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엔 많은 게 필요치 않다고 철학자들이 말하지만, 살다보면 부족한 것과 필요한 것 투성이다. 꼭 물질적 욕구를 말하는 게 아니다. 재능이나 마음의 평화 등 정신적으로 아쉬운 게 더 많을 때도 많다. 어찌보면 24시간 인간은 온갖 결핍들을 껴안고 산다. 삶이란 게 그 결핍을 다 메울 수 없는 것임을 이성적으로는 잘 알지만, 쉽게 떨쳐지지 않는다. 그래서 불교에서 그렇게 탐진치를 경계한 게 아닌가 싶다.
가끔 사소한 물건 하나가 단순함의 미덕을 상기시켜준다. 내겐 휴일날 소박한 아침식사가 대개 그런 역할을 한다. 휴일 아침에 갓 구운 고소한 프렌치토스트 한 조각, 그리고 진한 밀크티... 책장이 술술 넘어가면서 지적 자극 가득한 책. 이 정도면 모든 게 다 갖추어진 것 같다.
커피 끊기 위해 사둔 '트위닝스 일글리쉬 브랙퍼스트 티'. 찻잔 반 잔에 우려서 다이소 우유거품기로 살짝 저은 우유 반 잔에 부으면 끝. 꿀 조금 첨가. 카페보다 훨씬 맛있다. 홍차는 커피보다 카페인이 절반이지만 그래도 카페인이 꽤 있어서 오후엔 못 마신다. 아침에만 한 잔.
그리고 모친 댁에서 공수해온 삶은 고구마로 만든 고구마 스프 약간. 물과 우유에 삶은 고구마를 넣어 소금 약간 뿌리고 끓이면 금방 스프가 된다. 여기에 데친 샐러드 몇 조각 더 먹으면 완벽. 통샐러드를 데쳐 놓으면 며칠은 먹는다. 향이 좋아서 더러 먹는다. 양배추, 샐러드, 당근 등을 돌아가면서 먹는다. 한 가지를 며칠 먹으면 질리니깐.
백 가지 사물보다 한 가지 좋아하는 사물이 일상을 풍성하게 한다. 아니, 어쩌면 사물이 아니라 루틴일 수도 있겠다. 루틴,,이란 유행어를 정말 싫어하는데 대체할 말이 잘 없다. 자기만의 소박한 루틴, 그것이 각종 결핍으로부터 우리를 구해주는 게 아닐까 싶다. 루틴 그 자체가 중요한 게 아니라 루틴을 통해서 '시간'의 맛과 향을 조금 음미하게 되는 그런 시간이랄까. 그 시간이 내게 익숙한 사물과 함께 한다면 더 좋을 것이다. 수도사들이 늘 정해진 일과를 지키고 정해진 시간에 기도하는 건 이유가 있는 것이다.
휴일 아침, 내 루틴은 빵 한 조각과 차, 그리고 책 읽는 시간. 밀크티가 있는, 고요하고 풍요로운 아침에 그냥 주절주절...
아래는 지난 달에 먹은 식사 몇 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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