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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이야기/일상의 기록

인간을 믿는다는 것

by 릴라~ 2009. 10. 30.

사람을 믿는다는 것, 그것은 무엇을 의미할까. 다수의 사람들이 자기 삶에 일어난 몇 가지 사건을 계기로 인간에 대한 믿음을 상실하는 것 같다. 그 경우 사람은 자신에게 믿을 수 없는 대상이 된다. 또한 어떤 사람들은 인류가 이루어놓은 것들, 전쟁과 비참, 고문과 기아, 갖가지 악행들을 보고 인간에 대한 믿음을 상실한다. 아우슈비츠가 대표적 예가 될 것이다. 인류의 미래는 어둡고, 그것은 희망을 가질 수 없는 대상이 된다.

요즘 드는 생각은 믿음이 없는 사람이 무언가를 이루는 것을 보지 못했다는 것이다. 앎 그 자체는 실천을 낳지 못하지만, 믿음은 강한 행동을 낳는다. 기독교인들의 천박한 실천은 별로 바람직한 것은 아니지만, 암튼 믿음은 행동하는 힘을 낳는다는 것은 사실이다. 아는 것만으로는 그 어떤 것도 바꿀 수 없다.

노무현과 다른 정치인들의 차이점이라면, 노무현은 크게 사람을 믿었다는 것이다. 그에게 사람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힘이 있어서일 수도 있지만, 아무튼. 그렇게 사람을 믿은 사람들이 변화를 이끌어내었다. 인류 역사 속에 무수히. 그들 삶의 실패와 좌절의 크기가 보통 사람들보다 더 적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믿었고 행동했다.

사람을 믿는다는 것, 그것은 한 사람 한 사람의 눈에 보이는 말과 행동을 고스란히 믿는다는 뜻은 아닐 것이다. 사람을 믿는다는 건 저마다 부족한 사람들이 함께 모여 만들어가는 대화의 장을 믿는다는 것이다. 토론과 합의의 과정을 믿는다는 것이고, 그 결과 더 나은 무언가를 우리가 발견할 수 있다는 것을 믿는다는 것이다. 결국 역사를 믿는다는 것이고, 더 나은 역사의 가능성을 믿는다는 것이다. 일시적으로는 퇴보할지라도 궁극적으로 역사의 발전을 신뢰한다는 것. 크게 발자취를 남긴 사람들은 사람을 믿고, 불확실한 대중을 믿고, 실천하고 나아간 이들이었다.

결국 그것은 우리 내면의 여러 불확실함과 갖가지 상반되는 충동들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뜻과 실천 의지를 믿는다는 말이다. 인간을 믿는다는 것은 세상을 믿는다는 것이고, 그것은 역사를 믿는 것이자, 자기 자신을 믿는 것이다. 그것은 근거가 있는 믿음이며, 역사를 통해 입증된 믿음이다.

인간을 전혀 신뢰하지 못하는 사람은 아마도 좋은 사람을 한 번도 만나보지 못한 사람, 좋은 세상에 대한 가능성을 조금도 맛보지 못한 사람이 아닐까. 신뢰의 회복이 내게 필요한 것 같다. 널리 인간을 믿고, 세상을 믿고, 자신을 믿어야겠다는 생각, 그리고 나 자신 신뢰를 주는 사람이 되어야겠다는 생각을 이 가을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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