. 우리 사회는 전세계적인 변화의 흐름 안에 있지만 서구 사회와는 사회의 속살도, 변화의 맥락도 조금 다르다. 그래서 일본 사회의 변화를 추적하는 우치다 타츠루 선생의 글은 우리 사회를 들여다보는 가장 좋은 렌즈 역할을 해준다. 일본 사회의 정치적, 사회적 변화 과정을 이해하고자 하는 그의 시도는 우리 사회를 앞서 예언하는 척도가 된다. 이번에 선생이 내어놓은 책은 일본 학계와 예술계의 다양한 사람들이 한 꼭지씩 맡아서 쓴 공저이다. 주제는 '후퇴하는 사회'다. 인구 감소, 고령화, 신기술 혁신의 부재 등이 맞물려 일본 사회의 후퇴는 피할 수 없다고 선생은 이야기한다. 그렇다면 후퇴하는 사회에서 .. 2025. 2.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