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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이야기/일상을 적다

우리에게 한 바가지의 '마중물'이 있다면

by 릴라~ 2009. 9. 20.


 

교육이란 무엇일까. 얼마 전 아주 매혹적인 비유를 들었다. 이해찬님이 연설 중에 지나가면서 한 말씀인데... 하나를 주입하면 하나를 토해내는 것은 교육이 아니라고, 교육은 펌프에서 물이 잘 나오지 않을 때 물을 끌어올리기 위하여 붓는 ‘마중물’과 같다고 했다. 한 바가지를 부으면 열 바가지가 절로 철철 넘쳐흐르는 것, 그것이 교육이라고.

없는 것을 넣어주는 것이 아니다. 그가 본래부터 지니고 있던 것을 끌어내는 것이 교육이다. 그가 지니고 있으나 미처 발견하지 못한 것, 그것을 욕망이라 부를  수도 있고, 재능 혹은 잠재성이라고 부를 수도 있으리라. 하나를 입력하고 하나를 뽑아내는 것이 아니라, 그의 내면을 적시는 한 바가지의 '마중물'을 붓는 활동, 그런 가이던스. 그렇게 우리를 매혹시키고 알 수 없는 열정이 우리 안에서 솟구쳐오르게 하는 것.

그런 일은 만남에 의해 일어난다. 그래서 교육은 만남이다. 스피노자식으로 말하면 자신의 내적 본성과 부합하는 좋은 관계를 통해 자신의 역량의 상승시키는 것.
그 만남은 자연일 수도 있고, 역사일 수도 있고, 위대한 작품, 부모나 스승, 벗, 혹은 삶에서 겪은 어떤 특별한 체험일 수도 있다. 내게는 노무현도 그런 만남 가운데 하나였다. 교육은 그가 지닌 좁은 환경의 제약을 벗어나서 그가 자기 내면에 지니고 있었던 더 큰 세계를 만날 수 있도록 도움 혹은 영감을 주는 것이다. 다시 말해 그의 가슴속에 불을 지르는 것.

우리 삶에 정말 부족한 것은 그러한 영감과 상상력이 아닐까. 어떤 이가 그러한 교육적 만남/관계 속에 있는지 어떤지는 지금 그가 지닌 ‘내적’ 열정을 보면 알 수 있다. 교육은 한 사람의 내면에 다가가는 방식이고 제대로 접속했을 때 폭발적인 힘을 내뿜는다. 드물게 목격하는 일이긴 하지만 그것은 그 사람을 완전히 변화시킨다.

그 변화는 결코 강제될 수 없다. 오히려 우리가 자신이건 타인이건 변화시키려는 모든 욕심을 버릴 때, 자신과 타인을 더 잘 알게 된다. 그렇게 한 사람을 있는 그대로 볼 때, 그가 스스로 자신을 변화시킬 것이라는 것을, 그가 그런 내적 본성과 힘을 지니고 있다는 것을 우리는 그저 알 뿐이다. 욕심을 버리면 천하만물이 다 아름다워 보인다는 말, 사실이다. 역설적이지만 그러한 수용성이 우리를 진실로 변하게 한다.

오늘날 ‘교육’이란 이름을 내건 너무 많은 일들이 다른 사람을 위해 이루어지고 있다. 국가를 위한 교육, 부모를 위한 교육, 사회를 위한 교육. 학교에서 이루어지는 일들이 과연 학생을 위한 것일까. ‘열심히’ 가르치는 일은 더러 있으되, ‘교육관’은 실종되어 버렸다. 교사 자신의 만족을 위한 가르침, 학교장의 만족을 위한 가르침, 부모의 요구를 위한 가르침. 저마다 자기 욕심을 채우면서 학생을 위하는 거라고 말한다. 교육에 관한 거대한 사기이고 거짓말이다.


인간이 완전하지 않은 존재라는 것은 당연한 명제지만, 학생들을 이미 완전한 존재로 바라보고 싶다. 만개하지는 않았으나 그들 내면에 감추어진 '온전함'을 보는 것, 그 가능성을 현실태로 느끼는 것. 그들을 다르게 바라보는 것이 그 어떤 활동보다도 더 가치 있지 않을까. 그들을 대하는 우리의 태도가 달라지기 때문이다. 그렇게 관점을 바꾸니, 내가 좀 잘 하고 못 하고는 그리 큰 문제가 아니었다. 그 모든 염려는 그들을 위한 것이 아니라 나를 위한 것이었음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인생을 완전 헛살았다 싶다.


나를 위한 걱정과 염려를 버리는 것을 연습 중이다. 효과는 강력하다. 결과에 대한 괴로움이 많이 사라졌다. 부족한 대로 최선을 다하자 마음먹으니 '과정'의 아름다움이 더 생생하게 느껴진다. 그 와중에 깨닫게 것은 그들이 실제로 ‘완전하다’는 사실이다. 어른에게까지 그런 마음이 들진 않지만, 자라나는 모든 존재는 진실로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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