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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이야기/역사, 인물

스웨덴 기자 아손, 100년 전 한국을 걷다 | 아손 그렙스트 _ 러일전쟁 시기의 조선을 만나다

by 릴라~ 2021. 5. 18.


개인적 호기심에서 구한말에서 식민지 시대에 이르는 1차 사료를 모두 찾아 읽고 있습니다. 당대 조선을 직접 목격한 사람들의 글이 후대의 해설서보다 그 시대의 생생한 분위기를 전해주기 때문입니다. 특히 당시 조선을 방문한 외국인들의 기록은 조선을 객관적으로 들여다볼 기회를 제공해줍니다.

조선을 네 차례나 여행한 지리학자 엘리자베스 비숍 여사의 책은 조선의 지리와 문화, 사회상에 대한 가장 깊이 있고 종합적인 보고서로서 특히 명성황후 시해 사건에 대한 자세한 목격담과 동학농민운동에 대한 서술이 인상적입니다. 선교사 제임스 게일의 책은 조선의 보통 사람, 상놈의 삶과 내면의식을 다정하게 그려나갔고, 1894년 동학농민운동이 일어난 해에 조선을 여행한 오스트리아 귀족 에른스트 헤세 바르텍의 책에서는 조선이 마치 유럽의 중세처럼 정체되어 있는 모습을 목격할 수 있습니다. 수의학자이자 선교사 스코필드 박사의 책은 3.1운동의 현장을 구체적으로 전해줍니다.

스웨덴 기자 아손의 책은 전작들과 또다른 매력으로 독자를 사로잡습니다. 일단 여행한 시기가 1904년 러일전쟁이 일어난 후입니다. 이때 조선은 완저히 식민지가 된 것은 아니지만, 모든 행정 권력이 일본에게 넘어가는 와중에 있습니다. 경부선 철도가 막 개통될 무렵이라 그 첫 열차를 타고 부산에서 서울로 향하는 저자. 그가 생생하게 묘사하는 조선의 풍경을 따라가노라면 대한제국 말기의 상황, 일본의 힘에 눌려 아무것도 제대로 하지 못했던 힘없는 나라의 상황을 이해할 수 있게 됩니다.

읽으면서 내내 조선 백성에 대한 애처로움이 밀려왔어요. 특히 기억에 남는 것은 일본 군인들이 대한제국 군인들을 무장해제하는 장면입니다. 단 한 명의 군인이 끝까지 반항하고 구경하던 조선사람들이 돌을 던지다가 일본군의 총에 달아나는 일련의 사건들은 당시의 흉흉한 분위기를 보여줍니다. 토지 강제 몰수에 분노한 세 명의 조선인들이 일본이 만든 철로를 부수려다가 총살된 이야기도 매우 처참합니다. 저자의 눈에 비친 조선 백성들은 상당히 유약한 면도 있지만 일본의 지배를 그냥 받아들인 것은 아니었습니다. 일본의 강한 군대의 힘에 눌려 반항의 움직임이 점차 사그라들었다고 보는 것이 정확할 것입니다.

하지만 이 책이 시종일관 비장한 분위기는 아닙니다. 오히려 저자의 왕성한 호기심과 탐구심으로 유머러스하게 읽히는 장면이 많은데요. 원래 저자는 러일전쟁을 취재하러 일본에 와 있었는데, 전쟁중이라 조선으로의 여행이 금지됩니다. 하릴없이 계속 일본에 머물 수 없었던 그는 신분을 속이고 상인으로 위장하여 조선에 들어가는 배표를 구합니다. 그리고 특유의 유머와 사교성으로 조선에 거주하는 외국인들의 마음을 사로잡고 독일 영사 등의 도움으로 그의 호기심을 충족시킬 만한 여러 장소를 탐색합니다. 외국 사절로 둔갑하여 순종비의 장례식에 초대받아 고종을 알현하기도 하고, 윤산갈이라는 조선인 통역의 안내로 보통 외국인들이 가기 어려운, 사형이 집행되는 감옥에도 방문하지요. 호기심이 대단한 사람입니다. 그는 내친 김에 만주에서 벌어지는 러일전쟁 현장을 취재하려 하지만 일본의 허락을 얻지 못해 실패하고 동남아로 발길을 돌리면서 그의 조선 여행은 막을 내립니다.

