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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이야기/소설, 시

<꿈꾸는 식물> - 이외수

by 릴라~ 2016. 9. 25.

소설가는 자기가 목격하고 탐구하고 창조한 세계를 우리 앞에 펼쳐냅니다. 그래서 소설 읽기는 작가가 초대하는 어떤 세계로의 여행이에요. 그 세계는 굉장히 낯설어보여서 때로 읽기는 어떤 먼 나라나 다른 혹성으로의 여행 같습니다. 읽기가 다 끝나갈 무렵에야 우리는 그것이 다른 세계가 아니라 우리들의 세계의 은유임을 깨닫게 되지요.

이외수의 소설 <꿈꾸는 식물>이 우리를 데려가는 곳은 '장미촌'이예요. 이름은 예쁘지만 세상의 가장 추악한 모습이 집약적으로 담겨 있는 곳. 그곳에서 창녀들의 포주인 '아버지'와 그 아버지만큼이나 무식하고 폭력적인 '큰 형'이 절대 권력을 휘두르고 있습니다. 돈, 권력, 섹스만이 난무하는 곳이 어떤 곳인지 알고 싶다면 장미촌은 그 대답이 될 듯합니다. 인간이 아니라 짐승들이 드글거리는 세계랄까요.

그러한 '장미촌'에 그곳과 전혀 어울리지 않는 한 남자가 살고 있습니다. 어머니를 닮아 고상하고 품위 있고 얼굴이 흰 '둘째 형(작은 형)'. 그는 비범한 수재였고 집을 나가 따로 방을 얻어 공부하고 싶어했지만 아버지의 허락을 얻지 못하지요. 아마 대학을 가면 그곳을 벗어날 수도 있을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창녀에게서 옮은 매독으로 학업은 중단되고, 식물처럼 부드러운 심성을 지녔던 작은 형은 조금씩 미쳐갑니다.

그 미쳐가는 작은 형을 큰 형은 돈벌이에 이용합니다. 창녀들과 포르노를 찍는 데 동원하는 것이었지요. 하지만 셰퍼드까지 동원해 음란물을 제작하려는 시도는 결국 작은 형이 셰퍼드에 찢겨 죽게 되는 참혹한 비극을 낳고, 아버지와 큰 형이 구속되면서 그들의 사업(?)은 중단됩니다.

이야기는 여기에서 끝나지 않습니다. 이 모든 사건의 목격자 ‘나'가 있습니다. 큰 형처럼 포악하지도, 작은 형처럼 미치지도 못했던, 그저 그런 대학을 다니던 '나'. '나'는 자신을 둘러싼 환경을 경멸하면서도 그것을 어쩌지 못하는 자신을 한심하게 또 비겁하게 여기고 있어요. 그런 그가 타인을 사랑하는 일은 불가능합니다. '나'는 대학에서 만난 '정희'라는 동급생에게 끌리지만 그 사랑에 결국 실패하지요. 장미촌에서 보고 겪은 지저분한 일들이 그를 괴롭히고 그것이 그녀와의 관계를 줄곧 방해했기 때문입니다.

그랬던 ‘나’가 작은 형의 죽음 이후에 변합니다. 그는 주도면밀하게 계획을 세워 장미촌 꼭대기에 자리한, 자신이 나고 자란 집에 방화를 시도합니다. 그가 남들이 화재의 원인을 알아차리지 못하도록 작은 탁구공 하나하나에 기름을 채워넣는 장면은 소설에서 가장 인상적인 장면의 하나입니다. 그렇게 집은 화염에 활활 휩싸이고 완전히 불타고 난 잔해에서 그는 렌즈 하나를 발견합니다. 작은 형이 우주를 관측하는 데 사용했던, 그리고 그가 집을 불지르는 데 다시 활용했던, 망원경의 렌즈였습니다. 그 렌즈를 움켜쥐고 '나'는 그곳을 떠납니다.

소설 <꿈꾸는 식물>은 장미촌을 지배하는 이들과 장미촌의 현실에 잘 적응해 살아가는 이들, 그곳을 벗어나고 싶지만 벗어나지 못하는 이들의 내면을 섬세하게 그려냅니다. 읽는 내내 둔탁한 아픔이 느껴졌어요. 우리 또한 종류는 다르나 벗어나기 힘든 현실적 조건 속에 메어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장미촌(1978년작)은 70년대 우리 사회 전반에 대한 작가의 은유라고도 볼 수 있을 듯해요. 독재자와 그 하수인들이 군림하는 세계, 그들은 이 세상 속에 그들의 장미촌을 건설하지요. 그리고 그곳에서 인간이고자 하는 작은 형과 '나'의 몸부림은 읽는 이의 마음을 내내 아프게 울립니다.

권력을 가진 이들이 추악할 때 세상이 얼마나 형편없는 곳이 되는가를 보여준 소설 '장미촌'. 작은 형의 꿈은 좌절되고 그가 이루지 못한 소망은 이제 '작은 렌즈' 하나로 주인공 '나'에게 남겨져 있습니다. 렌즈는 아마도 우리를 인간답게 하는 정신의 최후의 보루 같은 것이 아닌가 해요.

우리는 그런 렌즈를 갖고 있는지, 아니면 어디에서 그 렌즈를 찾아와야 하는 것인지, 작가는 묻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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