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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이야기/수업 이야기

해석의 즐거움, 이육사의 '청포도'

by 릴라~ 2019. 11. 17.

수업을 해보면 알게 된다. 다루는 작품마다 영향력의 크기가 다 다름을. 우리 안에서 더 깊고 풍부하고 절실한 감정을 끌어내는 작품이 따로 있다. 세대를 초월해 보편적 울림을 주고 열린 해석의 가능성을 선물하는 작품들. 시를 예로 들자면 윤동주, 이육사, 한용운 시인의 작품들. 이런 작품이 내겐 마스터피스다. 

일제강점기, 그 엄혹한 시대를 가장 순정한 마음으로 맞섰기 때문일까. 특별한 어휘나 수사법을 부려 쓰는 것도 아닌데 이들 작품이 주는 감동은 남다르다. 그 감동이 전혀 다른 세상을 살고 있는 사춘기 학생들에게도 살풋 전해지는 모습을 볼 때 나는 문학이 지닌 고유한 힘을 깨닫곤 한다. 

43년의 짧은 생. 17번의 투옥. 의열단원. 해방 일 년 전 북경 감옥에서 옥사. 40여 편의 유고시...

올해엔 이육사 시인을 만났다. 지역에 대해 공부하며 지역 작가의 작품도 한 번 다루고 싶었다. 대구 출신 소설가로는 '운수 좋은 날'의 현진건, '마당 깊은 집'의 김원일 선생 등이 있고 시인으로는 이상화, 이장희 시인 등이 있다. '시'로 마무리하고 싶은 단원이어서 시로 정했는데 이상화 시인의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는 중1에게 다소 어려울 것 같았다. 그래서 안동 출신이지만 십대와 이십대 대부분을 대구에서 보낸 이육사 시인을 택했다. 

이육사 시인의 필명 264도 시인이 1927년 대구형무소에 갇히면서 붙여진 이름이다. 이육사 시인과 형제들은 대구 조양회관을 중심으로 활발하게 청년운동을 하고 있었고, 그래서 조선은행 대구지점 폭파사건이 터지자 일본은 바로 이육사 시인과 형제들을 구속한다. 진범 장진홍 의사가 붙잡히면서(이분은 가진 땅을 모두 팔아 독립운동을 하다가 감옥에서 자결하셨다) 시인과 형제들은 풀려나지만 극심한 고문으로 고초를 겪었다. 시인의 기나긴 투쟁의 시작이었다. 대구 중구에 있던 당시 조선은행 대구지점 건물은 현재는 '근대역사관'으로 쓰이고 있다. 

이육사 시인의 대표작, '광야', '절정', '꽃' 등이 다 좋지만 중1이 접근하기 쉬운 '청포도'를 택했다. 작품 해석에 앞서 우리는 먼저 시인의 생애를 자세히 조사했다. 시구에 함축된 시인의 마음에 다가가려면 그 삶의 행로에 대한 이해가 필수다. 특히 이육사 시인처럼 글과 삶이 일치하는 경우는 더욱 그렇다. 안동에서 대구로, 도쿄 유학, 잦은 만주와 베이징 방문, 난징의 의열단 활동, 서울에서 다시 북경까지 '초인'처럼 한 길을 걸어온 시인의 삶은 아이들에게도 놀라움과 감동을 주었다. 이후 우리는 한 구절, 한 구절 해석에 도전했다. 

 

“내 고장 칠월은 청포도가 익어가는 시절”

시인은 왜 당시 안동에 없던 청포도를 선택했을까? 아이들의 상상은 다양하게 뻗어나갔다. <청포도는 우리나라 사람들이 잘 접해보지 못한 것이다. 독립도 경험해보지 못한 것이기에 새로운 느낌을 주는 과일을 택했다. 새로운 세상의 밝고 푸른 느낌을 청포도가 표현하는 것이다.> <사과처럼 한 알이 아니라 여러 개의 작은 알이 모인 게 포도다. 독립을 향한 수많은 사람들의 마음이 하나로 합쳐서 영그는 모습을 뜻하는 것 같다.> <우리가 아는 청포도가 아니라 포도가 보랓빛으로 익기 전, 푸른 색일 때를 뜻한다. 푸른 색이 희망의 느낌을 주며 포도가 다 익었을 때 고향에 돌아갈 수 있으리란 마음을 담았다.> <지친 몸으로 감옥에서 나온 후 시장에서 난생 처음 청포도를 구경하고 그 맛과 향에 감동해서 시를 쓴 게 아닐까.>

“이 마을 전설이 주저리주저리 열리고”

아이들은 '전설'을 단순히 옛이야기로 보지 않고 더 생생한 오늘의 이야기로 읽고 있었다. <안동에 자유와 해방에 관한 전설이 있었는데 그게 식민지 때 끊어졌다가 다시 이야기되는 것이다.> <이육사 시인이 항일정신이 있었으므로 전설은 독립운동을 한 많은 사람들의 이야기가 열리는 것이다. 역사가 청포도처럼 새로 시작되는 것이다.> 라고들 했다. 

