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을 낙엽을 쓸며 시작한다. 집 마당이 아니라 아파트 거실에서. 주범은 고추나무다. 씨앗에서 시작한 녀석이 몇 달 새 큰 나무로 자라길래 관상용으로 최고다 했는데, 왜 실내에서 안 키우는지 알았다. 가을이 되니 날마다 잎을 우수수 떨어뜨린다.
집에서 왜 고추를 키우냐고? 전직 농부이자 영혼의 꿈이 농부인 D 때문이다. 고향은 멀고 대구엔 한 뼘 땅도 없는 이 정신적 농부는 집에서 방울토마토를 비롯해 고추, 참외 같은 것만 기른다.
실내용 식물과 달리 정글처럼 금세 무성해지는 이 먹을거리 식물들이 올여름 우리 거실을 푸르게 만들었었다. 마치 밀림 속에 들어온 기분이었는데 방울토마토는 다 정리하고 이제 고추가 거실을 지키고 있다.
고춧잎이 다 떨어지면 늦가을 혹은 겨울이겠지. 아침마다 거실을 쓸며 계절을 실감한다. 고추를 키우기 전까진 몰랐었다. 그래서 빗자루질이 귀찮거나 하진 않다.오히려 흙이 있는 마당을 쓸고 싶어진다. 개나 고양이를 키우는 수고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니고.
계절을 느끼고 나눌 벗이 필요하다면 고추 씨를 한 번 심어보시길. 자그마한 새싹에서 시작해서 거실 천장에 닿을 만큼 금세 자랄 테니까. 가을이면 그 무수한 잎들을 날마다 떨어트릴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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