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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이야기/에세이

낮은 데로 임한 사진 - 최민식

by 릴라~ 2010. 2. 18.
낮은 데로 임한 사진
카테고리 예술/대중문화
지은이 최민식 (눈빛, 200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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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글을 만날 수 있다는 것은 정말 행운이다. 유시민의 '청춘의 독서'를 읽고 행복했는데, 그 이상의 책을 만났다. 한 예술가가 50여년에 걸친 자신의 작업을 돌아보면서 그간 자신이 겪은 고난과 삶의 철학을 잔잔히 들려주는 책. 한 문장 한 문장 속에 그의 생애가 농축되어 있고 그것이 단단한 심지가 되어 빛을 발하고 있다.


사진작가 최민식. 6. 25 전쟁으로부터 시작해 독재와 민주화투쟁, 가난과 고통의 긴 현대사를 통과하면서 그 길 위에 있는 이름 없는 사람들의 수천 가지 삶의 표정을 포착하고 그것을 통해서 우리들에게 삶의 '진실'을 생생히 전해주려 했던 작가. 이 책을 읽으면 그의 치열한 휴머니즘에 놀라고 감동했다. 박정희, 전두환 시절, 끊임없이 붙잡히고 고통 받으면서도 끝끝내 카메라를 놓을 수 없었던 한 작가의 예술혼이 고스란히 전달되는 멋진 에세이다.

최민식의 사진에는 언제나 가슴을 저미게 하는 무엇이 있었는데, 이 책을 읽고 이유를 알 수 있었다. 그의 사진 한 장 한 장은 모두 그 자신이 겪은 시대의 고통과, 그가 전달하고자 던 그 시대 가난한 사람들의 삶의 진실에 대한 깊은 추구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그런 까닭에 그의 작품은 어떤 현학적인 수사보다 '리얼리즘'의 정수를 잘 보여주었다. 그는 민초들의 삶에 놓인 슬프고 괴롭고 정감 있고 그리고 빛나던 한 순간을 포착했는데, 삶의 '진실'은 그처럼 말로는 설명할 길 없는, 그의 사진 속에 담긴 슬프고도 고귀한 순간 속에 깃들어 있었다. 그가 찍은 가난한 사람들에겐 어떤 '고귀함'이 서려있었고 그것이 내가 그의 사진을 잊을 수 없는 이유이다. 그에게 사진은 삶의 목적이고, 살아가는 이유이며, 그의 생애가 담긴 하나의 '사상'이고, 분노의 외침이자, 세상에 대한 '사랑'이었다.

그렇게 길 위에서 한 생을 보내고 나서 그는 말한다. 다시 태어나도 같은 일을 하고 싶다고. 그는 사진 작업을 통해서 인간이란 무엇인지, 삶이란 무엇인지, 예술이란 무엇인지를 끊임없이 묻고 답을 찾아갔다. 이제 말년에 이른 작가는 분명하게 인식하고 있다. 자신의 사진이 단순한 작품이 아니라 휴머니즘의 증언이자 역사적 기록물이라는 것을. 그가 찍은 사진 속에 담겨 있는 영원성을 그는 잘 알고 있었다. 그는 역사적 격변기에 늘 현장에 있었고, 그 현장 속의 수많은 민초들의 얼굴 속에 담긴 고귀한 무엇을 포착했고, 그들의 몸짓에 의미를 부여해 주었다. 자부심을 가질 만하다.

그가 평생 추구한 주제, '인간'. 그 '인간'은 개별적 존재가 아니라 그 자체로 하나의 시대이고 사회상이고 세계였다. 그리고 그 모든 얼굴은 바로 우리들 자신의 모습이기도 했다. 한 컷의 사진 속에 장편소설과 맞먹는 장중한 세계관을 담아낼 수 있다는 것이 놀라웠고, 그의 사진 철학에 감동했다. 취미로 사진을 찍는 아버지께 권해 드렸는데, 아버지도 그 자리에서 다 읽고는 깊이 감동하셨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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