에른스트 헤세 바르텍이 여행한 1894년보다 식민지화가 한층 더 노골화된 1904년, 풍전등화의 운명 앞애 선 조선과 조선 사람들을 만날 수 있는 귀한 기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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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에서 받은 코레아의 첫인상은 그렇게 좋은 것은 아니었다. 거리는 좁고 불결했으며, 가옥은 낮고 볼품이 없었다. 일본에서처럼 상점이나 눈길을 끄는 오래된 절도 없었다. 사방에서 악취가 풍겼으며, 문밖에는 집에서 버린 쓰레기가 쌓여 있고, 털이 길고 측은한 모습의 개들이 쓰레기 주위에 모여 먹을 만한 것을 찾고 있었다. 여기저기에 말라붙은 하수도가 있는데, 끈적끈적한 바닥에서 온갖 종류의 오물들이 썩어가고 있었다. 그리고 그 사이에서는 머리가 더펄더펄한 애들이 놀고 있었는데 어제 그제 세수한 얼굴은 결코 아니었다.

코레아의 해변 촌락을 가로질러서 인력거꾼은 길이 더 넓고 비교적 깨끗한 일본풍의 시가지로 방향을 돌렸다. 이곳은 모든 것이 왜색 일변도였다. 일본인들은 그들이 이주하는 나라에 적응하려 하지 않고 그들의 풍속을 그대로 옮겨 지키는 것이다. 고국의 고향에서와 똑같이 집을 짓고 먹고 자고 마시고 한다. 더구나 코레아에서의 이런 경향은 더욱 유별나다.

생활력이 강한 일본 종족의 제국주의 근성은 코레아인들의 멸망을 거의 기정사실화하고 있었다. 일본인들은 마음속으로 이러한 목적을 가지고 계획적으로 일을 추진하였다. 그들이 기반을 다지고 있는 것은 코레아인들의 개혁된 장래를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들을 위한 것이었다. p33-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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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목적지를 반복해서 말하자 그들은 두 번째 회의를 시작했는데, 점차 커지던 언성이 최고조로 높아져 나중에는 치고받을 기세였다. 행인들이 발걸음을 멈추고 모여들기 시작해서 삽시간에 20여 명이 나를 둘러싸게 되었다. 이들 모두가 동시에 목청껏 소리를 높여 1분에 100단어 정도의 속도로 떠들어댔다. 이 시끌벅적한 난장판에 일본 경찰관이 불쑥 나타나 우리 모두를 감옥에 처넣는 것은 시간문제라고 생각되었다.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이 있다고 좋은 생각이 하나 떠올랐다. 이 이단의 나라에서는 아무도 한글 이외의 언어를 알지 못하고 아무리 좋은 숙어집이 있어도 한글은 이방인에게 세계에서 가장 이해하기 힘든 언어이다. 그러나 내 경험으로 미루어보아 반드시 어딘가에는 말이 통하는 곳이 있으며, 그곳이 바로 우체국일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인력거꾼들을 우체국으로만 가게 하면 되는 것이다. 그러나 무슨 수로 '우체국'이란 말을 이해시킬 것인가? (...)

우체국장은 아주 젊은 사람이었다. 예기치 못한 놀라움이 얼굴에서 가실 줄을 몰랐다. 흰 복장 위에 녹색의 얇은 비단으로 된, 공무시 착용하는 코트를 입고 있었으며, 팔목에는 비단으로 표면이 입혀진 한 쌍의 따뜻해 보이는 토시를 하고 있었다. 그는 서투른 프랑스어를 구사했고(코레아의 우편 산업은 프랑스인에 의해 정비되었다) 기꺼이 안내를 하려고 했다.

