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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여행 이야기/일본

오사카를 만나다 '17

by 릴라~ 2017. 7. 16.

한 나라를 제대로 이해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내 나라를 아는 것도 만만치 않지만 남의 나라는 더욱 그렇다. 특별한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다면, 단편적 지식이나 언론이 보여주는 일방적인 이미지에 머무는 수가 많다. 일본도 내겐 흔히 하는 말처럼 '가깝고도 먼 나라'였다. 일본 영화나 음악은 접했지만, 매스컴에서 본 일본 전통문화의 이미지는 생경했고, 크게 내 호기심을 자극하지는 않았다. 임진왜란과 일제강점기라는 두 가지 지배적인 이미지로 각인되어 잘 알지도 못하면서 잘 아는 것처럼 착각하고 있던 나라가 일본이었다. 

 

일주일 정도 가볍게 여행할 곳을 찾다가 대구 출발 저가항공이 생겨서 일주일간의 오사카/교토 여행을 계획하게 되었다. 오사카는 지리적 가까움 때문에 도쿄보다 우리 역사와 더욱 밀접한 곳이다. 일제강점기 이래로 가장 많은 재일교포가 살고 있는 곳이고(지금은 동경이 더 많아지고 있다고 한다) 해방 후에도 제주 4.3 사건으로 많은 사람들이 일본으로 건너가서 오사카 재일교포 중에선 제주 교민이 제일 많다고 한다. 오사카 국제공항은 대구공항에서 1시간 정도 걸렸고 공항에서 시내까지 다시 한 시간 정도 더 걸렸다.

 

오사카의 첫인상은 도쿄보다 훨씬 활기찬 느낌이었다. 도심에는 어디든 사람들이 넘쳐났고 유명 관광지에 온 듯한 기분이 들었다. 난바 역과 도톤보리 인근에 특히 관광객이 많았다. 오사카 흑문시장은 매우 인상적이었는데 재래시장이 이처럼 관광명소로 자리한 곳이 그리 흔치는 않으리라. 난바 역, 도톤보리, 흑문시장 일대는 아케이드가 죽 연결되어 있어 저녁 나절 도심의 분위기를 즐기며 도보로 여행하기에 좋았다.

 

오사카 주유패스를 끊었기 때문에 주유패스로 갈 수 있는 관광지를 많이 들렀다. 요토미 히데요시가 세운 오사카성 천수각은 오사카의 역사를 실증하는 대표적인 유적이다. 오사카 성과 주변의 해자는 규모가 상당해서 당시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권력을 짐작케 한다. 성 안에 박물관도 있는데 친구는 하나하나 보면서 꼭대기까지 올라갔다고 매우 인상적이라 했지만 는 의미를 잘 몰라서 그냥 슥 훑어보았다.

 

오사카성 바로 근처에 오사카 역사박물관과 피스 박물관이 있었다. 역사박물관은 오사카라는 도시의 역사를 시대별로 보여주는 곳인데 시실의 유물에는 제목을 제외하고는 영어 설명이 거의 없었다. 광객을 위한 장소가 아니라 일본 사람 그들 자신을 위한 장소임을 알 수 있었다. 

 

스 박물관은 2차 세계대전의 참상을 보여주는 곳이다. 한국어 오디오가이드도 있어서 꼼꼼이 둘러보았다. 쟁 때 오사카가 거의 완전히 파괴된 모습을 볼 수 있었고 그 폐허에서 지금의 도시를 이룩하기까지의 일본인들이 기울인 헌신도 짐작할 수 있었다. 오사카에서 가까운 교토가 전쟁의 참화로부터 살아남은 것이 기적이라 할 만했다. 하지만 전쟁을 일으킨 당사자는 일본인데 일본이 마치 전쟁의 피해자인 것처럼 느껴지게 만든 곳이었다. 

 

우메다 지역은 구도심인 난바와 달리 고층 건물과 백화점이 즐비했다. 한큐백화점을 비롯하여 현대적인 건축의 창조적인 공간 설계와 세련미가 느껴졌다. 여행지에서 타워나 스카이라운지 등에는 잘 들르지 않는데 우메다 공중정원은 한번 들러볼 만했다. 밤에 올라갔는데 예상보다 훨씬 높았고 에스컬레이터에서부터 긴장과 설렘을 느꼈다. 전망대에서 바라보는 오사카의 야경은 운치가 있었다. 

