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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스트셀러를 챙겨보는 편이 아닌데, 한국에서 자그마치 70만부나 팔렸다는 게 놀라워서 사본 책이다. 아주 옛날에 도서관에서 이 작가의 책을 집어든 적이 있는데(제목도 기억 안 남) 첫인상이 별로였던 탓에 이후로 무라카미 하루키의 책은 읽은 적이 없다. 1Q84가 처음이다.
스토리의 흡입력은 정말 대단하다. 두꺼운 책 두 권을 잠 안 자고 단숨에 읽을 수밖에 없었으니. 리틀피플, 공기번데기, 종교집단 등에 얽힌 미스터리의 끝을 확인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1권에서 매우 진지하게 전개되던 사건들이 2권에서 다소 싱겁게 종료되는 면이 없지 않아 있긴 했지만 말이다. 마치 영화를 보듯 눈앞에 생생하게 떠오르는 이미지들, 그걸 가능케 한 치밀한 묘사의 힘도 놀라웠다. 마치 현실 속에 주인공들이 출현할 것 같은, 그들이 내 옆에 있는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였다. 아무튼 강렬한 느낌을 주는 작품임에는 틀림 없다. 독특한 플롯, 독특한 문체, 거기에서 비롯된 독특한 분위기.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무라카미 하루키의 팬이 될 수는 없을 것 같다. 1Q84의 아오마메, 덴고, 노부인, 다마루 등은 공통점이 있으니 그것은 바로 그들이 세상과의 연결을 상실한 인물들이라는 점이다. 그들이 세상과 절연된 배경에는 그들의 어린 시절의 상처가 놓여 있다. 부모의 부재, 성폭행 등의 트라우마. 짐작 가는 바가 있어 작가의 프로필을 보니 1949년생이다. 전후 세대, 짙은 허무주의. 세상으로부터, 그리고 자신의 삶으로부터 고립되어 있던 아오마메와 덴고는 두 개의 달이 떠 있는 1Q84년의 세계 속에서 자신들을 삶과 연결해주는 유일한 끈인 상대방을 찾게 된다. 그것이 그들에게 단 하나 남은 구원이었다. (그런데 열 살 때의 만남 이후로 죽 상대방을 생각해 왔다는 것이 가능한 일인지...)
일본 문학, 그리고 한국 문학에 깔려있는 이 우수, 이 고립, 이 서글픈 패배주의의 정체는 무엇일까. 세상 속으로 나아가지 않고 자기 내면으로 파고드는. 일종의 내면에의 천착. 서양 문학은 비극적인 작품일지라도 이와는 다른 어떤 힘이 있다. 스케일이 크다는 말이다. 중국 문학도 잘은 모르지만 좀 다르다. 다이 호우잉의 '사람아 아 사람아' 같은 작품이 담고 있는 장중함이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엔 없다. 일본 만화를 연상시키는 캐릭터와 결벽에 가까운 지나치게 세부적인 묘사(특히 성에 관련된)도 내 취향이 아니었다. 리틀 피플과 종교 단체 '선구' 이야기도 충분히 서술되지 못했다고 생각한다.
우리 시대가 이 소설의 주인공들처럼 삶의 '공백' 속에서 살아가는 외로운 주체들일 수도 있다. 그리고 무라카미가 그 도시적 외로움, 관계의 절연과 의미 없음을 가감없이 드러내 보여준 것일 수도. 그래서 그렇게 잘 팔리는 것일 수도. 나 또한 때때로 깊은 고독을 느끼지만, 그럼에도 내가 속한 세계와 아오마메와 덴고가 속한 세계가 전혀 다르고, 그 때문에 내가 덜 공감하는 것인지도. 아니, 주인공들에게 공감하지 못한다기보다는, 작가의 문제 해결 방식에 공감하지 못하는 것일 게다.
결론적으로 1Q84는 아주 재미있었지만, 이 작가의 다른 작품을 읽고 싶은 마음은 현재로선 그다지 들지 않는다. 미문에 질린다고 해야 할까. 문장 사이에 여백이 있어야 독자가 여유를 가질 수 있는 법이다. 이 책은 소설보다는 한 편의 영화를 보는 것 같은 느낌을 준다. 그만큼 사건이 긴박하게 전개되고 독자가 사색할 여지는 적다는 말도 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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