서울까지 가는 기차는 아직 공식적으로 개통이 되지 않은 상태였다. 선로 점검이 완료되지 않았던 것이다. 그렇지만 바로 오늘, 한 시간 후에 최초의 민간 전용 열차가 떠날 예정이었다. 재수가 좋고 서두른다면 출발 시간에 맞춰 닿을 수 있었다. 역은 시가지 뒤쪽에 있었고, 차표 사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라고 했다. 문제는 인력거꾼들이 얼마나 빨리 뛰어주느냐에 있었다. 도로 사정은 나빴고, 코레아의 인력거꾼들은 절대로 서두르지 않는다. 그러나 돈을 좀더 손에 쥐어준다면 분발을 해 다리를 더 빨리 움직일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우체국장이 인력거꾼들에게 간결하면서도 흥미롭게 요점을 설명하자 그들이 대답하기를, 만약 각자에게 아침나절의 삯 모두를 합해서 60전씩을 준다면 시간 내에 충분히 닿게 하겠다고 했다. 내가 동의를 하고 막 떠나려 할 때 우체국장이 나를 막더니 여행 중 먹을 음식을 사가는 것이 좋을 거라고 충고해 주었다. 시간표에 의하면 서울까지는 16시간이 걸린다는 것이다. 하지만 30시간 이상도 걸릴 수 있다는 말이었다. (...) 이 모든 것을 조심스럽게 바구니에 싸 넣고 인력거에 올라 그 친절한 우체국장과 작별을 했다. (...)

어느 나라이고 각양각색의 친절한 사람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중요한 것은 과연 그런 사람들을 쉽게 만날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그것은 재수가 있어야 되는 일이다. 오늘 코레아에서의 첫 번째 만남은 운이 좋았다. p36-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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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역의 이 북새통에서 내가 마지막 본 장면은, 그 무리들 중에서 제일 왜소한 일본인이 키 크고 떡 벌어진 한 코레아 사람의 멱살을 거머쥐고 흔들면서 발로 차고 때리다가 내동댕이치자, 곤두박질을 당한 그 큰 덩치의 코레아 사람이 땅에 누워 몰매 맞은 어린애처럼 징징 우는 모습이었다. p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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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훌륭했어요. 러시아인들은 위대하게 행동했습니다. 이 해전에서 러시아군들은 용감하다는 것이 무엇인지 전 세계에 그 참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열이면 열 격침될 것이 뻔한데도 바략 호와 카레예츠 호는 연기를 뿜으면서 항구를 떠났고, 여러 면에서 훨씬 우월한 적 함대와 맞붙어 마지막 피 한 방울이 남을 때까지 싸웠습니다. 철로 만들어진 군함에 대해 이런 식의 표현을 할 수 있다면 말입니다.

수와 무기 면에서 일본군은 월등했지만 러시아군은 잘 싸웠습니다. 결국 승산이 없다는 것을 알자 러시아군은 닻을 내렸지요. 러시아 함장들은 항복하느니 차라리 죽음을 택했습니다. 그들의 마지막 대포가 침묵에 빠지자, 그들은 배를 폭파시키고 배와 함께 자신들을 수장시킬 각오였습니다. 사나이답게 자신이 임무를 맡은 곳에서 죽자는 것이었지요. 그들의 명예가 항복하는 것을 용납하지 않았습니다. (...)

이 41명의 전사자들의 시체는, 생존자들이 바략 호를 버릴 때 선장실에 차곡차곡 쌓아두었다고 합니다. 이로써 러시아 곰에 대한 일본인들의 첫 번째 승리의 마지막 장은 그 막을 내리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명예가 없는 승리였습니다. 그들의 승리는 비겁한 습격에 의한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이에 반해 러시아인들은 영웅들처럼 싸웠던 것입니다." (...)

네이 박사의 이야기는 감동적이고 주의를 끄는 것이었다. 그의 이야기를 듣던 사람들은 그제서야 독일적인 감상주의에서 벗어나 평소처럼 대화를 계속했다. 그들은 만약 일본이 전쟁에 승리할 경우 코레아의 장래는 암담하다고 예견했고, 일본이 승리한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한 가닥의 의혹도 품지 않았다.

"일본은 이 전쟁을 수년에 걸쳐 준비해왔습니다."

영사의 말이었다.

