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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여행 기록/지리산에 머물다

5월에 내리는 눈 - 지리산

by 릴라~ 2008. 5. 20.

가장 짧은 시간 안에 세속을 벗어날 수 있는 곳, 지리산.
몇 시간만 오르면 만나게 되는 다른 세상.
한신 계곡 지나 가파른 산길 끝에 도착하는 천국.
드넓은 평원과 겹겹이 늘어선 산자락이 깊은 평화를 주는 곳,
세석 대피소.

비가 온다는 일기예보 때문에 산에는 평일보다도 사람이 적었다.
그러나 지리산 날씨는 그 날이 되어야 알 수 있다.
모처럼 주어진 연휴라서 택한 지리산행.
산에는 아직 철쭉이 다 지지 않았고 하늘은 흐렸지만 날씨는 온화했다.

힘겨운 걸음 끝에 닿은 세석대피소엔 열 몇 사람밖에 없다.
덕택에 대피소 2층 마루를 혼자 독차지하고,
별 다섯 개 호텔보다 더 편하고 넉넉하게 산속에서 하루를 보냈다.

 

이틑날 새벽, 눈부신 빛살에 잠을 깨었다.
대피소 작은 차창 밖으로 보이는 세상은 하얗게 빛나는 평원!
세상에.... 5월에 하늘은 이곳에 눈을 뿌리고 갔다.
전혀 예기치 못했던, 바라보는 모든 이의 마음에 기쁨을 전해준

5월의 눈.  

 

길을 나설 즈음엔 아쉽게도 해가 다시 자취를 감추었다.
하지만 봄날에 눈길을 걷는 싱그러움은 변함이 없었다.
날이 점점 따스해지자 꽃잎 위에 앉은 눈은 녹기 시작했고,
구름이 몰려왔다 몰려가면서 드러나는 산은

이미 봄기운이 곳곳에 번져 있다.
산, 구름, 하늘, 안개, 꽃향기, 피어나는 연두빛 앞사귀들 속을

몇 시간 헤치며 길을 내려왔다.

 

내려오고 나면 언제나 아쉽다.
짧은 여정이 끝날 쯤이면 늘 차오르는 바람이 있다.
끝이 없는 길을 가고 싶다는 소망. 
답답할 때 가끔씩 떠나는 여행이 아니라 존재 전체가 정화되는 여행.
그런 여행을 떠나고 싶다.

 

*걸은 날. 2008. 5. 1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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