섶섬이 보이는 방 2
— 이중섭미술관 이건희 컬렉션
서귀포에서 이건희컬렉션을 보게 될 줄이야. 서울 전시도 예약 힘들어 포기했는데. 갑자기 취소하여 내게 한 자리를 선물해준 귀인께 감사를!
70년만에 귀향한 이건희 컬렉션은 총 12점이다. 그중에 <섶섬이 보이는 풍경>이 있을 줄은 또 몰랐다. 그래, 이 작품이야말로 여기가 제격이지. 섶섬이 보이는 바로 여기 걸려야 하지.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작품이라 감회가 더 컸다.
인터넷 검색에서 본 그림은 바다빛이 짙은 파랑인데 원본은 훨씬 은은하고 부드러운 색감이다. 그림 오른편의 큰 나무 한 그루는 화가가 살았던 초가 앞에 지금도 있는 고목과 비슷하다. 꼭 같은 자리에 있던 나무는 아니어도 비슷한 수종이 아닐까 싶다. 분위기가 닮았다. 6.25 전쟁중이지만 섶섬의 풍경은 화가에게 위안이 되었나보다. 평화롭고 따스한 그림이다.
12점이 다 좋다. 유화 6점, 수채화 1점, 은지화 2점, 엽서화 3점, 골고루 기증되어 작가를 가깝게 느낄 수 있었다. 오래 전 여기 들렀을 때 이중섭 그림이 별로 없는 이중섭미술관에 실망했는데 이제 미술관이 제모습을 갖춘 것 같다. 유명한 ‘황소’는 서울서 전시중이라 못 봤다.
화가의 그림은 어렵지 않다. 동심이 그러하듯이. 태양과 바다와 게와 물고기, 아이들이 한데 뒹구는 그림들. 보는 즉시 그가 목격한 혹은 사랑한 세상의 감촉이 전달된다. 누구나 발견하는 그 순수한 감정 때문에 국민화가일지도. 가족에 대한 깊은 그리움을 담은 <현해탄>은 숨을 찬찬히 내쉴만큼 짠했고 그림마다 적힌 한글 서명은 귀엽고 멋스러웠다. 대다수 작품이 그가 월남한 50년부터 작고한 56년 사이의 몇 년간 나온 것이라 하니 그의 천재성을 잠작할 만하다.
정해진 관람 시간은 50분이다. 작품을 다 보고 미술관 옥상에서 섶섬을 바라보았다. 서귀포 어디서나 보이는 섶섬이지만 이 한 순간의 풍경을 영원한 것으로 남겨준 화가가 이중섭이다. 서귀포의 풍경을 진정으로 소유한 사람은 땅의 소유주나 건물주가 아니라 화가 이중섭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세계를 진짜 소유한 사람은 예술가들이다. 그들만큼 이 풍경을 사랑한 이가 없으므로.
국내여행 이야기/여행 단상
섶섬이 보이는 방 2 — 이중섭미술관 이건희 컬렉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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