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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이야기/일상의 기록

이제 그만 먹을래 _ 육수 우려낸 멸치

by 릴라~ 2020. 9. 14.


된장 끓일 때 쓴 육수용 멸치를 버릴 때 알았다. 드디어 내가 한국 입맛에 완전히 적응했구나. 귀국한 지 딱 일 년만이다. 한국에 돌아와서도 그동안 육수 우려내고 남은 멸치를 버리지 않았다. 내장을 발라낸 뒤 간장, 설탕, 고추 넣고 다시 볶아서 반찬으로 먹었다. 그런데 오늘, 국물 다 빠진 멸치가 더는 먹기가 싫다.

아프리카에선 모든 물자가 귀하다. 동남아와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 특히 르완다 같은 작은 내륙국가에서는 더더욱. 바다 생선이 없는 건 그렇다쳐도 유제품도 귀하다. 현지 우유는 특유의 냄새로 도저히 먹을 수 없었다. 요거트도 벨기에 수입품만 먹을 만하다. 그런데 요플레 작은 것 만한 게 5000원쯤 해서 가끔 먹었다. 고소한 서울우유가 얼마나 먹고 싶던지 귀국길에 인천공항에서 젤 먼저 먹은 게 우유일 정도. 다른 음식의 질도 비교가 되지 않는다.

르완다에 체류할 때 한국에서 멸치를 가져갔었다. 국수 먹으려고 멸치 육수를 만들고 남은 멸치를 보고는, ‘아니 이 아까운 걸 한국에선 왜 버렸지?’ 했다. 프라이팬에 달달 볶아 먹으니 어찌나 별미던지. D와 나는 육수 끓이고 남은 멸치가 생길 때마다 이게 웬 떡이야 즐거워했다. 맥주 안주로도 그만이었다. 그랬던 멸치를 이젠 전혀 먹고 싶지 않다. 귀국하고 일 년만의 변화다.

뭐든지 귀하고 부족해야 그 가치를 아나보다. 여긴 맛있는 게 너무 흔하고 많다보니 고마움을 느낄 새가 없다. 그저 당연하다. 아프리카에 여덟 달 살고 와서 달라진 점은 이 모든 풍요로움을 순간순간 의식한다는 거다. 사과. 포도. 복숭아. 멜론. 샤인머스켓. 한 알 한 알 먹을 때마다 이 자연에, 이걸 가꾼 분들께 감사하는 나날이다. 그래도 육수용 멸치는 그만 먹을란다.



** 어제 저녁 어둑발에 황홀하게 번진 노을. 몇 년째 미세먼지로 뿌연 하늘에 익숙했는데 올해는 하늘 보는 게 기쁨이다. 코로나가 준 선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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