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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이야기/일상의 기록

한국문학을 테마로 여행하는 일본 사람들과의 만남

by 릴라~ 2019. 10. 21.


어제 특별한 여행을 하는 일본 분들을 만났다. 한국소설을 읽고 그 배경이 되는 장소를 구석구석 답사하는 분들. 벌써 네 번째 여행이라 한다. 첫 번째 여행은 박경리 선생의 '토지'를 읽고 통영 여행, 두 번째는 한강의 '소년이 온다'를 읽고 광주 5.18유적지 여행, 세 번째는 4.3사건을 다룬 현기영의 '순이삼촌'과 재일조선인 작가 김석범의 '화산도' 등을 읽고 제주 여행, 그리고 이번이 김원일 작가의 '마당 깊은 집'을 읽고 3박4일 대구 여행.

‘토지'도 읽기가 만만찮거니와 '화산도'도 10권이라 나도 마음만 먹고 아직 못 봤는데 대단한 분들이었다. 일본 각지에서 모인 분들로 여행을 주관하는 곳은 도쿄의 유명한 책방거리, 진보초 거리에 자리잡은 쿠온출판사. 2007년부터 일본에 한국소설을 꾸준히 소개해온, 한국인이 대표로 있는 출판사다. 최근 '82년생 김지영'은 일본에서도 큰 인기를 끌었다 한다.

이 분들의 어제 저녁 일정이 지역민과의 만남이었다. 그래서 시내에서 쿠온출판사의 김승복 대표님 및 스물일곱 분의 다양한 연령대의 일본 분들과 저녁식사를 같이 하게 되었다. 대구지역 독서회 회원분들이 참여했는데, 나는 지인의 소개로 우연히 합류했다. 일본말을 전혀 못해서 어쩌나 했는데, 기우였다. 재일교포도 몇 분 계시고 많은 분들이 한국말로 소통이 가능했기 때문이다.

내 옆자리에 앉은 분은 재일조선인 2.5세로 일본에서 하나뿐인 한국어 학습책 출판사의 대표셨다. 한국어 관련 출판사는 원래 몇 개가 더 있었는데 지금은 하나만 남았다고 한다. 이름도 '하나출판사'다. 하나출판사의 배 대표님은 원래 조선학교에서 영어를 가르치시다가 출판사로 전업했다고 한다. 조선학교에서 민족교육을 어떤 식으로 하는지 궁금해서 여쭤보니 한국어 시간이 많고 일본어는 외국어로 다룬다고 했다. 한국말을 못했던 학생들도 그 학교를 일이년 다니다보면 말을 술술하게 된다고.

그러면서 요즘 일본 상황이 안 좋아 고민이 많단다. 자신은 재일조선인으로 약간의 차별이 상존하는 조건 속에서 그 환경에 적응하며 살아왔는데 지금은 그 정도를 넘어섰단다. 내가 그렇게 안 좋으냐니까 서점에 혐한서적이 버젓이 깔릴 만큼 혐한 분위기가 실제로 심하다고. 아들이 취학할 나이가 되어 일본학교에 보낼까 조선학교에 보낼까가 고민이었는데, 조선학교에서 한국말을 배워야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요새 많이 든다고 하신다. 상황이 지금보다 더 나빠지면 한국에 올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분위기가 안 좋다고. 아베 일당이 내부에 자꾸 적을 만든다고, 아베가 아니라 '아베 일당'이라고 강조한다. 아베 일당은 정말로 2차 세계대전 당시의 일본으로 돌아가고자 한다고. 솔직히 자기는 좀 비관적이라고. 일본 사람 한 명 한 명은 괜찮지만, 이 괜찮은 사람들이 결국 아베를 막지 못해 이런 결과를 초래했다고.

한국이 일본을 많이 따라잡았다 해도 아직은 동일선상에서 비교하기엔 국력 차이가 많이 나는데, 왜 일본이 그런 식으로 나오는지 모르겠다고 내가 질문하자 맞은편에 앉은 나카노 노리코씨가 일본 경제가 많이 안 좋아서라고 하신다. 내가 2년 전 오사카에 갔을 땐 그런 걸 전혀 못 느꼈다고 말하자 두 분 다 웃으신다. 오사카는 아무리 경제가 안 좋아도 술집이 사람들로 가득 차는 동네라고. 도쿄, 오사카 등의 대도시는 끄덕 없지만 올림픽에 예산을 우선 배분해서 지방이 많이 어렵다고 한다. 그리고 예전에 중국이 일본을 따라잡는다고 언론에서 한동안 난리인 적이 있었는데, 이제 중국이 일본을 훌쩍 앞서 버린 상황에서 한국의 추격만은 절대 용납 못한다는 정서가 있다고 한다. 일본은 민주주의는 아직 멀었다고 노리코씨가 덧붙인다.

