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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이야기/영화, 드라마

멜랑콜리아 — 우울에 대한 독특한 시

by 릴라~ 2012. 12. 1.

 

 

 

 

 

 

 

'우울'에 대한 한 편의 독특한 시. 서사는 다소 난해하지만 그 점이 몰입을 방해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매우 독창적이고 아름다운 영화이며 몇몇 장면은 가슴을 친다.

 

구성이 다소 특이한데, 인트로, 1부, 2부로 이루어져 있다. 십여 분간 이어지는 인트로부터 범상치 않다. 어두운 밤하늘 아래 벌판에 갈 곳을 잃고 서 있는 인물들, 결코 빠져나갈 수 없는 늪 속으로 찬찬히 가라앉는 듯한 이미지들이 바그너의 '트리스탄과 이졸데'의 비장한 음악과 함께 느리게 흘러가면서 '우울'의 심상을 호소력 있게 전달한다. 우울을 개인이 겪는 어떤 문제로 보는 게 아니라 그것에 시대적이고 종말론적인 색채를 부여하고 있는 점이 이 영화가 그려내는 미학적 지점이다.

 

영화의 주 무대는 18홀 골프장을 지닌 대저택이다. 영화 <멜랑콜리아>는 드넓은 잔디밭을 지닌 이 화려한 건물이 삶의 안온한 공간이 아니라 이 세상으로부터 완전히 단절된 고립된 공간임을 잘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그 공간 속에서 벌어지는 두 개의 사건을 통해 인간의 실존적 문제에 대한 몇 가지 물음을 제기한다. 

 

1부는 대저택에서 벌어지는 저스틴의 화려한 결혼식에서 시작된다. 언니 클레어는 동생 저스틴을 위해 자신과 남편, 아들 이렇게 세 명이 살고 있는 저택에서 결혼식을 열고 손님들을 맞는다. 시작은 더할 나위 없이 활기차지만 저스틴의 우울증 증세가 하나 둘 드러나면서 결혼식은 삐걱거린다.  결혼식에 초대받은 근사해 보였던 사람들들 또한 시간이 흐르면서 자기 욕망에만 충실한 모습을 보인다. 저스틴이 왜 우울한지에 대한 설명은 없지만, 꼭 할 이야기가 있다고 머물러 달라는 저스틴의 부탁에도 자리를 뜨고 마는 저스틴의 부모(이혼한 상태), 어떻게든 광고 카피를 뽑아내려고 결혼식 도중에도 그녀를 압박하는 상사의 존재는 관객들에게 저스틴이 경험한 환멸이 어떤 것인지 짐작케 한다. 저스틴의 의식은 현실의 결혼식에 집중하고자 하지만, 그녀의 무의식은 그녀를 끝없는 나락 속에 빠트린다.

 

2부는 섬세하고 배려심 많은 클레어의 시점에서 전개된다. 클레어는 집에서 저스틴을 돌보기로 한다. 2부의 사건은 죽음의 별 멜랑콜리아와 지구와의 충돌이다. 지구 뒤에 숨어 있던, 지구보다 훨씬 큰 행성 멜랑콜리아가 지구에 다가오는 위기 앞에서 사람들은 평소와 전혀 다른 모습을 보인다. 여인들을 돌보는 강한 남자 역할을 했던, 가진 것이 돈밖에 없었던 클레어의 남편은 이 사실을 끝까지 클레어에게 숨기려고 하고 멜랑콜리아가 결국 지구를 덮친다는 사실을 알게 되자 약을 먹고 저 혼자 먼저 자살한다. 저택 살림을 맡아하던 집사는 몇 십년 만에 처음으로 출근을 하지 않는다. 그가 마지막 날을 가족과 함께 보내기 위해서일 거라고 저스틴이 말하자 비로소 클레어는 그와 그의 가족에 대해 자신이 아는 사실이 하나도 없음을 깨닫는다. 이 공간에 살아가는 몇 명의 사람들조차 서로 소통하지 못했음이 드러난다.

 

종말의 시간이 가까워오자 클레어는 처음으로 자신의 집에 두려움을 느끼고 사람들이 모여 사는 도시로의 탈출을 시도한다. 하지만 자동차는 길에서 움직이지 않고 그녀는 집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유일하게 의연한 사람은 저스틴이다. 지금까지 언니 클레어가 환자인 저스틴을 부모처럼 돌봐주었다면, 지구의 종말을 앞두고 저스틴은 이성을 회복하고 오히려 언니 클레어를 위로하며 두 사람은 대등한 입장에서 대화한다. 두려워하는 클레어에게 저스틴이 한 말, 이 무한한 우주 안에 생명이 사는 곳은 오직 지구밖에 없다는 말은 깊은 인상을 주었다. 지구의 멸망과 더불어 이 우주에서 생명은 사라지고 만다는 사실은 종말을 배경으로 할 때 그 의미가 비로소 살아나는 것 같다.

 

멜랑콜리아가 시시각각 다가오자 저스틴은 자신을 잘 따랐던 십대 소년인 클레어의 아들을 다정하게 위로하면서 함께 인디언 티피를 짓는다. 이 안은 어떤 경우에도 안전하다고. 그렇게 클레어, 클레어의 아들, 저스틴 세 명은 손을 잡고 멜랑콜리아가 덮쳐 오는 순간을 함께 맞이한다. 행성이 충돌하는 마지막 장면은 정말 압권이다. 그 거대한 행성의 위력 앞에서 인간이 얼마나 부서지기 쉬운 가녀린 존재인지 절절하게 느껴진다. 그들을 덮친 무시무시한 힘 앞에서 그들이 자신을 지키기 위해 할 수 있었던 일은 소박한 나뭇가지들로 보호의 장벽을 치고 서로의 손을 맞잡는 것이었다.

 

이 영화에서 '우울'은 우리가 당연시 여겼던 현실을 삐걱거리게 만드는 장치이다. 그것은 우리가 우리 앞에 놓인 이 현실을 우리 힘으로는 어찌 할 수 없다는 '무력감'에 다름 아니다. 영화의 1부에서는 저스틴의 우울증을 통해, 2부에서는 모든 사람들에게 닥친 종말을 통해 삶의 무력함을 보여주고자 했다. 우울과 행성 멜랑콜리아의 출현은 사람들이 현실적으로 맺고 있는 관계들이 얼마나 왜곡되어 있으며 위기 앞에서 얼마나 심약한 것인가를 드러내 준다. 푸르고 아름다운 별 멜랑콜리아와 지구와의 조우는, 그간 보이지 않았던 진실을 드러낸다는 점에서 미학적으로 아름답게 그려지고 있지만 이 세계의 종말을 불러오는 치명적인 만남이기도 하다. 이 세계의 종말, 시간의 끝을 통해서 우리 삶이 얼마나 연약하고 또 아름다운 것인지를 역설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셈이다.

 

죽음과 종말을 배경으로 하지 않고 우리에게 주어진 이 '시간'의 진실을 이해할 수 있는 길은 없는 것일까. 종말론적 시간과 영원회귀(윤회)의 시간. 진실은 어느 편에 더 가까울까.

 

 

 

 

 


멜랑콜리아 (2012)

Melancholia 
8.2
감독
라스 폰 트리에
출연
커스틴 던스트, 샬롯 갱스부르, 키퍼 서덜랜드, 샬롯 램플링, 존 허트
정보
미스터리, 판타지 | 덴마크, 스웨덴,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 135 분 | 2012-0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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