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덕 칠보산에 다녀왔어요. 모친이 숲길 걷고 싶다 하셔서. 일주일 전부터 날 풀리니 살짝 우울해하시실래 더 다운되시기 전에 얼른 예약했어요. 아빠 계실 땐 늘 두 분 같이 다니셔서 이럴 때 빈 자리가 커요. 근교 자연휴양림은 만실이고 칠보산만 용케 자리가 있어 예약 성공.
주말에 갑자기 산불 소식. 영덕 위가 울진이라 가겠나 했는데 휴양림사무소에서 그쪽은 괜찮다 해서 출발했어요. 7번 국도에 접어드니 폰으론 ‘울진에 산불 확산’ 알림이 계속 뜨고, 가는 내내 바람이 너무 쎄서 불길이 잡히려나 걱정됐어요. 축산항에서 점심 먹고 칠보산자연휴양림 도착.
몰아치던 강풍이 날 밝고는 잠잠해져서 아침에 숲길을 산책했어요. 남쪽에서 보기 힘든 금강송숲이 시작되는 곳. 울진 올라가면 더 장관이겠죠. 쭉쭉 뻗은 솔숲을 걸으니 이보다 더 좋을 순 없으면서도 이런 좋은 숲이 홀라당 탔겠다 생각하니 맘이 무거웠어요. 나무 이만큼 키우려면 백 년은 걸릴 텐데. 산불은 어떤 경우에도 실수가 아니라 공동체에 대한 테러다 했어요.
칠보산의 매력은 금강송 말고도 또 있어요. 산에서 동해가 보여요. 아침에 휴양림 숙소에서 일출을 봤어요. 해무가 좀 있어서 안 보이려나 했는데 구름을 뚫고 태양이 또렷이 솟아올라서 감사. 잠깐이지만 새로운 세상이 열리는 듯했어요. 새로움, 활기. 해돋이가 선물하는 건 그런 감각인 듯해요.
곧 대선이에요. 한 분은 조금 다른 세상을 기대하게 했고, 그렇치 못할 경우에도 현상 유지 정도는 할 것 같았고… 다른 한 분은 별 기대가 안 생기는 건 둘째 문제고, 노무현을 죽인 자들이 다시 어떤 칼을 휘두를까 그게 실은 염려됐어요. 동네 분위기로는 염려되는 그분이 될 것 같았는데(제 예측이 틀리길 바래요) 산에서 만난 자연의 위대함이 예상되는 모든 실망을 넘어서 마음에 생기를 줬어요. 혹여 정치가 희망을 주지 못해도 내가 만들고 가꾸는 일상의 희망은 여전하다고.
칠보산 떠나 남으로 내려오며 바다뷰가 끝내주는 포항 곤륜산에 올라갔고 해파랑길 조금 걸었어요. 바다 실컷 보고, 이 아름다운 국토에 감탄하고, 구석구석에 쓰레기 버린 넘들 욕하고, 참가자미회 맛있게 먹고 돌아왔어요. 바닷가는 습기 있어 쾌청했는데 내륙으로 올수록 조금 뿌연 감이 있네요. 긴 가뭄이 끝나고 어서 단비가 시원하게 쏟아지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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