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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이야기/소설, 시

채식주의자 | 한강 — 그는 왜 식물이 되고자 했을까

by 릴라~ 2016. 8. 6.

세계가 자신을 사랑하지 않을 때, 아니 오직 폭력만을 행사했을 때, 세계와 도저히 화해할 수 없을 때, 그때 우리는 이 삶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그럼에도 살아남아야 하는 것일까? 아니면 탈주해야 하는 것일까? 어떤 종류의 탈주가, 치유와 구원이 가능할까? 한강의 <채식주의자>는 그러한 의문들에 대한 작가의 추적이라고 볼 수 있을 것 같다. 일상 속에 켜켜이 쌓인, 콕 찝어 설명하기 어려운 다양한 종류의 폭력, 그 누적된 폭력의 시간에 어느 날 저항하기 시작하는 주인공의 '광기'가 탐미적으로 그려져 있다.

조용하고 변화 없는 삶을 살던 영혜는 어느 날 갑자기 냉장고 속의 고기를 내다버리며 육식을 거부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이로 인해 영혜를 둘러싼 이들의 평온해보이는 일상에도 금이 가기 시작한다. 식물이 되고자 시도하는 영혜와 그러한 그녀로부터 예술적 영감을 얻고 그녀를 욕망하기 시작하는 화가 형부, 이들의 파국을 지켜보면서 비로소 동생의 숨겨진 아픔에 조금씩 다가가는 영혜의 언니 인혜. 그리고 세계와 전혀 불화하지 않고 그 어떤 초월도 꿈꾸지 않는 속물의 전형인 영혜의 남편. 이 네 사람의 삶의 이야기가 교차하면서 이 작품은 굉장히 두꺼운 의미의 그물을 독자에게 던져놓는다.

육식에 진저리를 치는 영혜의 과거에는 월남전 참전 용사 출신의 아버지의 지속적인 폭력이 자리하고 있었다. 영혜는 어린 시절부터 이유 없이 부당한 고통을 당하면서도 그 고통을 소리내지 못하고 그것에 대해 이해받지도 못한 채로 살아온 살아온 '약자'였다. 그녀는 처음으로 자신의 의지를 분명하게 외부로 표현하기 시작하는데, 그것은 채식주의로, 거식증으로, 결국은 그녀 자신의 죽음으로 이어진다.

식물이 되겠다는 영혜의 처절한 몸부림을 그 누구도 이해하지 못한다. 영혜의 부모와 남편은 그들의 자리로 떠나고 영혜를 욕망했던 형부 또한 추방된다. 오직 인혜만이 죽어가는 영혜 곁에 머물면서 영혜의 삶에 드리워졌던 폭력을 상기해내고 자신의 삶 또한 영혜처럼 위태로웠음을 자각하기 시작한다. 이야기는 여기에서 끝이 나고 인혜의 '어둡고 끈질긴' 시선이 어디로 나아갈지 우리는 알지 못한다. 다만 인혜가 자신의 아들 지우를 버리지 않고 그 아이를 돌보기 위해 끝까지 살아낼 것이라는 사실만을 우리는 짐작할 뿐이다.

작가는 쉽게 희망을, 치유를 이야기하지 않는다. 그것은 그렇게 단순한 문제가 아닌 것이다. 나는 그저 이 이야기를 이렇게만 읽었다. 이 세상에는 수많은 인혜와 영혜가 있었을 것이라고. 자신에게 가해진 모든 폭력의 손길을 정화하고자 한 시도가 결국 자신을 죽음에 이르게 한, 살기 위해서 죽을 수밖에 없었던 영혜와, 삶을 끝내고 싶은 순간들에도 불구하고 누군가를 돌보기 위해 살아낼 수밖에 없었던 인혜가 있었을 것이라고.

그리고 이러한 결말에 조금쯤 아쉬움을 느꼈다. 스스로를 죽이는 것 말고, 지켜보고 이해하고 감내하는 것 말고 다른 방식의 탈주는 불가능한 것일까. 친구 H는 피해자의 관점이 지겹다고 했다. 폭력에는 오직 폭력으로 맞설 수 있을 뿐이라고. 폭력에 비폭력으로 저항한다는 것은 가해자가 심어놓은 논리에 불과하다고. 아무튼 나는 평소 한국 소설에 관심을 갖고 그 흐름을 지켜보며 관찰해온 독자가 아닌데 이 소설을 읽고 한국 소설을 다시금 살펴보고 싶다는 욕망이 생겼다. 그들이 이 시대 삶에 대한 자신들의 문제의식을 소설에서 어떻게 다루고 있는지 그 가능성과 한계가 궁금해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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