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이었다. 카오산 로드는 지난 밤의 열기가 믿어지지 않을 만큼 고요에 싸여 있었다. 아침 끼니를 해결해주는 노점상 몇 군데만이 주섬주섬 자리를 펴고 있었고, 여행객 몇 명이 아침을 들고 있었다.
람부뜨리 거리를 빠져나가 공항 버스가 서는 주 도로에 이르렀다. 하늘이 희미하게 밝아오는데 어지러이 오가는 차들 사이를 걷고 있는 한 사람의 뒷모습이 내 시야에 박혔다. 오렌지빛 장삼을 걸친 맨발의 탁발승이었다. 주위를 돌아보니 여기저기서 탁발승들이 지나가고 있었다. 낮이나 저녁에는 볼 수 없던 광경이었다.
태국은 부처님을 믿기보다는 왕을 더욱 숭배한다고 들었는데, 매일마다 탁발을 하며 아침을 여는 스님들의 모습은 이 나라가 불교국가임을 실감케 해주었다. 잠깐 스쳐간 풍경이지만 이 나라에 대한 잊을 수 없는 정겨운 이미지를 내게 남겨주고 갔다.
여지껏 탁발의 전통이 남아 있다는 것, 그리고 거리에서 쉽게 수행자를 만날 수 있다는 것, 참으로 멋지지 않은가. 요즘 서점가에는 긍정의 힘을 설파하는 온갖 종류의 처세 서적들이 인기를 끌고 있는데, 긍정적인 생각을 갖는다고 세상이 변하지는 않는다. 삶을 바꾸는 것은 긍정적인 실천이며 그것은 언제나 뼈를 깎는 노력을 수반한다. '수행'이라는 말은 그래서 엄청난 무게를 지니고 있다. 수행 자체가 어렵다기보다는 습관의 중력을 물리치는 일이 어렵다. 삶이 바뀌는 것은 우리의 일상이 수행의 장으로 변모되었을 때다.
가톨릭의 이냐시오 영신수련과 불교의 위빠사나 수행 등을 배웠지만 그것은 내게 한 때의 여가생활로 끝났을 뿐 일상 속 수행을 실천하기란 실로 어렵다. 바쁘기도 했지만 수행의 필요성을 목숨을 걸 만큼 절실하게 느끼지는 못했기 때문이리라. 이것이 아니면 곧 죽을 것만 같았던 느낌, 그것은 이십대의 특권일 뿐일까. 그 때는 맹렬하게 돌진하고 맹렬하게 추락했다면, 지금은 낮게 날고 대신에 추락하는 일도 없는 것 같다.
새해엔 더 힘차게 날았으면 한다. 산에도 많이 가고 여행도 사랑도 더 많이 하고, 아이들에게도 더 많이 웃어주고 싶다. 그리하여 궁극에는 내 가슴 깊은 곳, 지하 일천미터에 묻혀 있는 진실에까지 이를 수 있기를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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