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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이야기/수업 이야기

2020 수업 간단평 _ 경험을 다시 경험하기

by 릴라~ 2021. 3. 17.


작년 자료 정리를 이제야 하다니. 늘 그렇다. 핸폰 사진함이 꽉 차서 컴퓨터에 옮길 때에서야 이걸 했었네 한다. 

 

대학 다닐 때 잘 쓰던 말로 '뒷풀이'가 있었다. MT 다녀와서도, 무슨 행사를 하고 나서도 꼭 '뒷풀이'를 했다. 그때야 그저 '뒷풀이'를 핑계로 한 번 더 모여 노는 것에 불과했지만, 어떤 경험을 되짚어본다는 측면에서 참 잘 만든 말이라고 생각한다. 아무리 강렬한 경험이라 할지라도 시간이 지나면 흩어지고 의미가 바랜다. 경험만큼, 경험 이상으로 중요한 것은 그 경험을 다시 경험하는 것이다. 이른바 '성찰'이다.

 

경험을 다시 돌아볼 때, 우리는 그때 막 정신없이 경험하느라 놓쳤던 것들, 그 경험의 본질적인 부분들을 되찾게 된다. 그래서 경험이 온전히 경험으로 의미가 있으려면 언제나 그 놓친 조각과 의미를 하나하나 되찾는 '성찰' 과정이 필요하다. 경험을 다시 경험하는 것, 이것은 교육의 본질이기도 하다. 일상에서 하는 많은 경험을 '교실'에서 다시 재조명하고, 그것을 더 넓은 맥락과 지식 체계와 연결하면서, 경험의 성장이 이루어지게 하는 것이 배움의 본질이다. 쓰고 보니 듀이가 한 말이네. 

 

그래서 한 단원이 끝나면, 그리고 한 학기가 끝나면 꼭 배움을 돌아보는 과정을 가능하면 거치려고 한다. 어떤 작품, 어떤 활동이 내게 의미 있었는지 뽑아보고, 그 작품/활동이 왜 좋았는지, 어떤 것을 좀 더 배웠다는 느낌이 드는지 등등을 써보는 거다. 작년 1학기말엔 코로나로 홀짝 등교가 이루어지고 진도가 늦어져서 마지막 수업 한 시간을 다 빼지 못했다. 그래도 그냥 마치기는 아쉬워 5분 남았을 때 급하게 의미있는 작품/활동 세 가지만 뽑아보았다. 그래서 몇 장의 사진이 남아 있다. (2학기엔 그마저도 하지 못했다. 방학을 3주 남겨놓고 갑자기 등교중단이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 중 1학년 1학기에 다룬 작품 : 오규원 '봄', 윤동주 '새로운 길' '별 헤는 밤', 이오덕 '꿩', 최순우 '부석사 무량수전', 설명문 '아시아의 보물을 찾아서'이다. 코로나로 인한 홀짝 수업으로 계획에 있던 다른 작품은 생략했다. 문법은 품사. 

 

* 1학기 수업활동 :  '한 학기 한 권 읽기', 이와 연계한 수행평가 '서평 쓰기', 시 수업과 연계한 수행평가 '창작시 쓰기'를 했다. 

 

* 2학기에 다룬 작품 : 독도 설명문과 대구와 시지 지역을 소개하는 설명문, 이육사 '청포도', 헤르만 헤세 '나비', 고전신화 '오늘이'. 문법은 우리말 어휘 체계. 

 

* 2학기 수업활동 : 요약하기, 이와 연계한 수행평가 '지역 소개 글쓰기', '한 학기 한 권 읽기', 이와 연계한 수행평가 '동영상 만들기'를 했다. 

 

활동 그 자체를 위주로 한 수업은 지양한다. 항상 작품이나 텍스트 읽기를 기본에 놓고 이를 충실히 해석한 뒤에 이와 연계한 활동을 한다. 시는 1학기에는 윤동주, 2학기에는 이육사 중심으로 수업했고, 소설은 1학기엔 이오덕 선생의 '꿩', 2학기엔 헤세의 '나비'를 했는데, 두 작품 다 처음 수업해보는 것인데 개인적으로 좋았다. '꿩'은 집단 괴롭힘을 당하던 주인공이 용기 있게 행동에 나서는 모습이 매우 인상적이었고, '나비'는 내용은 쉽지만 내면 심리와 양심의 문제를 성찰하게 하는 묵직한 작품이었다. 교육적으로 의의가 큰 작품이고 또 다뤄보고 싶은 작품이다. 문학 외에 작년에 다룬 중요 텍스트는 2학기에 수업한 지역 소개 설명문이다. 