나카노 노리코씨는 조선학교를 후원하는 분이었다. 요즘 조선학교가 많이 힘들다고, 자기도 아베 때문에 정말 못 살겠다고 하신다. 이 분은 90년대 한류가 유행했을 때부터 한국문화에 관심을 가진 분이었다. 올해 일흔인 할머니인데도 '82년생 김지영'에 너무 공감했다고 하신다. 이 분은 27년째 독서모임을 하고 있는데 그 모임 멤버들이 이번 여행 팀에 몇 분 계셨다. 이 분들이 요새 읽고 있는 책은 '민중을 기록하라'와 '독일 아리랑'이란다. 실천문학사에서 나온 '민중을 기록하라'는 우리 작가들이 한국 현대사의 굵직굵직한 사건들을 르포 형식으로 적은 책이다. 600쪽이 넘는 이 책을 지금 원서로 읽고 계시단다. '독일 아리랑'은 파독 광부 및 간호사의 삶을 기록한 책이다. 이 분들의 한국사회에 대한 관심의 폭과 깊이가 예사롭지 않아 많이 놀랐다.

하나출판사가 '부산말 교본'을 편찬한 점도 신기했다. 아니 외국어를 표준말로 익히는 것도 어려운데, 어떻게 그런 책을 내게 되었냐니까 수요가 있기 때문이란다. 한국에서 일본과 가장 많이 교류하는 지역이 부산이어서 실제로 부산말로 한국어를 배우고 싶은 사람이 있어서 책을 펴내게 되었다고. 이런 다방면의 관심사도 일본의 저력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리고 내 오른편에 앉은 분은 우리말을 가장 유창하게 하는 분이었는데 알고보니 '토지'를 번역하는 분이다(이름 까먹음). '토지'는 일본에서 총 20권으로 출판되는데 올해 11권까지 나온다고 한다. '토지'는 여러 명이 함께 번역 작업을 하고 있다고 했다. 지난 번 통영 여행 때 박경리 선생의 묘소에 토지 번역본을 올려드렸다고. 토지에 여러 지방 사투리가 나오는데 어떻게 번역하냐고 하니 지방 사투리까지는 반영 못하고, 화자의 성별, 나이, 신분 등을 고려해서 일본말에 맞게 번역한다고 들었다. 이 분은 한강 작가의 '소년이 온다'를 정말 감명 깊게 읽었단다. 일본 소설이 개인의 내면을 섬세하게 그리는 반면 한국 소설은 사회역사적 사건을 많이 조명해서 그 점이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왔다고. 내가 한강의 다른 작품은 어려워서 이해 안 되더라 하자 자기도 그렇다고 고개를 끄덕인다.

쿠온출판사의 김승복 대표님은 이 분들은 서울은 다들 많이 가 본 분들이라 일반적인 관광에는 전혀 관심이 없다고 했다. 다음 여행은 김훈의 '흑산'을 읽고 흑산도로 떠난다고. 자신도 90년대에 한국을 떠나온 뒤로 한국을 제대로 둘러볼 기회가 없어서 함께 여행하고 싶은 마음에 이런 기획을 하게 되었다고. 한류가 드라마와 음악을 거쳐 이제 소설에 이르른 것 같단다. 한국의 대형출판사들이 오랫동안 일본문학을 다양하게 소개해온 것에 비하면 우리는 이제 시작인 것 같다.

저녁 시간이 물 흐르듯 흘러갔다. 한국문학과 역사에 이토록 진지한 관심을 가진 분들이 있구나, 시간이 아쉬운 만남이었다. 짧은 만남이지만 국적을 뛰어넘어 사람의 마음을 매혹하는 문학의 힘을 느꼈다. 아베가 쉽게 마음을 고쳐먹을 일 없고, 따라서 양국 관계도 쉽게 풀릴 리 없지만, 우리정부 또한 정치적으로 강하게 대처해야 할 것을 해야 하겠지만, 그 동안에도 꾸준히 책을 읽는 사람들이 있다. 문학을 통한 공감과 연대가 당장은 힘이 없어 보이지만 이 미약한 빛이 언젠가 양국 사이의 화해의 밑거름이 될 수도 있으리란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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