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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이야기/소설, 시

제인 에어 | 샬롯 브론테 — 150년 전에 지금보다 더 주체적이고 당당한 여성을 그려내다

by 릴라~ 2016. 8. 8.

이 책을 처음 읽었던 순간을 기억한다. 초등학교 6학년 어느 봄날, 친구가 재밌다고 빌려준 두툼한 두께의 책. 내가 처음으로 접한 본격적인 소설이었다. 분량도 그렇고 내용도 그렇고 그간 보아온 어린이용 책과는 차원이 달랐다. 나는 정신없이 이야기에 빨려들어갔고 마음 깊이 감동했다. 한 고아 소녀가 씩씩하게 이 세상을 헤쳐가며 자신의 사랑을 찾아가는 이야기는 영국과 전혀 다른 문화적, 시대적 배경의 소녀에게도 보편적 공감을 끌어내기에 충분했다.

 

그 첫만남으로부터 거의 삼십년이 지나서, 이 소설을 썼을 때의 작가의 나이를 몇 살 지난 시점에, 제인 에어를 다시 읽어 보았다. 그리고 드라마틱한 러브 스토리보다 작가가 그 자신의 내면으로부터 끌어내어 창조한 한 여인의 인생관에 더 깊이 매혹되었다. 제인의 대사 한 마디, 한 마디에서 드러나는 반짝이는 재치와 그녀가 선택의 기로에 섰을 때 내렸던 용기 있는 결단(목숨처럼 아끼는 로체스터를 떠나고, 사촌의 청혼을 거절하고, 이후 로체스터와 결혼하기까지)은 당대보다 150년이나 더 지난 여성해방의 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가 보아도 훌륭했다.

 

제인은 무일푼의 고아에, 예쁘지도 않은 한 여인이 자신을 환영하지 않는 세상 속에서 어떻게 자신의 '존엄'과 '품위'를 유지할 수 있는지를 아낌없이 보여주었다. 그녀는 자신을 학대하는 사람들에게 당당하게 맞설 줄 알았고, 재산과 지위가 자신과 비교도 되지 않는 이와 사랑에 빠졌을 때는 그와 동등한 영혼으로 사랑을 나누었으며, 그 사랑이 자신의 것이 아님을 알았을 때는 격렬한 고통 속에서도 떠날 수 있는 힘이 있었다. 제인은 자비로움이 무엇인지 알았고, 가진 것이 없으면서도 타인의 욕구에 휘둘리지 않았으며, 자신의 욕망을 정직하게 응시하고 그것을 실현시킬 줄 알았던 여인이었다. 자신의 개성을 포기하지 않으면서도 사랑을 위해 자신의 전부를 걸 수 있었던, 정말 매력적인 여인이었다.

 

고전 속에 수많은 여성들이 등장하지만, 150년도 더 전에 브론테가 창조한 제인 에어보다 더 주체적이고 당당한 여성을 찾기란 그리 쉽지 않을 것 같다. 한 인간의 존엄성이란 외부에서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그 자신이 삶의 주인으로 오롯이 서는 과정에서 획득해가는 것이라는 것을 다시 생각하게 해준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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