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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여행 기록/지리산에 머물다

구룡치 세 글자가 이렇게 반가울 줄이야 - 주천/운봉 구간

by 릴라~ 2011. 8. 18.



지리산 둘레길 1~2구간을 걸었다. 주천에서 인월까지 약 26km다. 몇 년 전 길이 처음 나기 시작했을 때부터 알고 있었는데 가도 좋을지 확신이 서지 않았다. 초창기엔 게시판에 잡음이 많았다. 외지인들이 들어오는 것을 싫어하는 마을 주민들도 있었고(땀흘려 농사 짓는 옆으로 한가하게 구경하며 걷는 사람들), 도시의 소음이 싫어서 귀농했는데 자기 집 앞으로 수백 명이 지나간다며 항의하는 이도 있었다. 지리산은 관광지 제주와는 성격이 좀 다르다. 길을 내는 것이 그나마 남아 있는 마지막 오지 마을마저 훼손할까 염려스러웠다.

 

그러던 중 지리산에 케이블카를 놓는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그것도 자그마치 세 군데서나. 각 지자체가 돈에 눈이 멀어 벌인 짓이었다. 찬반 논쟁이 뜨거울 무렵, 한 다큐 프로를 보았다. 주민들의 인터뷰가 나왔다. 살림살이가 어려운 주민들, 특히 나이 지긋한 어르신들은 지리산댐이건 케이블카건 돈이 들어온다면 무조건 좋다고 했다. 몇 십년 경제 개발의 와중에 줄곧 소외감을 느끼며 살아왔던 것이다. 반대하는 주민들도 있었지만 오히려 산을 아끼는 외지인들이 케이블카에 더 강력하게 반대하고 있었다.

 

둘레길을 만들던 사람들의 인터뷰도 나왔는데 케이블카가 한 번 타고 당일 집으로 돌아가는 일회성 관광용이기 때문에 지속적인 소득원이 될 수 없다고 했다. 길을 만들어 며칠씩 머물다 가는 것이 오히려 장기적인 소득원이 될 수 있다는 거였다. 그 프로그램을 보고 어떤 방식이든지 이 지역이 소득을 올릴 수 있는 길이 필요하다 싶었다. 지리산 둘레길은 케이블카와는 비교가 되지 않는 대안이었다. 내가 그곳에 가도 괜찮을 것 같았다.

 

이후로 (사)숲길과 마을 주민들 사이의 불협화음도 잘 조율된 것 같았다. 둘레길은 점차 확장되고 유명해졌고 올해 말이면 지리산 700리 전 구간이 개통된다고 한다. 전 구간을 설명하는 가이드북도 나왔다. 책이 있어 여행 준비가 한결 수월했다.






이번 여행은 학생 다섯 명과 함께 떠났다. 교육청에서 받은 동아리 지원금으로 떠난 여행이었다. 평소 수업 이외의 과외 활동 특히 교육청 사업 같은 건 여력도 없고 관심도 없어서 절대 안 하는 편인데, 전문계고에 와서 무기력한 학생들을 보고 마음이 움직여 신청한 거였다. 문제는 그게 3월 한 달간의 마음이었다는 거다. 방학이 가까워오면서 내내 후회했다. '뭐하러 이딴 걸 신청해서 이 고생이람, 아 귀찮아~' 하면서. 내 사명감의 유효 기간이 딱 한 달임을 모르고 저지른 일이었다.

대구에서 남원까지 2시간, 남원에서 둘레길이 시작되는 주천까진 버스로 금방이었다. 여름날이 덥긴 더웠다. 개미정지에서 구룡치까지 옛 사람들이 오일장을 보러다녔던 솔숲길은 그리 오르막이 심하지 않았는데도 애들에겐 많이 힘들었나보다. 고갯길인 구룡치가 끝났음을 알리는(반대 방향에서 오면 시작점임을 알리는) 푯말이 나오자 세환이가 큰 숨을 내쉬며 말한다.

"구룡치 세 글자가 이렇게 반가울 줄이야."

세환이는 산멀미까지 있어서 걱정을 했는데, 다행히 큰 탈은 없었다. 고등학생이면 날아갈 줄 알았는데 운동을 안 해서 그런지 의외로 힘들어한다. 가장 걸음이 처진 것은 '통통과'에 속하는 강진이였다. 힘든 기색이 역력했다. 구룡치가 끝나고 작은 내리막길이 나타나자 두 팔을 뻗으며 큰 소리로 외친다.

"내리막길, 사랑합니다!!!"

같은 통통과지만 희성이는 잘 걸었다. 마른 몸매의 병관이와 수민이도 괜찮았다.

여기까지 오는 동안 많은 우여곡절이 있었다. 원래 7명이 시작했다. 그러나 인찬이는 방학 중에 한동안 연락이 안 되어 자동 탈락되었고, 가장 열심히 준비한 준표는 하필 그때 발에 난 사마귀를 제거하는 수술을 하는 바람에 결국 못 오게 되었다. 다른 녀석들도 썩 양호한 것은 아니었다. 우리 반에서 가장 착한 애들로만 뽑았는데도 두 녀석이 모임을 빼먹어서 한 번만 더 빠지면 여행 못 간다는 엄포를 놓은 후에야 100% 출석률을 보였다.

각자 조사할 부분을 맡겼는데 그것도 산 넘어 산이었다. 모르면 물어보거나 해서 해결을 해야 하는데 이 녀석들은 어떻게 찾는지 모르겠다며 빈손으로 다음 모임에 나타났다. 인터넷 검색도 할 줄 모르냐며 속으로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화를 참고 방법을 하나하나 일러주었다. 나한테 대책 없다는 잔소리를 실컷 얻어들은 후에야 조금씩 조사가 진척되었다. 신기하게도 여행 직전 무렵에는 어찌어찌하여 우리 모두 지리산길 각 구간별 특징과 교통편, 자기가 생각하는 도보여행의 의미 등을 알게 되는 순간이 왔다.




