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명한 등반가 라인홀트 메쓰너의 말이다. 아마 당분간은 그 누구도 이보다 나은 대답을 들려주지는 못할 것 같다. 그 누가 산에 오르는 이유를 딱 집어 말할 수 있을까. 산이 그 깊은 존재감으로 우리를 부르고 있다는 말 밖에는. 그러니 우리는 산이 거기 있어 산에 오르는 것이다.
큰 산은 저마다 특별한 혼을 지니고 있는 것 같다. 그것이 산에 사는 수많은 생명체가 한데 어우러져 내뿜는 아우라 때문인지, 아니면 산의 몸체를 이루고 있는 땅의 기운 때문인지는 알 길이 없다. 아무 것도 없는 바위산에서도 웅대한 기운이 느껴진다는 점을 생각하면, 자연은 우리에게 일정 부분 신비일 수밖에 없으리라.
(산을 오르고 있는 가이드, 포터, 엄마)
세상에서 가장 높고 험준한 산맥 히말라야에 7년만에 다시 왔다. 3200m 푼힐에서 바라본 안나푸르나 산군의 고봉들에 반해 꼭 다시 와야지 했는데 그렇게 하지 못했다. 처음 몇 년은 다른 곳을 둘러보느라 바빠서 오지 못했고, 다음 몇 년은 네팔의 정치적 상황이 불안해서 오지 못했다. 네팔은 국왕 암살 이후에 마오이스트들이 한동안 산을 장악했었다. 지금은 게릴라와 왕족이 협상을 벌여 왕국은 공화정으로 바뀌었다. 정치 상황도 점차 안정을 되찾아가고 있는 중이다.
예전에 푼힐에 올랐었기 때문에 이번에는 나야풀에서 출발해 푼힐을 거쳐 4130m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에 이르는 9일 간의 산행을 계획했다. 흔히 안나푸르나 생츄어리라고 부르는 길이다. 베이스캠프에 7일만에 다녀오는 길도 있지만 예전에 걸었던 길을 지나쳐가고 싶어서 이 길을 선택했다.
산행을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아 귓전에 딸랑딸랑 방울소리가 들린다. 곧이어 한 무리의 나귀떼가 길을 가득 메웠다. 히말라야 인근 지역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풍경. 엄마는 꼭 차마고도에 나오는 말 같다며 좋아하신다. 차가 갈 수 없는 험한 고갯길, 나귀나 말들이 생필품을 실어나른다. 그리고 말조차 갈 수 없는 길은 사람이 직접 져나른다. 참으로 힘든 삶이지만, 무거운 짐을 머리에 이고 빠른 걸음으로 산길을 오르는 네팔 사람들의 모습은 늘 내게 경외감을 불러일으켰다.
자연과 인간이 공존하는 곳, 자연과 인간 그 둘 다를 여행자의 가슴 깊이 새겨넣어 주는 곳, 그곳이 네팔 히말라야다. 뉴질랜드가 인간이 없는 순수한 자연만을 보여준다면 히말라야는 삼천미터 정도까지는 사람들이 빼곡이 들어와서 계단식 밭을 일구고 산다. 산 아래에 살면 병에 걸려 죽기 쉬웠기 때문에 옛날에는 부자들이 다 산에 들어와 살았다고 한다.
히말라야의 흙은 검은 빛깔로 폭신하고 비옥하다. 이 흙이 오랜 세월 이곳 사람들을 먹여 왔다. 산지의 수확량은 늘 부족해서 사람들은 8091m 안나푸르나 설산을 향해 빌었다. 안나푸르나라는 이름은 그래서 풍요의 여신을 의미한다. 사람들은 안나푸르나의 하얀 얼굴을 보며 한 해의 풍요를 기원했다. 안나푸르나, 강가푸르나, 마차푸차레, 연이어 펼쳐져 있는 산들을 보려면 적어도 고레파니(2700m)까지 올라가야 한다.
마을과 마을 사이로 난 끝없는 계단길을 종일 걸어서 첫날을 묵어갈 울레리(2010m)에 닿았다. 골짜기 사이로 얼핏 보이는 설산을 짙은 구름이 꽉 덮고 있다. 저 위로는 눈이 내리고 있는 듯 했다. 바람이 점점 차가워져서 더 있지 못하고 롯지 안으로 들어갔다.
저녁 6시, 온 산이 깊은 어둠에 잠긴다. 난롯가에서 몸을 녹인 후 침낭 속으로 들어갔다. 바람이 쉴새없이 창문을 때리며 밤새도록 몰아치고 있었다.
(울레리의 저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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