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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이야기/영화, 드라마

[넷플] 더 데이즈 __ 후쿠시마 원전 사고, 그 직후

by 릴라~ 2023. 8. 26.

2011년 봄날을 기억한다. 

3월, 개학한 지 얼마 지나지 않은 시점이라 기억이 더 또렷하다. 

일본 후쿠시마 원전 사고. 

뉴스를 볼 때의 느낌은 마치 세상의 종말에 다다른 듯한

그런 기묘한 느낌이었다. 

9.11 테러처럼. 너무 엄청난 사건이라

영화 같이 다가오고 실감이 나지 않았던...

 

그리고 2023년 8월, 일본 정부는

태평양 바다에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를 시작했다.  

앞으로 장장 30년이나 그 물을 바다에 버릴 거란다. 

사고 이후 12년 동안 일본 정부는 더 좋은 해결안이 있음에도

그 길을 모색하지 않고, 가장 값싸고 손쉬운 방법을 택했다.

그리고 이러한 결론은 이미 사건 직후 일본 정부와 도쿄전력의 태도에서

예상 가능한 것이기도 했다. 

 

드라마 <더 데이즈>는 후쿠시마 원전 사고 직후

그것의 수습 과정을 다룬 8부작 드라마다. 

후쿠시마 제1원전 소장이자 현장 책임자인 요시다 마사오의 기록과

저널리스트 카도타 류조가 90여 명을 인터뷰한 기록을 바탕으로 만들어졌다. 

이야기가 간혹 등장하는 도쿄의 국무총리 공관을 제외하고는

전부 후쿠시마 원자력 발전소, 그것도 주로 통제실이라는

한정된 공간을 배경으로 진행되기에 조금 느리고 지루한 감이 있다. 

하지만 어떻게든 문제를 해결해보고자 하는 요시다 마사오 소장에

감정이입해서 드라마에 빠져들게 되므로

끝까지 집중력을 잃지 않고 볼 수 있었다. 

다양한 등장인물, 드라마틱한 전개, 심오한 질문이 오가는

<체르노빌>과는 비교되지 않지만

재난 앞에서 그 실체를 분명히 드러내는 일본 관료주의의 각종 병폐와

원전 사고의 무시무시한 결과를 알 수 있다는 점에서

좋은 드라마라고 생각한다. 

 

이 드라마에서 주목할 점은 서로 엇갈리는 시선들이다.

일본 원전은 우리나라처럼 공기업이 아니라 민간기업에서 운영한다.

토오전력(도쿄전력)은 이런 엄청난 재난 앞에서도

앞으로 원전을 재사용할 수 있을 지 기업의 손익을 먼저 계산하고 

간 나오토 총리에게 신속하고 제대로 된 정보를 제공하지 않는다. 

전문적 지식도 없이 해당 부서의 장으로 앉은 관료들은

꿔다 놓은 보릿자루처럼 실속 없는 말만 늘어놓고 책임 회피에 급급하다. 

대피 범위를 어디까지 해야 할 지도 가이드라인이 없이 의견이 분분하다. 

결국 상황 파악은 되지 않고 열 받은 총리는 현장으로 직접 찾아가는데,

현장에서는 쓰나미로 모든 계기판이 죽어버려 사태를 짐작할 수 있는 게 하나도 없다. 

 

그 상황에서 가장 악착 같이 진심을 갖고 매달린 사람들은 현장 근무자들이었다. 

요시다 소장을 비롯하여 평생 원전에서 일해온 사람들이

비상대책반을 꾸려서 어떻게든 문제를 해결해보려고 사투에 사투를 벌인다. 

그 사투에서 누구나 느끼게 되는 것은

원전 사고는 인간의 힘으로 해결할 수 없는 재난이라는 것이다.

정치인과 기업인이 희망에 찬 에너지이자 빛나는 미래라고 외쳐왔던 것은

결국 인간이 통제할 수 없는 괴물임이 또렷이 드러난다. 

그리고 인류적 재난 앞에서도 기업의 손익만 따지는 토오전력의 태도는

민영화의 문제점은 물론이고 현대사회의 모든 문제를

압축해서 전달한다. 

 

이 드라마의 마지막 장면은 요시다 소장의 독백으로 끝나는데

너무 급하게 마무리된 느낌이 있다.

드라마가 더 늦게 제작되어야 했다.

이 드라마의 엔딩은 12년 뒤 일본이 후쿠시마 앞바다에

오염수를 버리는 장면이어야 했다.

그러면 완성도가 훨씬 높아졌을 것이다.

 

다음은 요시다의 독백이다. 

그는 폐암으로 2013년에 세상을 떠났다 한다. 

 

“밝은 미래라고 불렀던 거대한 건축물은

앞으로 몇 십 년에 걸쳐 직면해야 하는 부끄러운 유산이 됐다.

자연 앞에서 인간은 무력하다.

아름다운 후쿠시마의 하늘과 바다를 앞에 두고 우리는 오늘도

우리의 오만함이 부른 과오를 악착같이 청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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