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 2008년 북경 올림픽 전과 후에 북경을 방문한 사람은 이 도시에 대해 조금은 다른 인상을 지닐 거예요. 중국은 북경 올림픽을 계기로 도시를 새롭게 정비했어요. 컨셉은 ‘회색’이었습니다. 중심가 대로에 면한 건물은 회색 벽돌을 붙여 통일성 있는 모습을 보여주었어요. 거리도 깔끔하고 통일성 있는 거리 모습도 의미 있었지만 오래된 도시의 느낌보다는 한 번에 정리한 듯한 획일적인 느낌도 있습니다. 수천 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도시 치고는 고풍스러운 멋이 덜했어요.
자금성을 둘러싸는 북경성이 사라져서일 수도 있을 거예요. 한양 도성은 일제가 허물었지만 북경성은 모택동의 공산당 혁명 성공 후 파괴되기 시작해서 문화대혁명 기간에 완전히 사라지죠. 문화유산을 단지 봉건 잔재로만 본 무지의 소치였어요. 궁궐 등의 문화재는 단지 그것이 왕의 거처이기 때문이 아니라 당대 최고의 기술자들이 발휘할 수 있는 예술의 수준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가치가 있는데 말이지요. 지금 북경성이 허물어진 자리에 대로가 나 있고 아래로는 지하철이 다니고 있다고 해요.
그런데 베이징 올림픽 때 북경의 오랜 역사의 흔적이 또 사라집니다. 중국 정부는 올림픽을 위해 도시 정비를 하면서 원나라 때부터 건설된 ‘후퉁’이라 불리는 옛골목을 많이 없애버려요. 비판에 직면하면서 일부는 살아남게 되었지만 후퉁이야말로 북경의 가장 훌륭한 문화유산이라는 사실을 왜 몰라보았을까요. 고층빌딩은 어디나 있지만 오백 년이 넘은 골목길이 수천 개가 넘는 도시는 잘 없는데 말이죠. 그 오래된 골목에 여전히 북경 시민들이 살고 있다는 것도 큰 매력이죠.
후퉁과 함께 사라진 것이 ‘사합원(쓰허위안)’이에요. 후퉁에는 사합원이라는 중국 전통 가옥이 다닥다닥 붙어 있어요. 사합원은 ‘ㅁ’ 자 형태의 집이에요. 좁은 출입구를 통과해 안으로 들어가면 네모난 마당을 가운데 두고 사각형 모양의 건물과 담장이 둘러싸고 있어요. 자그마치 이천 년의 역사를 지니는 건축 양식인데요. 다분히 폐쇄적인 구조이며 집집마다 문 앞에는 작은 사자상이 지키고 있는데 아주 귀엽습니다. 사합원의 내부는 저는 루쉰 기념관에서 보았습니다. 기념관 바로 옆에 루쉰 선생이 살던 사합원 집이 있어요.
관광객들이 많이 찾는 후퉁 거리는 난뤄구샹과 스차하이 일대인데요. 저는 유리창 인근의 후퉁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작은 골목을 걷는 것이 정말 정겨웠어요. 골목을 따라 자그마한 채소 가게, 이발소, 상점이 간간이 등장하고 강아지도 많아요. 말 그대로 북경 서민들의 생활을 엿볼 수 있는 거리죠. 불편한 점은 집 밖에 있는 공용 화장실을 사용해야 하는 점이고 그래서 후퉁을 떠나는 사람도 있죠. 이런 불편함 때문에 후퉁과 사합원이 재개발로 많이 사라졌지만 관광지 인근의 후퉁은 리모델링을 해서 게스트하우스나 레스토랑으로 변신하므로 아주 비싸게 거래된다고 해요.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이 있지요. 북경 여행을 끝내고 나서야 알게 된 사실이 있어요. 바로 이 후퉁에 이회영 선생과 이육사 시인이 살았다는 것을요. 그분들이 살았던 후퉁에는 아무런 표지판도 없지만 번지수를 찾아서 한국 답사객들이 다녀갔더군요. 윤태옥의 ‘중국에서 만나는 한국독립운동사’에 의하면 이회영 선생이 살았던 후퉁은 유명 관광지인 난뤄구샹 인근의 마오얼 후퉁과 허우구러우위안 후퉁이었고, 이육사 시인이 순국한 장소는 둥창후퉁 28호였어요. 신채호 선생이 살던 차오더우 후퉁도 있었어요.
이 사실을 알고 나니 북경이라는 도시가 한층 가깝게 느껴졌어요. 그분들이 이 후퉁 골목의 한 칸을 차지하고 살 때, 북경 거리를 지나다닐 때 무엇을 생각하고 고민했을까요. 당시 서울(경성)에서 북경까지 기차를 타고 갔는데요. 그 시절에 비해 우리는 얼마나 진보했을까요. 여전히 좁은 시야에 갇혀 있는 건 아닐까요.
여행이란 그래요. 그 장소 고유의 매력도 있지만 그곳과 우리 역사가 연결된 지점을 발견할 때면 그 지역에 한층 정서적 가까움을 느끼게 되죠. 북경에 다시 와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공부도 더 많이 필요하고요. 때로 우리는 우리 자신 안에서가 아니라 타인의 얼굴 속에서 우리의 참모습을 더 잘 볼 때가 있어요. 여행을 하는 이유는 그것이라고 생각합니다.
*2017/7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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