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시 후 이 쳘차는 종착역, 서울역에 도착하겠습니다. 서울역에서 내리시는 손님들 안녕히 가십시오."
서울역에 도착할 때면 늘 나오는 방송. 내 기억 속의 서울역은 그렇게 언제나 모든 길의 끝이었다. 더는 갈 수 없는 곳.
하지만 이 날의 여행은 서울역에서 시작되었다. 서울역을 출발한 기차는 북쪽을 향해 달렸다. 목적지는 임진각역 다음에 있는 도라산역. 친구가 '통일열차음악회'에 함께 가자고 초대해서 이루어진 여행이었다. 이 행사 때문에 특별 관광열차가 편성되어 한 무리의 관광객들을 태운 기차가 도라산역을 향했다.
사람들과 웃고 떠드는 사이, 기차는 민통선 안에 들어섰고 간간이 보이는 철망이 이곳이 군사지역임을 말해주었다. 나즈막한 야산, 남한강 물줄기, 여느 곳과 다를 바 없는 산하였지만 내게는 보이는 모든 풍경이 새로웠다.
도라산역에서 내려 제일 먼저 마주친 것은 역사 앞을 지키고 있는 헌병들이었다. 곧이어 "남쪽의 마지막 역이 아니라 북쪽으로 가는 첫번째 역입니다."라는 안내문이 우리를 반겼다. 그랬다. 도라산역은 개성과 평양으로 이어지는 경의선이 출발하는 곳이었다. 2000년 남북정상회담에서 끊어진 경의선을 잇기로 남북이 합의함에 따라 지어진 곳이다.
역사 안에는 '평양 방면 타는 곳'이라는 출입구가 보였다. 서울역이나 부산역에서 늘상 보는 부산, 서울 방면은 익숙했는데 '평양'이라는 지명이 적힌 팻말이 낯설고 신기해서 한참 바라보았다. 마치 영화의 한 장면을 보는 것 같았다.
대학 신입생 때 배운 노래 중에서 '서울에서 평양까지'란 노래가 있다. '서울에서 평양까지 택시요금 오만원'이라는 가사에서 시작된다. "광주보다 더 가까운 평양은 왜 못 가, 평양만 왜 못 가...." 멀게 여겼던 평양이 서울에서 가깝다는 것을 실감하게 한 가사여서 처음 들었을 때 매우 신선한 느낌을 받았던 기억이 있다.
이후 십여년의 시간이 지나 내 눈 바로 앞에는 '평양 방면 타는 곳'이 있었다. 아직은 평양으로 가는 기차를 탈 수 없었다. 우리는 그저 역사 안에서 작은 음악회를 즐기며 통일을 기원할 뿐이었다. 한 시간여 진행된 음악회는 금방 끝이 나고 우리는 김대중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악수하는 사진 앞에서 기념촬영을 한 뒤 남쪽으로 돌아가는 기차에 올랐다.
기차가 임진각역에 정차했을 때는 여름 소나기가 흩뿌리기 시작했다. 나는 우산을 받치고 임진각 '자유의 다리'를 향해 걸어갔다. 이곳도 처음 와보는 곳이었다. 휴전선으로 인해 끊어진 다리 앞에는 사람들의 소망을 적은 색색의 리본들이 펄럭이고 있었다. 리본에는 가족과 고향산천에 대한 진한 그리움이 빼곡히 적혀 있었다.
그 아픈 염원의 조각들을 하나하나 가슴에 담은 채 전망대에 올라갔다. 동서남북 탁 트인 하늘은 하나였지만 길은 아직 끊어져 있었다. 분단의 비극이 생생하게 느껴지는 현장이었다.
다시 인파로 붐비는 서울역으로 돌아오자 마치 잠깐 꿈을 꾸었다가 현실로 돌아온 기분이었다. 기차를 타고 평양으로 가는 것은 여전히 꿈이지만 북쪽으로 가는 첫 번째 역 도라산역은 그 굳건한 꿈을 품은 채 그 날을 기다리고 있었다.
끊어진 모든 길들이 연결되고 경의선 열차가 다시 달릴 날이 오기를. 베낭을 매고 도라산역에서 평양과 신의주를 지나 러시아까지, 뜨거운 눈물을 흘리며 달리고 싶다.
200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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