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 자유공부의 주제는 소로우. 박홍규 선생님이 들려주는 소로우는 제대로 된 직업 한 번 가져본 적 없고, 평생 책도 안 팔린, 요즘 말로 하면 가난한 비정규직 소로우였다. 소로우 전집이 미국에서 30권 정도로 출판되었는데 그것을 읽어본 결과라고 한다. 한국 사회가 소로우를 지나치게 성스러운 사람, 속세를 벗어난 사람으로 묘사하는 것의 오류를 지적하고, 소로우의 참모습을 다시 보여주고자 했다. 그는 고행하는 수도승이 아니라 소박한 사람이었고, 제멋대로 산 아웃사이더이자 아나키스트, 자유인이었다.
간디, 마틴 루터 킹 등이 소로우로부터 비폭력의 영감을 받았다고 했는데, 선생은 여기에도 의문을 제기했다. 소로우는 비폭력주의자라기보다는 반국가주의자라는 것. 당시 브라운 대장 등이 펼친 노예반대운동에 소로우도 동참했는데, 브라운 대장은 무장투쟁을 한 사람이라고 한다.
간디의 비폭력투쟁은 인도의 상황에만 적합했을 뿐이라는 것이 선생의 견해다. 당시 인도에도 폭력 저항운동이 끊임없이 일어났고 영국은 사형, 고문 등 무자비한 방법으로 탄압했다. 간디가 살아남은 이유는 영국 정부가 히틀러와 달랐기 때문이기도 하고(유태인들이 비폭력으로 저항한들 다 잡혀감), 또한 영국이 간디 자체를 처음에 그다지 대수롭지 않게 여겼기 때문이기도 하다고 들었다.
우리나라 일제강점기의 경우만 보아도, 비폭력투쟁이 성공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박노자 등이 김구 선생을 비판하면서 비폭력 투쟁이 나을 거라고 말하지만 그건 무지에서 비롯된 허황된 생각이다. (다만, 박홍규 선생은 일제하 독립운동의 주류를 이승만도 김구도 아닌 다른 무장투쟁 계열로 생각하고 있는 것 같은데, 이건 잘 모르겠다. 나는 김구의 임시정부 편인데, 좀더 공부가 필요할 것 같다.)
박홍규 선생의 마지막 말씀, 소로우처럼 자발적 왕따, 자발적 소외자, 자발적 아웃사이더로 사는 사람이 많은 세상을 자신이 꿈꾼다고, 그런 세상이 더 아름답지 않냐고, 그런 선택이 많아졌으면 한다는 말씀이 마음에 깊이 꽂혔다. 대학 교수가 이런 말을 한다는 게 쉽지 않다. 너무 반가운 말씀이었다. 우리가 스승으로부터 듣고 싶은 말은 이런 솔직한 인생 철학이 아니겠는가.
이번 학기 강의 주제가, 소로우, 간디, 일리히, 사르트르 등인데, 모두 내가 대학 시절에 좋아한 사람들이다. 이 강의를 들으면서 확실히 알게 되었다. 공무원 생활 십년만에 내가 완전히 사회화, 관료화, 획일화되었음을. 육십이 가까운 연세에도 사회의 모든 권위에 의문을 제기하는 선생의 태도가 인상 깊었다(나도 옛날엔 그랬는데 벌써...흑흑) 누군가 선생님의 견해에 공감하기 어렵다고 말하자, 우리가 꼭 '일치'할 필요가 있냐고, 전혀 그럴 필요가 없다고 대답하셨다. 자신과 같이 생각하는 사람이 좀 더 많아지면 당연히 좋겠지만, 모두가 그런 세상, 그건 또 다른 독재라고.
이 강의를 들으면서, 내 마음이 좀 더 젊어지는 것 같아서 참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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