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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이야기/영화, 드라마

더 레이디 — 운명을 살아간다는 것

by 릴라~ 2012. 9. 30.

 

 

 

개인적으로 양자경의 연기가 아쉬웠다. 언론은 호평했으나, 실제 인물 아웅산 수치 여사의 표정의 깊이를 드러내기엔 역부족인 듯.

 

사진으로 본 수치 여사의 얼굴은 굉장히 여성스러운 데가 있다. 풍만한 여성성은 아니고, 가냘프고 섬세하고 소녀 같은 부드러움이 있는 얼굴이다. 눈빛엔 깊은 슬픔이 담겨 있지만 또한 연민이 있고 한 가닥 미소도 배어나온다. 이에 비해 영화속 양자경의 표정과 눈빛은 상당히 직선적이고 남성적이었다. 여리여리하면서도 꺾이지 않는 꼿꼿함이 있는 수치 여사의 아우라에 비한다면 지나치게 당당해 보였고 평면적인 인상을 넘어서지 못했다.

 

이 점을 제외한다면 <더 레이디>는 아웅산 수치 여사의 한 여성으로서의 삶에 가까이 다가갈 수 있었다는 점에서 의미 있게 본 영화다.

 

 

(아웅산 수치. 양자경과 외모는 닮았으나 눈빛이 너무 다르다.)

 

 

(양자경. 내면 연기가 아쉬웠다. 영자경의 표정에서 수치 여사와 정반대의 삶을 산 박근혜가 연상되어 영화 몰입을 방해.)

 

 

 

 

뤽 베송 감독의 <더 레이디>는 아웅산 수치 여사가 평범한 주부에서 미얀마 민주화 투쟁의 아이콘으로 변신하고 가택연금을 겪는 과정을 그녀의 '가족 관계'를 중심에 놓고 조명하는 영화다. 미얀마의 정치/사회적 조건들에 대한 분석은 거의 없는 편이다. 이 영화의 초점은 수치 여사와 그녀의 남편 마이클 에어리스 교수의 사랑, 그리고 그들이 세상을 위해 감수해낸 희생에 있다.

 

영국인과 결혼하여 두 자녀와 함께 행복하게 살아가던 수치 여사는 어머니의 병상을 지키기 위해 미얀마에 들렀다가 군부에 의한 끔찍한 유혈 사태를 목격한다. 미얀마의 민주화를 열망하는 사람들은 미얀마의 독립영웅 아웅산 장군의 딸인 그녀에게 미얀마에 남아줄 것을 요청한다. 쿠데타 세력은 수치 여사가 두 살 때 아웅산 장군을 암살하고 독재권력을 행사해왔다.

 

수치 여사는 남기로 결정하고 이 선택이 그녀의 삶을 완전히 뒤바꾼다. 그녀는 민족민주연합을 만들어 군부에 저항하고, 민중의 저항을 두려워해 아웅산의 딸을 죽일 수 없었던 군부는 그녀를 가택연금에 처한다. 15년의 긴긴 세월 동안 그녀는 가족들을 만나지 못한다. 그녀의 선택을 절대적으로 지지하고 격려했던 남편 마이클의 사랑은 실로 눈물겹다. 그는 아내의 투쟁이 고립되지 않도록 서방세계에 미얀마의 상황을 알리면서 물심양면으로 지원했다. 아내와 전화조차 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홀로 두 자녀를 기르는 생활을 감내했고 전립선암을 선고 받고 투병하면서도 아내에게 영국으로 돌아오지 말라고 했다. 한번 미얀마를 떠나면 재입국이 거부될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지금 포기하면 그간의 모든 노력이 허사가 된다고.

 

결국 마이클은 죽음을 눈앞에 두고도 아내를 만나지 못한 채 세상을 떠난다. 영화 <더 레이디>가 집중적으로 그려내는 것은 수치 여사와 마이클 에어리스 교수, 그들이 택한 사랑의 방식이었다. 미얀마와 영국 사이. 그들 사이에 놓인 인종과 문화의 벽을 넘고, 물리적 거리를 넘고, 모든 것을 퇴색시키는 시간의 압력조차 이겨내고 죽음 앞에서도 흔들리지 않았던 사랑. 그 '사랑'의 정체는 무엇일까. 무엇이 그들로 하여금 그 자리를  지키게 했을까. 그들에게 피할 수 없는 임무가 주어졌음을 자각했기 때문일까.

 

수치 여사와 마이클 에어리스 교수가 그 '운명'을 받아들이며 서로를 만나지 못함에도 변함없이 깊게 사랑했다는 사실이 감동을 주었다. 그들이 자신들이 개인적으로 바라는 것을 행한 것이 아니라 그들 각자를 포함하면서도 그들을 넘어서는 더 큰 무언가에 자신의 삶을 열고 내맡겼다는 사실이 인간의 삶과 운명, 사랑을 다시금 돌아보게 만든다. 이렇게나 깊고 뜨거운 사랑이 존재할 수 있다는 것에 놀라고 감동하면서 또 한 가지 생각이 마음을 스쳤다. 이 세상은 우리들 자신이 준비된 만큼 우리들에게 다가오고 우리들 앞에 그 깊이를 드러낸다는 것. 내게 좀 더 나은 것을 고르는 것이 아니라 내게 필연성을 가져다주는 것, 불편과 어려움을 감수하더라도 내가 마땅히 해야 하고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것, 그것이 운명을 사는 태도가 아닐까. 내게 가장 부족한 것이 그것.

 

오늘날 삶의 무의미는 무언가를 가지지 못했기 때문이 아니라 그러한 필연적 마주침과 관계의 결핍에서 비롯된다. 자신에게 잘 맞는 것을 선택할 수 있는 이는 강자이다. 그러나 자신의 운명을 살아가는 이는(그 운명의 창조를 포함하여) 인간이 할 수 있는 최선의 길을 걷는 자이다. 무엇이 내게 좀 더 이익일까를 고민하기보다 우리 삶의 수많은 마주침들 속에서 우리를 진리로 이끄는 작은 소리들에 귀기울일 때, 그때 우리는 '지금 여기 이곳에서' 전혀 다른 풍경을 볼 수도 있지 않을까.

 

 

 

 


더 레이디 (2012)

The Lady 
8.8
감독
뤽 베송
출연
양자경, 데이빗 튤리스, 윌리엄 호프, 사하작 본다나킷, 티라왓 멀빌라이
정보
드라마 | 프랑스, 영국 | 132 분 | 2012-0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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