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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이야기/영화, 드라마

신의 소녀들 — 일상성 속에 깃든 폭력

by 릴라~ 2013. 1. 8.

 

 

 

 

 

 

거장들의 영화를 보는 것이 조금씩 부담스러워지고 있다. 보고 나서 마음에 남는 어떤 불편함 때문이다. 이 영화들은 스토리가 강렬한가 온화한가에 상관 없이 그 안에 예리한 비수 하나씩을 품고 있다. 우리 사는 세상에 대한 어떤 통렬한 시각 같은 것. 일상을 살아가는 우리의 눈길은 그다지 예리하지 못하기에, 감독이 드러내는 세상의 풍경이 마치 칼날에 손을 벤 것 같은 그런 날카로운 궤적을 남기고 가는 것이다.

 

 

<신의 소녀들>. 2012 칸 영화제 각본상을 받은 크리스티안 문주 감독의 작품이다. 영화의 배경은 루마니아 정교회의 한 작은 수도원. 우리가 흔히 보는 유럽의 수도원보다 훨씬 중세적인 분위기를 풍기는 곳이다. 이곳에서 평안을 얻고 고요히 살아가는 보이치타에게 보육원에서 같이 자랐던 단짝 친구 알리나가 그녀를 찾아오면서 갈등이 시작된다. 그 누구도 서로를 해치고자 하는 의도가 없었지만, 알리나의 출현은 수도원의 고요를 흔들고 이 두 세계의 만남은 파국으로 치닫는다.

 

이 영화는 굉장히 독창적인 방식으로 종교를 다루고 있다. <신의 소녀들>이 보여주는 것은 종교간 전쟁이나 이데올로기의 대립, 신학적 논쟁, 종교적 광신이 낳은 사회적 갈등 같은 것이 아니다. 영화에 등장하는 수도원은 오갈 데 없는 사람들을 받아주고자 하며 가까운 보육원에 먹거리를 가져다주는 평범하고 일상적인 공간이다. 타자에 대한 눈에 띄는 차별이나 억압이 없으며 오히려 온화한 부드러움이 깃든 공간이라고도 말할 수 있다. 그러므로 이 수도원의 '일상성' 속에 깃든 폭력을 포착하는 감독의 시선에 놀랄 밖에. 그것은 성질 급하고 참을성 없으며 친구에게 집착에 가까운 강한 애정을 보이는 알리나를 통해서 관객들에게 보여진다.

 

죄와 구원에 관한 익숙한 종교적 언어들, 인간에게 집착하지 말고 신께 귀의하라는 평범한 가르침은 보이치타에게 평화를 주었지만, 친구를 사랑하고 그와 함께 지내고 싶었던 알리나에겐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언어였으며 다가올 비극의 전조였다. 비종교인에게도 익숙한 몇몇 성서 구절들(주님 안에서 평화를 찾아라, 하느님이 계시니 두려워할 것이 없다... 등), 전혀 폭력적이지 않은, 격언에 가까운 구절들이 알리나가 처한 상황과 맥락 속에서는 낯설고 생뚱맞게, 전혀 다른 느낌과 의미로 읽히는 점이 놀라웠다.

 

보이치타도, 수녀들도, 신부도 모두 선의로 알리나를 구하고자 했지만, 알리나에게 깃든 악마를 쫓아내려는 그들의 시도는 알리나를 죽음에 이르게 한다. 그들이 그들의 능력으로 알리나를, 한 인간을 구할 수 있다고 믿은 것이 가장 큰 오류였으리라. 그 오류는 인간의 복잡한 심리를 선과 악의 대결로 치환한 데서 비롯된다. 자신이 처한 현실을 견디지 못해 발작을 일으킨 알리나의 문제를 기도의 힘으로, 영혼을 정화함으로써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한 것. 부모 없이 외롭게 자라 기댈 곳이 전혀 없었던 알리나에게 정말 필요했던 건 교리나 규율이 아니라 그녀의 들끓는 감정을 있는 그대로 받아주는 넉넉함과 마음 편히 쉴 수 있는 '집'이었다. 보육원도, 그녀를 입양했던 양부모의 집도, 그녀가 마지막으로 기댔던 보이치타가 사는 수도원까지 알리나가 감당할 수 없는 것들을 요구했다. 경찰이 당도하고 의사가 사태를 설명하는 순간 진실은 명확히 드러난다. '고의'에 의한 살인은 아니었으나 그것은 명백한 살인이었다.

 

이 영화는 단지 루마니아의 수도원의 이야기만은 아니다. 우리들의 일상적인 어법과 생활 태도가 타자에게 초래할 수 있는 의도하지 않은 폭력을 돌아볼 것을 요구하는 영화이다. 모든 고립되고 폐쇄된 공간, 타자의 침입을 허용하지 않는 공간은 구성원들의 의지와 상관없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 우리가 무의식중에 반복하는 언어와 규칙들 속에 우리가 인식하지 못하는 폭력이 잠재해 있는 것이다. 어쩌면 가장 무서운 것은 선의를 지닌 사람들의 '맹목'과 '무지'일지도 모른다.

 

정치/사회를 비판하는 것도 만만치 않은 작업이지만, 우리가 하루하루를 보내는 공간의 일상적 어법을 분석하는 것 또한 그에 못지 않은 용기를 필요로 한다. 이 영화는 우리의 가정이나 학교, 우리가 속한 여러 조직, 혹은 한국이라는 사회에서 의심없이 당연하게 통용되는 어법 속에 들어 있는 폭력과 무지몽매를 알아차릴 수 있는 '감각'을 요청하고 있다. 우리가 영화를 통해 배울 수 있는 게 있다면 바로 그러한 종류의 '감각'일 것이다. 당연한 것들을 당연시하지 않을 수 있는 감각, 그것이 바로 '지성'이 아닐까. 영화의 엔딩에서 보이치타의 달라진 눈빛과 태도는 그와 같은 변화를 암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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