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치 무당의 공수 같은 소설이었다. 한 시절 가슴에 박힌 한을 토해내고 그 한서린 혼들을 불러모아 위무하는 일종의 씻김굿.
5. 18을 직접적으로 다루는 소설은 아니다. 그러나 이 작품의 정애와 묘자의 슬픈 얼굴이 곧 광주의 얼굴 같았다. 부모 잃은 약자인 두 소녀는 그들의 착함에도 불구하고 그 착함이 독이 되어 그 시대를 가장 힘겹게 통과한다. 세상은 그녀들의 목을 내리조르고, 그녀들은 함부로 겁탈당하고 살인죄를 쓰고 정신 이상을 앓는다.
이 삶들이 너무 신산스러워서, 너무 춥고 어둡고 아파서 내 가슴이 오그라드는 듯했다. 그런데 이 책을 다 읽고나서 이 이야기들이 내 가슴의 한 부분을 치유하고 내가 사는 오늘을 비추어주는 힘이 있음에 깜짝 놀랐다. 짐승의 무리 속에서 삶이 부서진 그녀들이 그 부서짐을 통해서 나를 겸허하게 만들고, 오늘의 나를 있게 한 모든 것들을 돌아보게 만들었다. 부서지지 않은 이들의 냉담한 가슴으로부터 들을 수 없는 '인간의 노래'가 그녀들의 상처입은 가슴으로부터 흘러나왔다. '슬픔'이 이렇게 힘이 있음은 문학만이 보여주는 축복이다.
내 지성이 기억하지 못하는 시절의 이야기가 오늘의 시간에 빛을 주는 이유는 무엇일까. 지금 우리의 삶이 경제 개발이나 도전 신화가 아니라 한 시대의 착한 사람들의 '눈물' 위에 세워진 집이라는 사실을 알아보게 되었기 때문이 아닐까. 그래서 이 소설을 잃고 잃어버린 삶의 한 조각이 채워진 느낌을 받았던 것 같다. 내 기억이 좀 더 온전해진 것 같은 느낌. 더불어 나 자신의 존재도 좀 더 온전하게 채워진 것 같은 느낌. 그래서 이 슬픈 이야기는 정애와 묘자, 그 시대를 통과한 이름 없는 이들에 대한 씻김굿일 뿐 아니라 오늘을 사는 우리를 위한 노래이기도 하다. 그녀들이 부른 노래가 우리 가슴에까지 들리게 해준 작가에게 감사한다.
그 노래는 어디서 왔을까
- 저자
- 공선옥 지음
- 출판사
- 창비(창작과비평사) | 2013-04-17 출간
- 카테고리
- 소설
- 책소개
- 시대의 폭력에 짓밟힌 여성들의 삶을 강렬하고도 아름답게 그려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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