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문을 함에 있어서
니체에 매혹되는 사람
니체를 이용하는 사람 (사람 이름은 그냥 하나의 예임)
이 둘 사이에는 건널 수 없는 벽이 있는 것 같다. 견해는 비록 같을지라도 그보다 더 근본적인 차이, 삶에 대한 태도의 차이가 존재한다. 니체에 매혹되는 사람과 니체를 이용하는 사람의 거리는 멀지만, 오히려 니체에 매혹되는 사람과 칸트에 매혹되는 사람이 더 가까울 것 같다.
매혹되는 사람은 그것이 자신에게 구원이 되기 때문이다. 구원이란 말이 너무 무겁다면 의미나 가치로 바꾸어도 좋으리라. 어떤 인물이나 사상에 매혹되는 까닭은 그것이 내 정신의 자양분이 되고 삶과 실천의 영감이 되기 때문이다. 그것은 인격적인 만남이고 우정이며 사랑이다. 그것은 우리 삶에 깊은 흔적을 남긴다.
이용하는 사람에게 어떤 사상은 사물의 위치를 차지한다. 그는 아마도 사회적 의미에서 강한 사람일지도 모르겠다. 그의 내면이 자신에게 다가오는 타자의 정신을 필요로 하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가 어떤 것에 매혹되기 위해서는 얼마간의 약함이 필요할지도 모르겠다. 이 약함은 심리적 약함이라기보다는 자신의 결핍에 대한 인식 혹은 자신의 내면에 타인이 찾아올 수 있는 자리를 비워두는 것, 먼 곳에서 찾아올 타자에 대한 그리움과 기다림의 태도 등일 것이다. 그러한 여백이 있느냐 없느냐가 가치관의 차이를 발생시키는 중요한 요인이 되는 것 같다.
니체에 매혹되는 사람
니체를 이용하는 사람 (사람 이름은 그냥 하나의 예임)
이 둘 사이에는 건널 수 없는 벽이 있는 것 같다. 견해는 비록 같을지라도 그보다 더 근본적인 차이, 삶에 대한 태도의 차이가 존재한다. 니체에 매혹되는 사람과 니체를 이용하는 사람의 거리는 멀지만, 오히려 니체에 매혹되는 사람과 칸트에 매혹되는 사람이 더 가까울 것 같다.
매혹되는 사람은 그것이 자신에게 구원이 되기 때문이다. 구원이란 말이 너무 무겁다면 의미나 가치로 바꾸어도 좋으리라. 어떤 인물이나 사상에 매혹되는 까닭은 그것이 내 정신의 자양분이 되고 삶과 실천의 영감이 되기 때문이다. 그것은 인격적인 만남이고 우정이며 사랑이다. 그것은 우리 삶에 깊은 흔적을 남긴다.
이용하는 사람에게 어떤 사상은 사물의 위치를 차지한다. 그는 아마도 사회적 의미에서 강한 사람일지도 모르겠다. 그의 내면이 자신에게 다가오는 타자의 정신을 필요로 하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가 어떤 것에 매혹되기 위해서는 얼마간의 약함이 필요할지도 모르겠다. 이 약함은 심리적 약함이라기보다는 자신의 결핍에 대한 인식 혹은 자신의 내면에 타인이 찾아올 수 있는 자리를 비워두는 것, 먼 곳에서 찾아올 타자에 대한 그리움과 기다림의 태도 등일 것이다. 그러한 여백이 있느냐 없느냐가 가치관의 차이를 발생시키는 중요한 요인이 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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