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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이야기/철학, 심리

어린왕자, 진짜 중요한 건 눈에 보이지 않아 | 김서영 외 ㅡ 정신분석학으로 들여다본 '어린왕자'

by 릴라~ 2018. 10. 20.

저자가 수업시간에 대학생들과 함께 작업한 내용을 엮었다. 정신분석학적 관점에서 어린왕자를 분석한 책. 학생들의 독창적 해석에 감탄하며 읽었다. 제일 기억에 남는 부분을 남겨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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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빈    "어느 날 난 마흔네 번이나 해넘이를 보았어!"

 

이 구절을 우연처럼 마주한 순간, 제일 먼저 이렇게 생각했어요. 나라면 마흔네 번이나 해넘이를 보지는 않았을 거라고요. 아뇨, 볼 수 없었겠죠. 어린 왕자는 슬플 때 해넘이를 보며 자신의 슬픔을 곱씹어요. 그것도 마흔네 번이나요. 누구에게나 자신의 슬픔을 마주하는 것은 버거운 일이에요. 숨기고 싶은 부분이죠. 그런 감정이 다소 부끄럽기도 하고, 또 초라해 보이기도 하며, 두렵기까지 하죠. 어떤 생산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 미성숙한 감정인 것처럼 생각되잖아요.

 

자신의 그림자에 대해서도 같은 이야기를 할 수 있지 않나요? 모든 사람은 그림자를 가지고 있다고 말씀하셨죠? 그림자란 말 그대로 자신의 어두운 부분, 즉 개인이 숨기고 싶은 부정적이고 불쾌한 요소들일 거예요. 분석심리학 강의에서 배웠듯이, 존재하는 모든 것은 그림자를 드리울 수밖에 없어요. 하지만 자아와 그림자의 관계는 빛과 어둠처럼 구분되지는 않는 것 같아요. 단순히 선과 악의 관계처럼 하나는 좋고 하나는 나쁜 것으로 정의하면 안 된다고 하셨잖아요. 구렁덩덩 신선비에서도 검은 빨래는 희게, 그리고 흰 빨래는 검게 만들었죠. 모두 검은 빨래를 희게 만드는 게 맞다고 생각하지 흰 빨래를 검게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해본 적은 없을 거예요.

 

어둠만으로는 살아갈 수 없듯이, 빛을 배워 검은 빨래는 희게 만들어야 해요. 그리고 또 반대로, 빛만으로 살아갈 수도 없듯이 어둠을 인정하고 마주 보며 흰 빨래는 검게 만들어야 해요. 자신의 그림자를 바라볼 수 있어야 합니다. 자신이 숨기고 외면하려 하는 부정적인 요소들을 마주하고 사유할 수 있어야 비로소 자기 자신의 개별성을 깊게 이해할 수 있게 될 거예요. 그게 개성화 과정을 거치며 성숙을 이루어낸다는 뜻이 아닐까요? 그림자 없이 어떻게 온전한 인간이 존재하겠어요? 바로 이 그림자가 개인을 그 자신으로 만들어주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선생님은 그렇게 설명하지 않았지만, 저는 그림자가 개개인의 슬픔과 깊이 연관되어 있는 것 같아요. 어두운 이야기, 숨기고 싶은 개인의 부정적인 요소들은 대개 슬픔을 야기하잖아요. 어린 왕자는 이 슬픔을 외면하지 않고 해넘이로 대상화시키는 거예요. 그건 자신의 그림자를 바라보는 행위와 같다고 생각합니다.

 

아마도 그건 감당하기 힘든 슬픔이었을 거예요. 어린 왕자 또한 조금은 그 슬픔을 외면하고 싶었을지도 몰라요. 하지만 해가 뜨고 다시 느릿하게 넘어가는 아릿한 장면을 마흔네 번 보는 내내 어린 왕자는 가슴속으로 그 슬픔을 곱씹고 마주 보고 다독였겠죠. 그것은 자신의 내면을 깊이 이해하려는 행위입니다. 그건 그림자와 하나가 되는 조화를 뜻하며 성숙을 의미합니다. 누구에게나 슬픔이 있고 그림자가 있지만, 그걸 깊이 들여다보는 건 힘든 일이에요. 하지만 외면하고 있던 그림자를 들어야볼 때 비로소 자신에 대한 심층적인 이해가 가능해질 겁니다. 그렇게 개성화 과정을 거쳐 인간적인 성숙이 가능해지는 게 아닐까요? 

 

선생님, 우리 모두 어린 왕자와 같이 마흔네 번 해넘이를 봐요. 내 슬픔을 외면하지 말고, 내면의 그림자를 피하지 말고, 들여다봐요. pp84-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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