델리는 인도 여행의 종착지였다. 그간 인도에서의 익숙치 않은 경험을 가슴에 담고, 네팔 히말라야의 설산을 뒤로 하고 드디어 델리에 왔다.
델리는 수도답게 번화한 모습을 자랑하고 있었다. 특히 뉴델리의 거리는 무척 화려해서 서구의 여느 대도시와 다르지 않았다. 다만 갑자기 대로에 등장하곤 하는 코끼리나 우마차 등이 이곳이 인도임을 때때로 확인시켜 주었다.
델리에서 우연히 마주친 인연, 우리는 회사 파견으로 델리에 머물고 있는 한 친절한 한국분을 만났다. 마침 귀국 날짜가 다가오니 한국이 더 그립다면서 우리를 그의 집에 초대하는 친절을 베풀었다. 덕택에 '바산트 비하르'에서 며칠 머물렀다. 서울로 치면 압구정동 같은 곳이다.
거기는 또다른 인도였다. 우리가 이 땅에서 수없이 마주친 가난과 비참함하고는 담 쌓은 동네다. 서구를 연상시킬만큼 넓은 집들, 깨끗한 거리, 집집마다 문지기가 지키고 서 있고 하인도 많다. 그리 길지 않은 여행 기간 동안 이토록 첨예한 극과 극의 세상을 보고 내 마음이 평안할 수 있을까. 기분이 묘해왔다. 이렇게 다른 세상에 우리가 살고 있는 것이다.
어쩌면 가진 자와 가지지 못한 자의 문제는 이미 진부한 이야기일는지 모른다. 그러나 아직 그 문제는 무척 중요하다. 세계 인구의 반 이상이 인간 이하의 삶의 조건에 처해 있기에 그렇다.
다음 날 우리는 라운드 트립으로 아그라에 들렀다. 그 유명한 타지마할을 보기 위해서다. 소문대로 아름다웠다. 완벽한 대칭 구조, 태양빛을 받아 눈부시게 흰 빛을 내고 있었고, 그 하얀 몸체 뒤로 끝없는 푸른 하늘이 받치고 있었다. 들판에 저 홀로 우뚝 선 대리석의 건물의 자태는 일품이었다.
인공적인 건축물-정확히는 무덤이지만-이 이만큼 아름다운 예도 많지는 않으리라.
델리에 돌아와 마지막 날은 간디와 관련된 명소를 찾았다. 인도가 낳은 세계적인 인물 간디, 내적 실천과 외적 실천이 그만큼 조화된 삶을 산 이도 드물 것이다.
그는 비할 바 없이 철저한 힌두교 신자인 동시에 인도의 독립을 위한 정치적 투쟁에도 탁월한 재능을 보였다. 그의 투쟁의 힘은 그의 종교적 신념에서 비롯되었다. 하지만 그의 어린 시절, 청년 시절은 너무 평범해서 사람들을 또 놀라게 한다. 그런 간디를 변화시켜 준 것은 '진리'에 대한 그의 단순하고도 철저한 신념이었다.
간디가 화장된 라즈 가트에는 참배객이 끊이지 않고 있었다. 암살되는 순간 '헤 람(오, 신이여)'라는 외쳤다는 이야기는 유명하다. 마지막 순간까지 자신에게 성실했던 인물.
다음으로 간디 박물관을 찾았다. 박물관은 규모는 작았으나 간디의 생애에서 시기 별로 주요 사건을 인형으로 만들어 전시해 놓은 전시관을 둘러보면서 나는 그의 삶이 추구한 것이 무엇인지를 알 수 있었다. 한 장면, 한 장면 돌아보며 그의 삶의 감동이 잔잔하게 전해져 왔다.
간디에게 있어 '자립'은 아주 중요한 개념이었다. 지역이 경제적으로 자립하고 정신적으로도 자립하는 것. 그래서 그는 손수 물레질을 했으며 육체 노동과 정신 노동을 조화시키고자 했다. 그는 땅은 만인을 위해서 소출을 내는 것이므로 어느 한 사람이 지나치게 부를 축적하는 것은 죄악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자신이 꼭 필요로 하는 것만을 소유했다. 지구의 재화를 혼자 독점하는 것은 그에게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다.
박물관 앞 비석, 간디의 말이 새겨져 있다. High class와 low class가 없는 인디아를 꿈꾼 간디. 그가 희망하는 세계는 아직 오지 않았다. 아니 그러려면 인도는 먼 길을 걸어가야 할 것이다.
간디의 오른팔인 비노바 바베는 이렇게 말했다. 그 누구도 영원한 해결책을 제시해 줄 수는 없다고. 중요한 것은 간디를 비롯한 사람들이 우리의 눈길을 돌려서 진리와 선을 바라보게 했다는 사실이라고.
여행길에서 우리는 브라만과 확연히 구별되는 무수히 많은 하층민들을 보았다. 간디는 그 불가촉 천민들을 신의 아들, 할리잔이라고 불렀다. 신의 아들....
세계에서 박사가 가장 많은 나라가 인도라고, 기초 과학과 응용 과학에서 막강한 실력을 자랑한다고, 자본주의에 발맞춰 많은 변화를 시도하고 있다고 들었다. 그러나 인도의 진정한 미래는 간디가 희망하는 그 세계에 있다고 나는 믿는다.
또한 그것은 우리들 자신과 이 세계가 함께 걸어가야 할 길이기도 하다.
200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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