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는 오사카에서 교토로 가는 길에 있는 작고 아담한 시골 마을이었다. 교토로 가던 중에 잠깐 들렀다. 유적지는 기차역에서 그리 멀지 않았다. 정갈한 현대식 단층 주택들 사이를 십여 분 걸어가면 7세기에 세워져 1300년을 버틴 현존하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목조 건축인 일본 고대유적 호류사와 사슴공원으로 유명한 동대사가 차례로 나타난다.
나라 방문은 이어진 교토 여행에서 내가 받은 충격의 서막이라 할 만했다. 문화재는 한 시대의 미학적 감수성의 결정판이다. 하나를 통해 그 주변 전체와 그 시대를 아울러 짐작하게 하는 것이 문화재이다. 나라에 와서 축소 지향적이라고 막연하게 알고 있던 일본에 대한 이미지가 깨어졌다. 호류사 오중탑은 웅장하지만 둔탁하지 않았다. 나무로 지어진 거대한 불탑을 보는 것도 처음이었고, 각각의 층이 크기가 거의 비슷하여 그 큰 5층탑이 위압적이기보다는 위태위태하면서도 아찔한 아름다움을 자아내었다.
동대사는 정문격인 '남대문'을 향해 난 진입로를 걸어가면서부터 아름드리 기둥으로 지은 남대문의 위풍당당함에 놀랐다. 그리고 남대문을 통과해서 대웅전격인 대불전의 압도적인 스케일 앞에서는 그저 입을 다물 수가 없었다. 대불전 안에 모셔진 불상은 그저 그랬지만(큰 불상이야 동남아에 널려 있다), 대불전은 우리와는 좀 낯선, 일본적인 미감을 지녀서 딱 마음에 와닿는 스타일은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자체로 목조건축의 장중한 멋을 그대로 전해주었다. 이런 고대 건축이 어떻게 지금까지 건재할 수 있을까 그저 놀라울 뿐이었는데 알고보니 지붕이 무게를 감당할 수 없어 처마 라인이 조금씩 흐트러지던 것을 메이지 시대 이후 서양공법을 공부한 이들이 철골로 완전히 해체 수리한 것이라고 한다. 반곡선 지붕인 가라하후는 18세기에 재건할 때 덧붙인 것으로 이 때문에 헤이안 시대의 직선이 훼손되었다는 평가가 있는데 나도 동의한다.
이 작은 도시 나라에,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목조건물인 호류사와, 세계에서 가장 규모가 큰 목조건물인 동대사가 나란히 있었다. 비슷한 시기에 우리에게는 황룡사지 9층목탑이 있는데, 이 시기에 이렇게 거대한 목조건축이 유행을 한 것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경주의 황룡사지 9층목탑이 남아 있었더라면 참 좋았겠다는 생각을 했다.
일본에 대해, 그리고 일본 문화유산의 가치에 대해, 그들이 우리와 어떤 점이 같고 다른 지에 대해 학교에서 제대로 배운 적이 없음을 알았다. 선조들이 일본에 대륙의 문화를 전수한 지 천 오백여 년이 지났지만, 우리의 시계는 아직 그때의 자부심에 머물러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대륙문화를 수용한 일본은 이후 자신의 독자적인 문명을 만들어갔으며, 나는 교토에서 그것을 또렷이 확인하게 되었다.
201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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