 

도톤보리 인근의 숙소가 방이 다 차서 난바역에서 4정거장 떨어진 한적한 동네에서 숙박했다. 대도시인데도 8시가 넘어가면 쥐죽은 듯이 조용해지는 것이 우리나라와 많이 달랐다. 상가 지구가 따로 있어 상점은 상가에 모여 있는 점이 특징이었고 작은 도로건 큰 도로건 도로에 주차한 차가 한 대도 없고 어떤 좁은 골목에 들어서더라도 거리가 다 깨끗해서 걸어다니기에 참 좋았다. 작고 소박한 집들이 연이어 붙어 있는 광경도 인간미 있어 보였다. 철도의 나라라는 별칭처럼 오사카 시내는 물론 인근 구석구석까지 기차로 연결되는 점도 장점으로 보였다.

 

시내 주요 장소에는 경비원이 직접 지키고 서 있는 곳이 많았다. 그만큼 노인 일자리를 적극적으로 창출하고 있다는 의미도 되고, 사람이 직접 관리하니 관리가 잘 되는 면도 있으면서 한편으로는 감시의 시선으로 다가오기도 했다. 감시 카메라가 있는 것과 사람이 직접 지키는 것은 느낌이 달랐다. 물론 아예 관리하지 않는 것보다는 훨씬 낫다. 여행자에겐 안전한 천국이지만 이 사회에서 직접 살아간다면 어떤 느낌일까. 그건 살아보아야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재일교포의 역사를 알 수 있는 오사카 인권 박물관(리버티 오사카)은 시간이 부족해 들르지 못했다. 이재갑 선생의 '한국사 100년의 기억을 찾아 일본을 걷다'에 오사카 성 인근에 재일교포들이 모여 사는 동네가 나오는데 그곳 또한 찾기가 어려워 포기했다. 오사카는 일본인들에게는 오랜 역사의 도시이자 태평양전쟁으로 파괴된 도시이고 전후 일본의 급속한 발전상을 자랑할 만한 일본 제2의 도시지만 우리에겐 일제강점기 및 4.3과 관련된 아픈 역사의 한자락과 맞닿아 있는 곳이다. 재일교포의 역사를 좀 알아야 우리에게 오사카가 어떤 곳인지 말할 수 있으리라.

 

오사카 시 인구는 270만이지만 오사카는 인근 주요 도시를 포함하여 오사카 부 880만의 주도이므로 도시의 경제적인 규모로 볼 때는 대구나 부산과는 비교가 안 되어 보였다. 차분한 도쿄에 비해서 분위기는 훨씬 활기가 있었는데 그런 면에서 오사카는 부산과 비슷하다는 말에 동감했다. 안타까운 점은 아기자기한 해안선이 일품인 부산의 자연 경관은 오사카보다 훨씬 뛰어남에도 불구하고 도시 설계의 차이가 이 두 도시의 품격을 현저히 갈라놓았다는 점이다. 부산 해운대와 달맞이길은 최근 난개발로 천혜의 자연경관이 지닌 그 아름다움이 너무 많이 손상되었다.

 

선진국의 도시와 비교할 때 우리의 도시는 도시의 주인이 그곳에 거주하는 사람이 아니라 '업자들'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우리나라는 업자들이 어디를 가나 무분별하게 지어놓은 콘크리트가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면 일본의 도시는 한층 안정되고 정리된 느낌이었다. 우리의 도시도 그 도시의 역사는 물론 본래의 자연 풍광의 아름다움이 잘 살아나는 방식으로 정리되면 좋겠다. 그러려면 관련자들이 자기 세대에 한 건 크게 해먹겠다는 생각을 버리고 후손에게 아름다운 도시를 물려주려는 그런 마음을 내야 한다. 그 차이가 도시의 미래를 바꿀 것이었다. 그 현격한 관점의 차이를 나는 이후 교토에서 한층 또렷하게 목격하게 되었다.

 

 

 

* 여행한 때 : 201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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