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수업한 소설은 '아우를 위하여/황석영', '이상한 선생님/채만식', 그리고 '박씨전'이다. 박씨전은 오래 전에 한번 다루어보았지만 '아우를 위하여'와 '이상한 선생님'은 교과서에서 만나기는 처음이다. 그러다보니 아쉬움이 많이 남는 수업이었다. 수업이 다 끝나갈 즈음에야 중학생 수준에서 다룰 수 있는 작품의 매력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황석영의 '아우를 위하여'는 특별한 소설이다. 부당한 폭력에 대한 강렬한 저항 정신 담고 있기 때문이다. 담임 교사의 방조 아래 힘깨나 쓰는 아이들이 장악한 초등학교 교실, 주인공 '나'는 처음에는 두려움과 무관심으로 방관하지만 참다 못해 '아니오'를 외친다. 반 아이들이 '나'의 외침에 동조하기 시작하는 순간 부당한 권력을 행사했던 무리는 힘없이 몰락한다. 그리고 '나'가 이렇게 정신적으로 성장해가는 과정에는 그가 존경해마지 않는 '교생' 선생님의 가르침이 한 몫 한다. 아무리 두려운 권력이라도 사람들이 힘을 합치기만 하면 무너뜨릴 수 있다는 메시지를 초등학교 교실 상황을 통해 전하는 소설이다. 청소년기에 한번쯤 다룰 필요가 있는 주제이고, 이런 작품이 교과서에 드물어 뜻깊은 기회였는데, 그 기회를 잘 살리지 못해 아쉽다.
'우리는 무엇을 두려워하는가'에서 수업 말문을 열었는데 추상적인 질문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요즘 학생들은 권력/폭력에 대한 두려움을 실감하지 못하고 대부분 '시험'이라고 답했기 때문이다. 각자의 심리적 두려움을 화제로 삼을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사회적 폭력'에서 말문을 여는 것이 나아 보였다. 각자가 경험한 폭력, 부당하다고 생각했던 일들, 거기에서 이야기를 시작하는 것이 더 초점이 분명해 보인다.
본문을 다룰 때는 작품의 배경에서 시작하여 각각의 인물들의 가치관과 사건을 꼼꼼이 분석하고, 폭력에 저항하기 위해 작가가 제시한 해결책에 대해 의견을 나누어보고, 나는 학급 구성원들 중에서 평소 누구와 비슷하다고 생각하는지 등을 말해보면서 작품을 마무리했다. 그런데 인물/사건/배경이라는 기본 틀로 소설을 바라보는 것은 소설의 강렬한 주제의식을 맛보기에 부족한 감이 있었다. 소설을 읽으며 각 부분에서 인상에 남는 문장/내용을 찾아보고 그것이 왜 의미 있게 다가왔는지, 거기에서 이야기를 시작하는 것이 작품의 강렬함에 빠져들기가 더 쉬워 보인다. 그리고 함께 이야기할 만한 질문을 탐색하고 해석을 시도하면 어떨까 싶다.
채만식의 '이상한 선생님'도 여러모로 아쉬웠다. 분량은 짧지만 역사적 함의가 적지 않은 작품인데 말이다. 해방 직후 친일파였던 뼘박 박선생은 친미파로 변신해 승승장구하고, 조국에 대한 애정과 선의를 지녔던 강선생은 빨갱이로 몰려 쫒겨난다. 작품의 어린이 화자인 '나'는 천황을 섬기고 미국 트루먼 대통령을 섬기는 박 선생이 참으로 '이상한 선생님'이라고 되뇌이는 내용이다.
해방 직후의 역사적 사실을 좀 알아야 작가의 비판 정신을 제대로 느낄 수 있는 작품인데, 국어 시간에 이에 대한 배경지식을 어디까지 다루어야 할지가 문제였고 학생들이 크게 흥미 있어할 만한 부분도 아니어서 고민이 많이 되었다. 단원 목표는 '반어'를 익히는 것이었다. 이 소설이 반어적 표현을 많이 쓰고 있지만, 세태에 대한 비판 정신을 반어로 표현한 것이므로, 반어 그 자체보다 작가가 당시 상황을 바라보는 관점, 태도, 비판 정신을 만나는 것이 중요했다.
