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완다에 와서 알았다. 내가 아프리카에 편견을 지니고 있었다는 것을. 언론의 문제는 몇 가지 부분적인 이미지를 그 사회의 전부인 양 착각하게 만드는 것이다. 아프리카에 대해 내가 갖고 있던 이미지가 그렇게 편향된 것이었다.
아프리카에 오기 전에 나는 여기가 사람 살기 힘든 동네라고 생각했다. 내 머릿속 아프리카는 기아와 에이즈, 풍토병이 창궐하는 곳이었다. 르완다 키갈리에서 지낸 시간이 한 달을 넘기며 이 모든 게 아주 부분적인 사실이라는 것을 알았다.
물론 르완다는 아프리카에서 가장 치안이 안전한 나라여서 이 나라의 경우를 아프리카 전체에 적용할 수는 없다. 콩고민주공화국처럼 상태가 안 좋은 나라도 많다고 한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프리카에 관한 언론의 이미지는 매우 일방적이고 왜곡되었다고 생각한다. 아시아 각 나라들이 한국, 중국, 일본이 모두 다르고 동남아 국가들도 저마다 다른 것처럼 아프리카도 하나의 아프리카로 획일화해서 말할 수 없다. 아프리카 동부와 서부의 거리는 한국과 동남아의 거리보다 멀다.
내가 만난 아프리카는 한 마디로 '아름다운' 땅이었다. 이곳에 빈곤, 질병, 위생 문제는 상존하지만 구한말 조선 또한 이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조선 사람들도 흙으로 만든 초가에 살았고 세 끼를 다 챙겨먹지 못했으며 갖은 질병에 노출되어 있었고 가구나 사치품을 향유하지 못했다. 아프리카의 빈곤과 질병 문제는 모든 저개발국의 공통된 문제였다. 문명의 혜택을 충분히 누리지 못하고 있는 문제이지 이 땅, 아프리카만의 고유한 문제가 아닌 것이다.
기아는 아프리카 일부의 문제로 보였다. 르완다 사람들은 하루에 한 끼만 먹는다. 식량이 풍족하지 않은 것이다. 그래서 식탁에 차려진 식사는 한 끼밖에 하지 못하고 나머지는 옥수수 등으로 때운다고 들었다. 하지만 언론에 나오는 것처럼 사람이 굶어 죽는 일은 없었다. 시골 아이들은 늘상 배가 고픈 편이라고 한다. 하지만 기아는 없었다.
르완다 사람들은 질서를 잘 지키고 쓰레기를 함부로 버리지 않는다. 도시 뿐 아니라 어떤 시골 마을을 가도 비록 가난하지만 거리는 다 깨끗하다. 이는 교육의 영향이 아닐까 싶은데, 아프리카도 충분히 성숙한 시민의식을 지닐 수 있음을 보여준다. 아프리카 평균 수명은 아직 40세에 불과하지만 르완다는 65세다. 예방접종 보급 덕분이라 한다.
무엇보다도 아프리카는 알래스카와 몇몇 지역을 제외하면 지구에서 야생동물의 무리를 만날 수 있는 유일한 땅이다. 아프리카에서도 사람이 거주하는 곳에는 동물이 없고 국립공원 등지에서만 야생동물을 볼 수 있지만, 그래도 다른 대륙에서 멸종한 야생동물의 유일한 서식지로 남아 있는 곳이다. 사파리를 보고 나서 이곳이 인류에게 얼마나 소중한 땅인가 하는 것도 느꼈다.
여기도 사람 사는 곳이라 기본적으로 있을 건 다 있지만 그래도 산업화된 국가와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 생필품은 있지만 우리가 당연히 누리던 많은 것이 여기 없다. 맥도날드도 없고 고급 레스토랑도 잘 없으며 음식을 비롯한 생활의 질은 많은 부분 낮은 수준에 있다. 상하수도 시설이 부족해서 수도권 일부 지역을 제외하고는 물을 길어 먹어야 한다. 이집트를 제외하고는 큰 왕국이나 제국이 잘 없었기 때문에 특별한 유적이나 문화도 없다. 자연과 동물 말고는 별다른 볼거리가 없는 셈이다. 동남아와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
하지만 문명이 비어 있는 풍경이야말로 어쩌면 아프리카 여행의 가장 큰 매력일지도 모른다. 동아프리카 지구대가 인류의 발상지라는 사실을 굳이 상기하지 않더라도, 아프리카는 산업화가 되기 전, 우리 모두의 ‘과거’를 보여주는 땅이다. 아프리카 사람들은 이제 막 문명의 이기들을 누리기 시작한 단계이므로 불과 백 년 전 우리 조상들이 어떻게 살았는가를 짐작할 수 있다.
그리고 어디를 가나 맑고 따스한 사람들이 있다. 여기서 일하는 사람들 이야기를 들어보면 일할 때는 어려움이 많다고 한다. 르완다는 인접국에 비하면 상태가 좋은 편이지만 그래도 일할 때 속 터지는 부분이 있으며 신용을 지키며 비즈니스를 하는 마인드도 많이 부족하다고 한다. 16세기 이래 상업이 발달하며 세계통화가 사용되고 신용사회가 정착된 서구와는 비교가 되지 않을 것이고, 아프리카 각국의 빈곤과 교육 수준의 영향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내가 르완다에서 만난 많은 사람들은 참 따뜻하고 친절했다. 다른 볼거리가 없다보니 여기선 특히 사람에 주목하게 되는 것 같다. 수도 키갈리에서도, 시골 마을에서도 마주치는 사람마다 웃으며 인사를 하고, 한 걸음 더 나아가 따뜻한 악수를 건네는 여인들이 있다. 아이들은 활기차고 명랑하다. 시골에서는 ‘머니’를 말하는 꼬마들이 많지만, 실제로 돈을 달라는 것보단 습관으로 보였다. 자그마한 소리로 ‘머니’를 그저 한번 말해볼 뿐이었다.
인류의 역사가 전쟁과 피비린내나는 살육으로 점철되어 있지만, 사람의 본래 모습은 이처럼 ‘선한’ 얼굴이 아닐까 아프리카는 그런 생각을 하게 했다. 가진 것이 별로 없고 불편한 환경이지만 그 속에서도 따스한 미소를 짓는 인간의 얼굴을 나는 잠시 거쳐 간 모든 곳에서 만났다. 거리를 산책하다보면 꼭 누군가와는 악수를 하게 된다. 커다란 무늬가 박힌 원색의 화려한 색감의 아프리카 패션과 함께 악수를 하자며 손을 내미는 사람들의 정감어린 몸짓이 기억되는 곳이 아프리카다.
여행이란 내가 이 세계에 대해 갖고 있던 부분적인 이미지를 수정하는 과정이 아닐까 싶다. 일상에선 대상에 대한 우리의 관심이 생존의 필요에 제한되는 경향이 있다. 반면 여행에선 대상을 이용의 측면이 아니라 순수하게 바라보므로 시야가 더 확대되고 그래서 세계에 대한 더 진실한 이미지를 얻을 수 있다. 이 세계에 대한 나만의 이미지를 새롭게 구성하는 것, 그것이 여행의 큰 즐거움의 하나라고 생각한다.
*201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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