 

활동은 꼭 필요한 것 위주로 구성했다. '한 학기 한 권 읽기'가 학기마다 공통으로 배치되고, 1학기에는 그와 연계한 4문단 '서평쓰기'(감상문 수준이라서 이름을 감상문 쓰기로 바꾸는 게 낫겠다 싶다), 그리고 '창작시 쓰기'를 했다. 책을 읽고 난 소감을 4문단 정도로 논리적으로 글을 전개하는 법을 배우고(1문단 도입 - 2문단 줄거리 소개 - 3문단 핵심 질문이나 인상적인 대목으로 내용 구성 - 4문단 마무리), 창작시는 생활의 경험을 시로 옮기는 작업인데 나름 즐거웠고 좋은 작품도 더러 나왔다. 

 

2학기에도 '한 학기 한 권 읽기'를 하고 이와 연계한 '동영상 만들기'를 했는데 참신한 작품이 몇 나와서 즐겁게 감상했다(동영상 소재는 수업 시간에 배운 작품 포함). 그리고 다른 활동은 지역 소개 설명문 읽기/요약하기 단원과 연계한 '지역 소개 글쓰기'. 자기 경험과 지식을 연결하는 글쓰기 연습이다(역시 4문단으로 1문단-자기 경험, 2문단-지역 전반적 소개, 3문단-자신에게 의미 있는 장소 소개, 4문단-마무리). 

 

결론적으로 매학기마다 책을 한 권씩 읽었고, 4문단 본격 글쓰기를 했고, 창작시 쓰기, 동영상 만들기는 한 학기에 한 번씩만 했다. 못한 것은 수필 쓰기와 경험한 일 말하기. 1학년 교육과정에 끼워넣기엔 시간이 부족했다. 그래도 '말하기'는 교육과정과 별개로 일 년에 꼭 한 번은 하면 좋을 것 같다. 개인적으로는 PPT 등을 동원한 말하기보다 원고를 외워서 말하기만 하는 것이, 원고 작성은 물론 시선, 목소리, 손짓 등에 집중하기가 더 좋아서 교육적으로 훨씬 나은 것 같다. 

 

아래는 1학기 수업 끝나기 직전, 아이들이 의미 있는 작품/활동을 급하게 적어낸 것. 대체로 윤동주의 '별 헤는 밤'을 많이 기억했고, 이오덕의 '꿩'도 꽤 인기가 있었다. '부석사 무량수전'은 아이들이 지루해할 것 같았지만 소재가 워낙 좋아서 수업했는데, 의외로 좋아하는 아이들이 있었다. '한 학기 한 권 읽기', '서평 쓰기', '창작시 쓰기' 등에 다 무난하게 참여한 것 같고, 그 즈음 배운 것이라 그런가 아이들이 대체로 싫어하는 문법 영역의 '품사'가 좋았다는 친구들도 몇 있었다. 

 

나는 중학교 국어시간에 꼭 해야 할 활동은 기본적인 거라고 생각한다. 경력이 쌓일수록 기본에 충실한 것이 최고라고 생각한다. 텍스트 읽기에 동원되는 작업은 어휘 확인, 글과 관련된 경험이나 배경지식 확인, 공감/비판하기, 질문하기, 요약하기, 시라면 비유적 표현 이해, 소설이라면 인물/사건/배경을 중심으로 심리/갈등/주제 분석. 그리고 상상하기. 

 

수행평가와 연계된 활동으로는 독서(한 학기 한 권 읽기), 감상문/서평 쓰기, 소개글 쓰기(자료 조사한 지식/정보를 자기 경험과 연계하여 쓰는 점이 좋음), 시/수필/소설 쓰기, 말하기(경험한 일 말하기, 소개하는 말하기). 동영상 만들기(교육과정에 있고 협업하기 좋은 것이라서 한 번쯤 해볼 만한 것 같다) 정도.

 

이게 기본이지만 이것을 일 년에 절대 다 못하기 때문에 3년에 풀어서 펼쳐놓아야 한다. 이 중요한 몇 가지를 하려면 교과서에서 잡다한 것을 대폭 줄이고, 중요한 텍스트를 몇 편 선정하고, 이 텍스트와 연계한 활동으로 교육과정을 짜야 한다. 중학교 1학년, 시험이 없어서 교육과정을 마음대로 짤 수 있어서 선택했지만, 만족도는 50프로 정도다. 늘 좀 더 고급 텍스트를 다루고 싶은 마음이 스물스물 올라온다. 고교에 가면 시험 때문에 아무것도 못할 수도 있는데(나이 많다고 이제 안 보내줄 수도 있음),,,

 

한국의 학교는 온갖 세부 규정으로 그나마 희미한 창의성마저 고갈시킨다. 학생의 창의력이 문제가 아니다. 교사들의 창의성을 온갖 방법으로 다 막는 게 제일 큰 문제. 수업 간단평을 정리하려 시작한 글이 결국 하소연으로 끝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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