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림 들판에 버려져 학의 보살핌을 받은 한 소녀. 마을 사람들은 '오늘' 발견했다고 '오늘이'라 이름을 붙인다. 오늘이는 부모님이 누구인지 자신이 어디서 왔는지 알지 못한다. 마을 사람들은 세상 모르는 게 없는 백씨부인에게 오늘이를 데려가고 백씨부인은 오늘이의 부모님이 이승과 저승의 경계에 있는 신비로운 땅, 원천강을 다스리는 분이라고 알려준다. 그리고 부모님을 만나러가는 오늘이의 긴 여정이 시작된다.
오늘이가 길에서 만난 숱한 존재들, 장상도령, 매일이 처녀, 연꽃, 이무기, 선녀들은 모두 한 가지씩 인생의 큰 고민을 안고 있었다. 장상도령과 매일이 처녀는 각자 외딴 곳에 고립되어 언제 끝날 지 기약 없는 상태에서 책 읽기에 몰두하고 있었고, 연꽃은 수많은 꽃봉오리를 가졌으나 한 송이밖에 꽃을 피우지 못했다. 이무기는 여의주를 세 개나 가졌지만 용이 되어 하늘에 오르지 못했고, 선녀들은 물독에 물이 새어 헛고생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들 모두는 원천강으로 이어지는 길의 한 부분을 알고 있었고 오늘이에게 훌륭한 길잡이가 되어준다. 오늘이는 길에서 만난 여러 사람들 덕분에 무사히 원천강에 도착해 부모님을 만난다. 자신이 누구인지 알게 되었을 뿐 아니라 길에서 만난 사람들의 의문을 풀어줄 지혜까지 얻는다.
다시 찾아온 오늘이 덕분에 장상도령과 매일이처녀는 서로 만나 사랑을 나누고, 연꽃은 처음 보는 사람에게 꽃 한 송이를 선물한 뒤 남은 모든 꽃을 활짝 피운다. 이무기도 여의주를 타인에게 선물하고 용이 되어 하늘에 오르고 선녀들의 고민도 말끔히 해결되었다. 오늘이 또한 이 만남 끝에 자신이 진정 되어야 할 것, 사계절을 다스리는 선녀가 된다.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 길을 떠난 오늘이의 여정은 이렇게 마무리된다.
사람은 왜 사는가. 이 세상에 수많은 근사한 신화가 있지만, 사람이 왜 사는가에 대해 제주도 무속신화 원천강본풀이의 '오늘이'만큼 간명하면서도 감동적으로 보여주는 이야기는 잘 없는 것 같다. 우리 또한 오늘이처럼 이 세상에 그냥 내던져진 존재다. 우리 자신이 누구인지, 왜 사는지, 어디로 가야 하는지 알지 못한 채로. 그런 우리에게 우리 무속신화의 주인공 오늘이는 말한다. 우리는 길 위에서 서로 만나기 위해 태어났다고. 우리는 무수한 만남이 주는 빛으로 인해 우리 자신이 누구인지 알아가고 우리 또한 타인이 그들 자신일 수 있도록 길을 비추는 존재라고.
우리의 '오늘' 속에는 우리가 우리 자신이 되도록 돕는 수많은 만남의 가능성이 담뿍 담겨 있다. 모든 주인공들은 그래서 길을 떠난다. 각자 자기 인생의 주인공인 우리 또한 하루하루 소박하면서도 위대한 만남의 여정 속에 놓여 있다. 그런 우리에게 오늘이 신화는 이야기한다. 낯모를 이에게 내가 가진 가장 소중한 꽃 한송이를 건넬 때, 하늘에 오르려고 그토록 간절히 모았던 여의주를 타인에게 선물로 건네줄 수 있을 때, 우리 또한 꽃필 수 있다고, 용이 되어 하늘에 오를 수 있다고. 네가 꽃피어야 나도 꽃핀다고. 우리는 함께 피는 꽃이라고.
고귀하고 전지전능한 힘을 지닌 위대한 존재로부터 신성을 찾아왔던 서양 신화와 달리 전통적으로 우리 무속신화는 어둡고 구석지고 버림받은 곳에서 신성을 발견해왔다. 부모로부터 버려진 바리데기가 신이 되어 찬란하게 귀환한 것처럼. 오늘이 신화는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간다. 우리 모두는 부족하고 결핍된 존재지만 우리들 각자의 물음과 모색과 발걸음이 겹쳐지면서 삶의 비밀이 밝혀진다. 부족한 우리들이 서로의 길을 비추어줄 때 신성이 피어난다. 우리 조상들이 생각한 '신'의 모습이다.
오늘이 신화는 2004년에 단편 애니메이션으로도 만들어졌다. 교과서에 수록된 이야기와는 조금 다르지만 애니메이션에서는 등장인물들 각각의 표정과 심리 변화가 훨씬 생동감 있게 묘사되었다. 용이 되려고 평생 여의주 여러 개를 끌어안고 지내던 이무기가 위험에 처한 오늘이를 구하고자 여의주를 손에서 내려놓는 장면은 애니메이션에서 가장 아름다운 장면이다.
교육 또한 타인이 알아야 한다고 정해놓은 것을 주입하는 과정이 아니라 각자 자기 삶의 큰 의문을 풀기 위한 만남의 여정으로 구성할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글을 만나고 사람을 만나고 시대와 역사를 만나고 자연과 우주를 만나는 모든 과정은 '너'와 '나'를 꽃피우기 위해 존재하므로. 지금 이 순간 자신에게로 가는 길 위에 있는 수많은 '오늘이'들에게 축복을!
**유투브의 오늘이 애니메이션 https://youtu.be/11J9A-3_6qA
**활동지 파일은 티처빌(쌤동네)에 있어요.
https://ssam.teacherville.co.kr/ssam/contents/19512.ed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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