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터 잭슨의 '반지의 제왕'의 연작 시리즈를 다시 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빌보와 간달프를 다시 만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행복했다. 원작 소설인 '호비트 대모험'은 철학적 함의가 있는 '반지의 제왕'과 비교할 때 훨씬 아기자기하고 동화 같은 이야기인데, 영화 <호빗>은 반지의 제왕과 같은 톤의 웅장한 분위기로 전개된다.
이 영화가 내개 준 생각거리는 사실 영화와는 별 상관 없는 내용이다. 내가 주목한 부분은 서구 문학에서 '다윗과 골리앗'의 상징이 반복된다는 것이다. 어린 소년과 거인의 싸움. 승리자는 거인 골리앗이 아니라 정의의 편에 섰던 다윗이었다. 중요한 점은 약자인 다윗이 강자인 골리앗을 쓰러뜨린 것이 아니라 알고보니 다윗이 진정한 강자였다는 사실이다. 골리앗은 겉으로는 강해 보이지만 사실 껍데기 뿐이었다는 것. 이는 아기장수 우투리로 대변되는 우리의 전통적 정서와는 상반된다. (다윗의 상징은 예수로 이어진다. 가난하지만 명철한 젊은이었던 예수는 권력자에 의해 죽임을 당하지만 다시 살아난다. 세속의 권력은 그의 편이 아니었으나 진리의 신이 그의 편이었고 그는 자신이 '세상을 이겼노라'고 선포한다.)
전설의 주인공 소린과 용감무쌍한 난쟁이 전사들과 마법사 간달프와 함께 모험을 떠나는 별 볼 일 없는 호빗족의 빌보. 이야기가 전개될수록 밝혀지는 건 빌보가 약자가 아니라 재기발랄함을 갖추고 가장 위험한 순간에 용기를 발휘할 줄 아는 의리의 사나이라는 사실이다. 빌보의 강함은 무력이 아니라 그가 지닌 연민과 감수성, 세상에 대한 애정 같은 것들이었다. 이 <호빗> 시리즈가 모두 끝날 때 쯤이면 밝혀질 것이다. 이 열 네 명의 모험의 주인공들이 그들이 지닌 지혜와 용기와 우정의 힘으로 그들보다 훨씬 힘이 센 괴물들을 모두 물리치고 그들이 원하는 곳에 도달하리라는 것. 그들이 진짜 강자였다는 것.
(반지의 제왕보다 60년 앞선 이야기인데 간달프 아저씨는 그때보다 훨씬 더 늙었다.^^ 독수리를 부르는 장면이 제일 멋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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