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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여행 기록/일본 '16~'18

교토에서 생각하는 '오래된 미래' / 일본 교토 여행

by 릴라~ 2018. 5. 18.

교토는 아름다웠습니다. 높은 빌딩이 거의 없어 고개를 들면 도시를 둘러싼 산자락이 눈에 들어옵니다. 그리 높지 않은 산들이 연이어 펼쳐진 풍경은 한국과 비슷하여 친숙한 느낌도 듭니다. 도시 중심으로는 가모강이 흐르고 가모강의 조그마한 지류들도 잘 가꾸어 놓아 천변을 따라 걷기 좋은 도시였습니다. 

교토는 자연만 아름다운 게 아니었습니다. 교토에는 '오래된 과거'가 있었습니다. 천년 고도답게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된 곳만 17군데가 있었고 수천 개의 사찰이 있었습니다. 사찰의 도시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습니다. 수많은 문화 유적들이 옛 모습 그대로 보존되어 있었고 복원을 통해 지금도 계속 옛스러움을 살려나가고 있었습니다.  

교토는 단지 과거의 도시에 머물지 않았습니다. 교토에는 '문화'가 있었습니다. 문화는 현재적 개념입니다. 시민들의 생활공간을 보면 옛집을 보존하는 것은 물론이고 새로 지은 집도 교토라는 도시의 조화로움을 흐트리지 않았습니다(교토타워는 예외). 상가도 난삽하지 않았어요. 청수사 주변 상가와 폰토쵸 거리의 정갈함을 보면 21세기 생활 문화에도 천년 고도의 전통이 그대로 배어 있음을 느끼게 됩니다. 일본인은 물론이고 외국인들이 기모노를 차려입은 모습도 길거리에서 자주 마주칩니다. 관광객 또한 일본 그들의 문화에 동화되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세계 3대 불교유적지는 캄보디아의 앙코르와트, 인도네시아의 보로부드르, 미얀마의 바간입니다. 단일 유적으로는 가장 장대한 규모를 자랑하는 곳이지요. 이 세 곳을 모두 보았지만, 내게는 도시로도 그렇고 불교 유적으로도 그렇고 '교토'가 아시아 최고의 도시였습니다(유럽 도시를 많이 못 봐서 단정적으로 말하기는 어렵지만 세계에서도 이만한 도시가 많지 않으리라고 본다). 3대 불교유적지가 한 때의 찬란한 영광으로 남았다면, 교토는 과거의 전통이 지금 이 시대 속에서도 살아있기 때문입니다. 미래에 새로운 문화를 만들어갈 여력과 여지를 가진 곳이 있다면 그곳은 교토였습니다. 

엄밀한 의미에서 '다문화'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자국의 문화에 흡수되거나(동화주의) 샐러드 접시처럼 각각의 문화가 따로 놀면서 한데 버무러져 있을 뿐입니다. 여러 문화를 섞어 놓는다고 해서 문화가 다양해지는 것도 아닙니다. 모든 문화는 민족 문화입니다. 문화 생산의 주체가 민족이기 때문입니다. 한 사회가 밖에서 유입되는 문화를 주체적으로 소화해냈을 때 문화가 풍요로워집니다. 외래 문화를 그냥 다 받아들이는 것은 외래 문화의 이식이지 소화라고 볼 수 없습니다. 소화해낼 수 없는 것을 받아들일 때 문화를 생산하는 주체가 약화됩니다. 자기가 죽는 것입니다. 외래 문화를 자기 것으로 소화해내기 위해서는 먼저 자기 전통과 문화가 있어야 합니다. 그 틀 안에서 새로운 창조가 가능합니다. 그리고 그것을 소화할 만한 충분한 시간도 필요합니다. 

일본 또한 급속한 근대화 과정에서 충격과 자기 부정, 시행착오를 겪었겠지만, 한국이나 중국과 비교했을 때, 튼튼한 자기 전통이 있으며 그래서 서양 문물을 자기 것으로 소화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반면에 우리는 자기 식의 주관을 가지고 외래 문화를 수용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서양 것과 일본 것, 최근에는 다문화까지 맥락 없이 이것저것 이식되어 있는 게 아닌가 싶었습니다. 문화의 유입이 맥락 없이 이루어지는 이유는 문화 생산의 '주체'가 뚜렷이 서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한국에는 과연 어떤 문화가 있는가. 그 문화의 내용과 형식은 어떠한가' 라는 질문이 여행 내내 따라다녔습니다. 한 민족의 중심 문화가 없는 곳에서, 우리가 그것에 기댈 수 있는 훌륭한 전통이 없는 곳에서, 주인 노릇을 하는 것은 언제나 자본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헬레나 노르베리 호지가 라다크에서 발견한 '오래된 미래'를 나는 교토에서 발견했습니다. 앞으로 우리가 만들어갈 사회의 방향에 대한 영감을 얻고 싶다면, 먼저 가까운 교토부터 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두 번의 방문이라 아직 잘은 모르지만, 일본이 이룩한 것과 일본이 이룩하지 못한 것들에 대한 대체적인 조감을 교토에서 얻을 수 있으리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2017/2, 2018/5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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