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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에 대한 기억을 잊어버린다면 어떻게 미래에 대한 희망을 가질 수 있겠는가 - 책에서
불과 60장 정도 분량의 소설이 프랑스 문단에서 일 년 넘게 베스트셀러 자리를 지켰다는 책 소개에 이끌려 집어든 책인데, 별 기대 없이 읽었는데, 정말 사랑하지 않을 수 없는 작품이다.
이야기는 1999년 프랑스 사회를 떠들썩하게 했던 한 재판 장면에서 시작된다. 비시 정부에서 일하면서 유대인 학살 등에 관여한 사실을 감추고 전후 프랑스 고위직을 두루 거쳤던 모리스 파퐁에 대한 전범 재판이다. 그 사건을 계기로 작가는 자신의 어릴 적 추억과 아버지와 삼촌, 숙모를 둘러싼 가족사의 비밀을 하나씩 벗겨나간다.
비시 정부 하의 프랑스 법령의 야만성, 그리고 당시 프랑스에서, 축구 경기에서 헌병팀과 맞붙어 이겼다는 이유만으로도 미움을 받아 죽임을 당할 수 있는 프랑스 현실의 야만성이 먼저 우리를 놀라게 하지만...
그러나 이 짤막한 소설은 역사가 만들어낸 사건 속에서 한 인간이 얼마나 고귀할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20대에 레지스탕스 활동을 했던 아버지, 그리고 그들의 그 이후의 삶과 죽음을 담담하게 그려내면서, 그리고 아직 끝나지 않은 사건, 모리스 파퐁의 재판에까지 스토리를 끌고 가면서, '인간의 길'을 우리에게 묻고 있다.
비시 정부 3-4년이 남긴 아픔의 흔적, 그것의 극복 과정을 이토록 진지하고, 생생하고 아름답게 전달하는 소설을 읽으면서 우리 현실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식민 통치 기간 35년이 길었고, 그 이후 친일/독재 정부 기간이 그보다 더 길었으니, 우리가 싸워야 할 것들이 만만치 않을 수밖에 없나 보다. 그 현실의 무게에 비해서 우리 나라 작가들이 너무 가볍다는 생각을 더불어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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