그러려면 뼘박 박 선생과 강 선생의 대조적인 모습을 분석하면서 작가의 의도를 따라가면 되는데, 수업을 끝내고 보니 지나치게 부정적인 인물인 박선생에 집중했다는 생각이 든다. 강 선생은 일제 치하에 압장서 저항하지는 못했지만, 마음속으로 무엇이 옳고 그런지 알고 있는 인물이며 그래서 일본말을 대놓고 쓰지 않았으며 해방이 되자 온 마음으로 기뻐하며 적극적으로 저항하지 못한 시간을 참회하는 모습을 보인다. 하지만 학생들은 강 선생에 호감을 품기보다는, 그 시대에는 어쩔 수 없는 일이었노라며 박선생의 행동이 어쩌면 당연한 것이고, 강선생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우유부단한 인물이 아니냐 하는 반응이 꽤 있었다. 의외의 반응이었다. 소설에서 화자인 '나'는 박 선생을 참 이상하다고 바라보는데, 학생들은 화자의 시선을 따라가기보다는 자신의 평소 생각을 고수한 것이었다. 소설 감상이 미흡했다고도 볼 수 있다. 수업 말문을 열 때, 학생의 시선에서 '이상한' 선생님 혹은 어른들의 행동을 짚어보고, 해방직후 이 시대의 가장 이상한 광경을 들여다보는 식으로 연결하여, 화자의 시선을 좀 세밀하게 따라가보는 것이 필요할 듯 싶다. 그리고 박 선생과 강 선생을 대등한 비중으로 다룰 필요도 있었다.
나는 일제에 앞장서 저항하는 독립투사는 못될지라도 적어도 마음으로는 무엇이 옳고 그른지 알고 박선생과 달리 일본에 대놓고 아부하거나 협력하지 않은 인물인 강 선생 정도만 되어도 양심적인 삶이 아닐까 하는 이야기로 수업을 마무리했다. 인물/사건/배경 위주로 소설을 살펴보는데 머물지 말고 이 소설에서 특별한 화소 즉 해석이 필요한 부분을 함께 짚은 뒤에 그 부분에 대해 더 깊이 이야기를 나누는 방식이 필요해 보인다.
'박씨전'은 '문학과 역사' 단원에 엮여 있는 작품이다. 소설이나 영화 중에서 역사적 사건을 다룬 것이 무엇인가에서 말문을 열었는데, 역시 지나치게 질문의 범위가 넓었던 것 같다. 문학과 역사는 내게는 매우 흥미로운 주제였으나 학생들에겐 아니었다. 장르적 특징 말고, 오히려 '전쟁과 평화'에 대한 이야기에서 수업을 시작했으면 어떨까 싶다. 인류 역사에서 전쟁은 피할 수 없는 사건이었고, 이 전쟁이란 것이 우리 삶에 미치는 영향을 생각해보는 것으로 주제를 삼는 것이다. '역사'를 다룬 작품이 아니라, '전쟁'이라는 역사적 사건을 담은 작품을 알아보고, 소설 '박씨전'에는 병자호란이라는 전쟁이 어떤 방식으로 기술되어 있는지 살펴보는 것이다.
병자호란은 영화 '남한산성'의 한 대목을 보았는데, 충분한 해설이 되어서 좋았다. 수업 초점은 박씨전에서 역사적 사실과 허구를 구분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허구적으로 창작된 부분 속에 담긴 창작자의 의도를 추리했는데, 이 방식은 괜찮았다. 박씨전은 처음부터 끝까지 역사와 허구가 섞여 있었고, 그 허구성 속에 담긴 창작자의 의도도 쉽게 유추할 수 있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여성 영웅이 등장하고, 도술을 부리고, 용골대를 혼내는 매 장면마다 '정신 승리'의 흔적이 보이며, 사람들의 마음을 치유하는 역할로서의 소설의 가치 뿐 아니라 그 시대 인식의 한계까지 생각해볼 수 있는 작품이었다.
소설 읽기는 작가가 글자로 묘사한 세상 속을 들여다보는 일종의 여행이다. 그런데 수업 시간의 소설 읽기는 지나치게 패키지 여행에 가깝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든다. 무엇에 주목하고 무엇을 살펴야 할지 교사(가이드)가 다 알려주는 식이다. 여행에서 풍부한 설명이 필요할 때도 있지만, 본질적으로 여행은 패키지보다 배낭여행이 대상을 더 깊게 만나게 한다. 패키지 여행에서 모두가 똑같은 장소에 가서 똑같은 것을 본다면, 배낭여행에서는 각자가 보는 풍경이 다 다르다. 소설 읽기도 약간 배낭여행식의 만남이면 좋겠다. 배낭여행을 하듯 작품 속을 자유롭게 여행할 수 있도록 수업을 구성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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