학생들은 걸어서 하는 여행을 해보고 싶어했다. 희성이는 평소엔 차를 타며 잠만 잤다고 천천히 걸으면서 새로운 풍경을 보고 싶어했다. '힘들텐데?' 라는 나의 질문에 그래도 무언가 뿌듯함이 있을 것 같다고 했다. 병관이는 자연을 보고 싶어했다. 강진이는 친구들과 걸으면서 오래 시간을 보내는 것이 신기할 거라고 했다.

수민이는 생각은 있으나 그것을 표현하는 데 어려움이 있는 아이였다. 다른 애들이 반쪽 적을 때 간신히 한두 줄을 적곤 했다. 몇 번을 거듭 물어서 이 길에 대한 그 아이의 생각을 들을 수 있었다. 잘 모르겠지만 자신이 뭔가 변할 것 같다고 했다. 성실파인 세환이와 준표는 서로 잘하려고 경쟁했는데(우리 학교답지 않은) 다른 아이들은 별일 아는 일에 쟤들이 왜 경쟁하나 신기해했다.

교육청이 돈을 그냥 줄 리는 없다. 끝나고 나서 작은 책을 제출해야 해서 내가 가장 열심히 한 것은 아이들 뒤를 따라 걸으며 사진을 찍는 일이었다. 혼자 걸을 때처럼 천천히 풍경을 음미하진 못했다. 다른 생각을 할 겨를도 잘 없었다. 그래도 좋은 것이 내가 인솔 교사가 아니라 함께 길을 걷는 동행이라는 사실이었다.

특별한 프로그램을 만들 필요도 없고, 공부할 내용을 준비할 것도 없고, 그저 함께 걸으면 되는 것이었다. 길이 우리의 스승이었고 길이 우리에게 그가 전할 말을 들려줄 것이기 때문이었다. 자연과 사람 속으로, 우리 마음과 감각이 열려 있는 만큼 들어가면 되는 길. 길은 우리에게 그 어떤 것도 강제하지 않았다. 내가 길을 사랑하는 이유이리라.

아이들은 방향을 알려주는 푯말에 점점 민감해졌다. 주천~운봉 구간이 시작되는 첫 표지판 앞에선 별 반응을 보이지 않았는데 산을 다 내려와 다음 여정을 알려주는 표지판을 보자 서로 기념 사진을 찍겠다고 난리다. 이후로 한 마을 한 마을 지날 때마다 기념 촬영을 했다. 다음 마을까지 몇 킬로가 남았는지 계산해 가면서.

구룡치를 내려와 회덕마을, 노치마을을 지나는 구간은 계속 뙤약볕이라 힘들었다. 아이들은 냇가가 나오면 달려가 발을 씼고 놀았다. 그러더니 희성이가 아예 맨발로 길을 걷기 시작했다. 다른 녀석들도 따라했다. 물론 오래 가진 못했다. 발이 아팠을 것이므로. 아이들은 그늘이 나오면 다들 주저앉아 쉬고 바람이 불어오면 두 팔을 벌려 맞고 메뚜기, 잠자리를 잡고 다시 날려보내며 길을 걸었다.

 







햇살이 살짝 옅어질 무렵 심심한 지 한 녀석이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여행을 떠나요' 그러자 다같이 목이 터져라고 합창을 한다. 나도 같이 불렀다. 노랫말이 참 좋았다.

푸른 언덕에 베낭을 메고
황금빛 태양 축제를 여는
광야를 향해서 계곡을 향해서
먼 동이 트는 이른 아침에
도시의 소음 수많은 사람
빌딩 숲속을 벗어나봐요.

메아리 소리가 들려오는
계곡속의 흐르는 물찾아
그곳으로 여행을 떠나요

굽이 또 굽이 깊은 산중에
시원한 바람 나를 반기네
하늘을 보며 노래 부르세

여름은 도보여행하기 좋은 계절은 아니다. 무더위에 지치기 쉬운 데다가 폭우까지 겹치면 걸음이 힘들어진다. 내 경우도 여름엔 잘 걷지 않는 편인데 지리산길의 여름은 그대로 좋았다. 햇살은 따가웠지만 길 오른편에 지리산 서북능선이 병풍처럼 시원하게 펼쳐져 든든했다. 그 산의 푸름 때문일까 마음은 결코 덥지 않았다. 지리산 자락이 내 마음 한 곳에 시원한 그늘을 드리워 주었다.

여름길은 힘들지만 여름만의 멋이 또 있었다. 여름은 시각보다는 촉감으로 다가온다. 피부에 닿는 모든 것이 더 강렬한 색조를 띠었다. 그늘 한 자락이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었고 땀을 씻어주는 계곡물이 그렇게 시원할 수가 없었다. 매미 소리가 내 귀를 씻어 주었고 불어오는 한 줄기 바람에 감사했다.

중간에 둘레길을 잠깐 벗어나 구룡폭포에 다녀오는 바람에 길이 예상보다 길어졌다. 이 길이 언제 끝나나 슬슬 지쳐갈 무렵 덕산 저수지가 나타났다. 시원한 풍광이 잠시 더위를 식혀주었다. 가장마을을 지나서 저녁 6시, 드디어 하루를 묵어갈 행정마을에 도착했다. 민박집을 찾아 골목길을 걷는 동안 땅 위로 서서히 어둠이 깔리고 있었다.

 

* 걸은 날 : 2011. 8. 14.



  (초상권 때문에 작은 사진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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