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레리에서 맞이한 첫새벽, 바닥에서 올라오는 한기 때문에 잠에서 깼다. 밤공기가 워낙에 차갑기 때문에 얼굴을 가리지 않고는 잠을 이루기가 어렵다. 하지만 어깨까지 시린 것이 이상했다. 아침에 일어나서 침낭을 살펴보니 오리털이 아니라 그냥 솜 침낭이다. 눈앞이 캄캄했다. 간밤에 피곤해서 바로 누웠기 때문에 몰랐던 것이다.
포카라 현지에서 대여한 침낭이었다. 스스로 빌릴 수도 있지만 엄마가 염려스러워서 좋은 것을 빌리려고 일부러 여행사 매니저에게 대여를 부탁했었다. 내가 일일이 펴서 점검을 했어야 하는데, 한국 여행사라서 믿고 그러지 않은 것이 실수였다.
예전에도 아무 문제없이 좋은 침낭을 빌렸던 터라 지금의 이 상황이 믿어지지 않았다. 매니저가 우리를 속이고 오리털 대신 값싼 침낭을 빌린 것 같아서 화가 치밀어 올랐다. 첫 산행 때는 네팔인이 운영하는 여행사를 이용했는데 이번에는 일부러 현지의 한국 여행사를 찾아갔었다. 엄마의 안전한 산행을 위해서 믿을 수 있는 좋은 가이드와 포터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가이드와 포터는 아주 좋은 분들이었는데, 한국말을 완벽하게 할 줄 알았던 매니저 때문에 큰 사고가 생긴 것이다.
이런 침낭으로 트레킹을 계속할 수 있을지 의문이었다. 히말라야의 겨울은 일교차가 심해서 낮에는 가을볕이지만 밤에는 기온이 뚝 떨어져 한겨울 날씨로 바뀐다. 고산 지역으로 갈수록 기온은 점점 내려갈 것이다. 롯지 벽은 바람만 막을 수 있을 정도로 난방이 전혀 되지 않는다. 지금은 그럭저럭 견딘다 쳐도 사천미터의 강추위 속에서는? 내년이면 육십 줄에 접어드는 엄마 때문에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좋은 침낭 없이는 산행을 계속하기가 어렵겠다고, 산을 그냥 내려가야 할 것 같다고 가이드 아저씨에게 말했다. 그러자 그가 해결책을 제시한다. 장담은 못하지만 촘롱에서 침낭을 빌릴 수 있을 거라고. 그쪽 지역이 워낙 추워서 마을 사람들 중에 오리털 침낭을 갖고 있는 사람이 있다고. 빌릴 수 있는 확률을 물으니 90퍼센트 정도라고 했다. 엄마는 그러면 그렇게 하자고 하신다.
고레파니, 타다파니, 그리고 촘롱. 이박 삼일을 더 가야 한다. 두 밤이나 더 추위에 떨 걸 생각하니 엄두가 나지 않았다. 일정을 단축할 수 있느냐고 묻자 가이드가 고레파니에서 촘롱까지 하루만에 갈 수 있다고 했다. 다만 열 시간 넘게 걸어야 할 거라고. 그래도 침낭을 구할 가능성이 있는 게 어딘가. 경험이 풍부한 가이드라서 가능한 일이었다. 안 해도 될 고생을 하게 되어 속상했지만 마음을 추스리고 고레파니를 향해 출발했다. 날은 흐렸지만 간밤에 휘몰아치던 바람은 다행히 사라지고 없었다.
-> 한 시간 혹은 두 시간마다 롯지가 있어서 따뜻한 차를 마실 수 있다.
요즘 한국 사람들이 부쩍 많이 와서 한글로 쓰인 간판도 더러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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