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깜짝 놀랐다. 빨래를 걷으려고 베란다 창문을 열다가 알았다. 드디어 기다리던 손님이 오셨음을. 올해는 못 볼 줄 알았는데...
교실에서 키우던 화분을 집으로 옮겨온 게 8월 어느 날이었다. 그 후 나팔꽃 덩굴손이 베란다 벽에 설치한 줄을 따라 천장까지 올라갔지만, 잎만 무성하고 꽃 소식은 없었다. 모든 건 때가 되어야 하나보다. 여름 다 지나고 가을의 초입에 첫인사를 한다. 기다린 보람이 있었다. 이 작은 꽃이 선물하는 생명의 기운에 난 잠시 몸을 떨며 감탄했다.
자연은 날마다 새롭지만 아파트에선 그 꿈틀거림을 느낄 수 없다. 샷시 때문인지 비가 와도 빗소리조차 잘 들리지 않는다. 그나마 우리 집은 19층 꼭지층이어서 먼 산과 하늘이 내다보이고 그 풍경으로 만족하지만, 소리와 냄새, 촉감은 느낄 수 없다. 늘상 곁에 있는 소리는 차도의 소음 뿐이다.
여느 날과 같은 그런 아침 날, 나팔꽃 한두 송이가 콘크리트 속에서 깨어나 푸르게 기지개를 켜고 있었다. 어떤 명품이 이 성스러움에 비할까. 솔로몬도 들꽃 한 송이처럼 차려입지 못했다는 성서 구절이 옳구나 했다. 사막의 오아시스처럼, 가뭄에 물 한 모금처럼, 콘크리트빛 도시에 청량한 기운을 전해줘서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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