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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위가 인간에게 강요하는 것, ‘두려움과 떨림’
아주 오랜만에 산 문고판 책. 책도 예쁘고 가격도 착하다. 소설 같은 경우는 한 번 통독하면 그만이기 때문에 (같은 책을 열 번 스무 번 반복해서 읽었던 시절은 중학교 때가 끝인 듯. 이반 데니소비치의 하루, 펄 벅의 대지 등은 페이지를 외울 만큼 수십 번 봤던 책이다.) 문고판으로 저렴하게 출판되었으면 하는데, 우리 출판 시장이 그렇게 다양하지는 못한 것 같다.
이 책은 벨기에 출신 작가 아멜리 노통브가 일본 회사에서 일한 경험을 토대로 쓴 자전적 소설이다. 일본 조직 사회의 경직성과 획일성을 유머러스한 문체로 재미있게 묘사했다. 회사의위계 조직이라면 일본이나 한국이나 근본은 비슷하겠지만, 이 소설을 읽으면 일본 쪽이 훨씬 철저하게 순응적이라는 생각이 든다. ‘두려움과 떨림’은 천황 앞에서 일반인이 가져야 할 태도, 혹은 상사 앞에서 부하 직원이 가져야 할 태도를 의미한다.
일본 대기업에서 좌충우돌하며 끊임없이 실수를 저지르는 주인공은 묻는다. 남자들은 그렇다치고 일본 여자들이 어떻게 자살하지 않고 자신에게 주어지는 이 모든 요구들을 견디는지를. 자신에게 좋은 것은 절대 바라서는 안 되고, 사회적 틀에서 조금만 벗어나면 수치스러움을 느껴야 하는 사회. 잘 하는 건 아무 것도 아니고, 못하면 별 볼 일 없는 인간이 되는 구조. 행복보다는 타인의 시선에 신경 써야 하고 윗사람 앞에서 자기를 죽여야 하는 구조. 외부로부터 끊임없이 강요되는 불명예, 수치, 불명예, 수치... 저자가 보기에는 기본적인 자유가 박탈된 사회다.
그리고 이 모든 터무니없는 금기와 모욕 속에서 자살하지 않고 살아가는 일본 여성들에게 경탄을 보낸다. 일본 여성들의 아름다움, 일본적인 미가 비탄 속에서 피어난 초인적인 용기의결과라는 것이다. 작중 인물인 모리 후부키는 유럽인의 입장에서 본 일본 여성의 사회적 현실과 성격 구조를 대변한다.
그리 길지 않은 분량이지만 일본 사회 특유의 권위주의와 회사내 주종 관계를 탁월하게 보여주는 소설이다. 안타깝게도 우리 사회 역시 소설에 묘사된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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