“하늘 밑 푸른 바다가 가슴을 열고 흰 돛단배가 곱게 밀려서 오면”

굉장히 따스하고 평화로운 느낌을 주는 구절이다. 아이들은 <우리나라를 둘러싼 바다조차 따뜻해지는 느낌을 받았다.>고 했고,  <만주, 일본, 중국을 떠돌던 사람들이 고향으로 돌아오는 모습을 표현한 것이다.> 라는 이야기가 많았다. 

“내가 바라는 손님은 고달픈 몸으로 청포를 입고 찾아온다고 했으니” 

이 구절은 아주 많은 학생들이 무언가 뭉클함이 느껴지는 대목이라고 꼽은 대목이다. 아이들은 독립운동가는 항상 고달프구나 하는 것이 느껴졌다고 한다. ‘내가 바라는 손님’에 대해서는 <함께 독립운동을 했던 이육사 시인의 형제들이다> <시인이 존경했던 의열단의 김원봉이다> <돌아가신 어머니를 다시 만나고 싶었을 것이다> 라고들 이야기했다. 

"내 그를 맞아 이 포도를 따먹으면 두 손은 함뿍 적셔도 좋으련”

이 구절 또한 앞 구절처럼 아이들이 인상적이라고 많이 꼽은 부분이다. <지친 독립운동가들이 이제 여유를 가지며 포도를 따먹고 서로 위로하고 싶은 마음을 나타냈다>, <독립운동을 하며 피를 흘렸던 시간이 끝나고 포도로 두 손을 적시는 여유롭고 평화로운 시간이 느껴진다>는 대답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시인이 보낸 투쟁의 나날과 대비되는, 평화로운 세상에 대한 꿈과 소망이 담뿍 느껴지는 구절이다. 

“아이야 우리 식탁엔 은쟁반에 하이얀 모시수건을 마련해두렴”

마지막 구절에서 아이들은 <시인이 ‘모시수건’으로 고생한 모든 사람들의 피와 땀을 닦아주고 싶은 마음을 표현했다>고 했다. <아이는 미래 세대를 뜻한다, 시인과 동료들은 독립투쟁으로 고생하고 있지만 그건 반드시 이루어질 것이기에 지금 후손에게 그 날을 미리 준비하라고 말하는 거다>라는 대답도 있었다. 

 

밝고 평화롭고 따스하며 그간 고생한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위무하는 시다. 그 치열한 고투의 나날 속에서 어쩜 이렇게 온화하고 정결한 시를 썼을까. 폭풍 지난 후의 바다처럼 삶의 모든 파고를 겪어낸 이의 뜨겁고 잔잔한 평화가 우리 앞에 열리는 것 같다. 이 한 편의 시에 시인은 자기 마음 한 조각을 또렷이 새겨놓았구나 싶다. 

우리가 작품 해석을 시도하는 이유는 결국 타인의 마음에 다가가기 위해서이다. 해석에 해석을 거듭하고 더 좋은 해석을 찾아가는 과정은 누군가의 마음을 오롯이 이해하고 싶어서이다. 너를 알고 싶어서 노력을 기울이는 것, 곧 사랑의 실천에 다름 아니다. 읽기란 타인의 마음에 다가가는 행위이고 우리의 모든 언어 또한 타인에게, 혹은 내 안의 타인, 내가 몰랐던 나의 한 부분에 말을 걸고 다가가려는 노력이다. 그래서 말하고 읽고 쓰는 일체의 활동은 낱낱의 기능이 아니라 존재론적 행위이다. 타인에 대한 존경, 그의 마음과 그가 엿본 진리를 나도 발견하려는 노력 속에서 학생들의 언어도 꽃이 핀다. 우리는 이러한 배움을 위해 '해석의 공동체', 교실을 필요로 한다. 

이 작품을 공부하며 학생 전원이 시를 암송했다. 17번 투옥된 시인의 생애를 생각하면 전 작품도 외울 수 있을 것 같다고, 한 편 쯤은 꼭 외워야 한다고, 그게 후손의 마땅한 도리라고 하면 아이들은 두말 없이 기꺼이 외운다. 다함께 입을 맞추어 시를 암송하는 순간이면 시인이 잠깐 우리 곁에 머물다 가는 것 같다.  이 시에 공감하는 학생들이 많은 것도 마음과 마음이 만났기 때문일 것이다. 

 

 

 

 

 

 

 

 

 

 

 

https://ssam.teacherville.co.kr/ssam/contents/20429.edu

 

이육사 <청포도> 활동지

1. 이육사 청포도 수업을 위한 2장의 활동지와 학생 답안 예시입니다. 2. 이 수업은 학생 주도의 질문으로 계획되어 있습니다. 활동지 1쪽은각연마다 학생들이 질문을 만드는 활동을 하게 되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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