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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이야기/소설, 시

베로니카 죽기로 결심하다 - 파울로 코엘료

by 릴라~ 2006. 9. 24.

베로니카 죽기로 결심하다
카테고리 소설
지은이 파울로 코엘료 (문학동네, 2008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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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울로 코엘료의 소설은 두 권을 읽었다. <연금술사>와 <피에트라 강가에서 나는 울었네>. 동화처럼 아름다운 이야기지만 생에 대한 묵직한 울림보다는 뉴에이지풍의 가벼움이 느껴져서 전세계적으로 6천 5백만부나 팔린 이 유명한 작가의 소설을 더는 찾지 않았었다. 그런데 동생이 사놓은 <베로니카, 죽기로 결심하다>를 우연히 집어들고는 충격과 감동을 동시에 받았다. 


코엘류의 다른 작품과 마찬가지로 이 책도 커다란 의문으로 시작한다. 그리고 독자들이 전혀 예상치 못한 방식으로 그 의문을 진행시킨 다음, 말미에 이르러서는 매우 간결하고 놀라운 깨달음의 충격을 선사한다. 그는 어정쩡한 결론으로 독자를 괴롭히지 않는다. 소설 제목을 뽑는 솜씨도 놀랍다. (오 자히르, 11분 등을 더 읽어보고 싶다.)


자신의 개성과 욕망, 삶을 대하는 방식을 억압하고 안전한 길로만 걸어왔던 스물다섯의 베로니카는 어느 날 더 이상 살아가야 할 이유가 없음을 발견하고 자살을 기도한다.


그녀의 시도는 실패하고 그녀는 정신병원 빌레트에서 깨어나지만, 그녀의 몸이 견뎌낼 수 있는 날 즉 살 수 있는 날은 단 일주일밖에 남지 않았음을 통보받는다. 그리고 그 일주일간 그녀는 자신이 그토록 강렬하게 느껴본 적이 없는 감정들-증오, 사랑, 살고자 하는 욕망, 두려움, 호기심-을 경험한다. 그녀는 자기 삶에서 무엇이 잘못되었는지를 깨닫기 시작한다.

 

 

“중독된 사람들 대부분이 그 맛을 확인했고, 그 중독 과정을 아메르튐이라고 명명했음에도 불구하고, 비트리올을 치명적인 독으로 거론한 사람이 없다는 건 이상한 일이었다. 우리 모두가 결핵균을 보유하고 있듯이, 모든 인간의 신체는 다소 많은 양의 아메르튐을 지니고 있었다. 발병 원인은 사람들이 흔히 ‘현실’이라고 부르는 것에 대한 공포였다.


외부로부터 어떠한 위협도 침투해 들어올 수 없는 자기만의 세계를 세우려 하는 사람들은 외부 세계-모르는 사람, 낯선 장소, 새로운 경험-에 대한 방어에만 지나치게 치중한 나머지 정작 내부 세계는 방치해둔다. 바로 그 틈을 타서 아메르튐이 내부 세계에 돌이킬 수 없는 손상을 입히기 시작하는 것이다.


아메르튐의 주표적은 의지였다. 그 병에 걸린 사람들은 차츰 모든 욕망을 상실하게 되고, 몇 년이 지나면 자신의 세계에서 벗어날 수 없는 상태에 이르고 만다. 자신이 원하는 현실을 만들어줄 높은 벽들을 쌓느라 엄청난 에너지를 소비해버렸기 때문이다.


외부의 공격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는 데 급급하다 보니, 내적인 발전마저도 한정시켜버린 것이다. 그들은 계속 직장에 나가고, 텔레비전을 시청하고, 교통이 막힌다고 불평을 늘어놓고, 자식들을 낳는다. 하지만 그 모든 것은 조금의 내적 동요도 없이 자동적으로 이루어진다. 모든 것이 통제되고 있으므로.


아메르튐에 의한 중독이 가져다주는 폐해는 증오, 사랑, 절망, 열광, 호기심 같은 정열들 역시 모습을 감춘다는 데 있었다. 일정한 시간이 지나면, 아메르는 더 이상 아무런 욕망도 느낄 수 없었다. 살고 싶지도 죽고 싶지도 않았다. 바로 그것이 문제였다.


만성적인 아메르는 일 주일에 단 한 번, 일요일 오후에만 자신이 병자라는 사실을 의식했다. 이 시간대에는 자신의 증상을 잊게 해줄 일이나 일상적인 잡사가 없기 때문에, 그는 그때에야 뭔가 정상이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그 오후의 평온은 진저리나는 것이었고, 시간은 도통 흐르지 않았으며, 내부에 쌓여 있던 짜증은 거침없이 분출되었던 것이다.


하지만 월요일이 되면, 제대로 쉬지도 못했다느니 주말이 너무 빨리 지나간다느니 불평을 늘어놓으며, 자신의 증상을 곧 잊어버렸다.


사회적 관점에서 볼 때, 이 병의 유일한 장점은 그것이 이미 정상이 되어버렸다는 것이다.”



빌레트에서 베로니카는 자신이 누구인지 이해했고 자신이 두려워 다가가지 못했던 삶의 나머지 영역에 자신을 내맡긴다. 그녀의 삶에서 부족했던 것은 다름 아닌 광기였다. 그녀는 좀 더 미친듯이 살았어야 했고 그 열정을 통해 해방되었어야 했다.

베로니카 덕택에 생에 대한 감각을 되찾고 자신의 진정한 소망-전쟁으로 폐허가 된 사라예보의 고아들을 돌보는 것-을 실현하기 위해 빌레트를 떠나는 마리아는 이렇게 말한다. 세상의 문제는 카오스 즉 질서의 붕괴가 아니라 질서의 과잉 때문이라고. 사회는 점점 더 많은 규칙들로 범람하며 이것들이 삶을 온통 지배하고 사람들은 그 너머의 것은 감히 쳐다볼 엄두를 내지 못한다고. 두려움은 사나운 짐승이나 지진 앞에서만 어울리는 감정인데 사람들은 모든 감정을 공포로 대체해버렸다고.

자연 속에 똑같은 것은 하나도 없다. 개개의 인간들은 모두 유일하며 ‘자신만의 자질, 본능, 쾌락의 형태, 모험을 추구하는 방식’을 갖고 있다. 다른 사람과 닮기를 강요하는 사회적 통제가 사람들로 하여금 자기 생의 음악을 열광적으로 연주하지 못하도록 만들어 버린다.


베로니카의 이야기는 그래서 우리들 모두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이 책의 마지막 장을 덮을 때, 삶이야말로 진정한 신앙 행위임을 깨닫게 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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