"그러나 우리는 이제야 그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모든 일이 암암리에 비밀스럽게 추진되어, 전쟁이 나기 전에는 아무도 그 진상을 알 수 없었지요." p152-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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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레아의 노비들은 노예라는 단어의 어감이 풍기는 그런 비참한 운명과는 거리가 먼 삶을 살고 있다. 노비들의 노동량을 빈곤층과 비교해본다면 오히려 훨씬 적은 편이며, 주인이 잔인하고 악한 경우는 매우 드물다. 만약 주인이 그렇다 할지라도 노비들은 항상 당국에 호소할 수 있고, 이 호소가 타당하다고 판단이 나면 주인은 벌을 받게 된다. p1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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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결혼 생활이 파탄날 경우 여자는 남자보다 훨씬 불리한 위치에 처하게 된다. 여자는 그녀가 싫어하는 남자와 법적 이혼을 할 수 있는 아무런 권리도 가지고 있지 않다. 물론 원한다면 도망치거나 친정으로 피신할 수는 있다. 이해 대해 법은 시댁에 돌아가야 한다는 아무런 강요도 하지 않는다. 그렇지만 한 가지 남편이 위안으로 삼을 수 있는 것으로는 결혼 비용에 대한 보상 청구를 할 수 있다는 것이다. (...)

나는 결혼이나 사회 생활에서의 코레아 여성의 지위를 비롯한 많은 것을 알게 되었다. 또한 비록 여성이 사회적으로 격리된 생활을 하기는 하지만 반드시 지켜야 할 의무 외에 법적 권리도 상당히 누린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길거리에서 만나게 되는 여성에 대해 취하는 공경스러운 태도를 두 눈으로 목격한 후, 여성이 어릴 적을 빼놓고는 자신의 이름을 가지고 있지 않고 낮은 호칭으로 불린다는 사실에 나는 아연실색하지 않을 수 없었다. p186-1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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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자비 장례식은 어디다 견줄 데가 없을 만큼 화려하고 장엄했다. 서구인들로서는 감히 흉내도 낼 수 없는 것이었다. (...)

그때 내 눈앞에 펼쳐진 한 폭의 그림은 아마 죽을 때까지 잊을 수 없으리라. 아무리 비용이 많이 든 가면무도회라 할지라도 여기에는 비할 바가 못 되었다. 한마디로 말해 웅장했다. 눈이 부셨다. 동양의 찬란함이요, 아낌없는 풍성함이었다. 내 두 눈을 도무지 믿을 수가 없어서 내가 혹시 꿈을 꾸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p209-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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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와는 달리 노래와 음악은 그렇게 좋은 편이 아니었다. 춤도 그랬지만 노래와 음악도 내가 일본에서 들었던 것을 상기시켰다. 단지 목소리만은 덜 카랑카랑했고, 듣기에도 덜 지루했다. 가락 자체는 이해하기가 더 쉬운 듯도 싶었다.이 가락은 길게 늘어진 음과 떨림 음으로 짜여 있었고, 박자가 중시되지 않는 것이 특징이라면 특징이었다. 그러나 코레아인들에 따르면 음악이란 자연의 소리를 모방하는 것에 다름 아니며, 따라서 정확히 계산된 박자에 따라 곡을 만들어서는 안 된다고 했다. 바람은 자신이 원하는 대로 자신의 음악을 연주하고, 나뭇잎 떨리는 소리나 해변에 부딪치는 파도 소리는 규칙적이지 않으며, 짐승들의 울음소리나 새들의 노랫소리도 음률로 가다듬을 수 없다. 그렇다면 음악을 억지로 그 고저장단에 따라 나눌 필요가 있을까? 음악은 음악이 모방하는 그것 자체와 똑같이 자유로워야 한다는 것이 코레아인들의 지론이었다. p233-2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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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레아 기생들의 도덕 수준은 서양의 예능인들과 비교하여 별 차이가 없다. 인생을 사는 동안 즐기고 보자는 생각에 삶을 긍정적으로 대한다. 이들은 젊음과 아름다움이 시듦과 함께 그 자신들도 사라진다. 그렇다고 해서 이들의 운명이 기구한 것이라 생각한다면 큰 오해다. 어느 돈 많은 사람의 첩으로 들어앉거나 세상 어느 한구석에 자리를 잡고 추억에 묻힌 채 숨어서 만년을 한가히 보내는 것이다. 젊었을 적에 재산을 모으지 못한 경우는 예외에 속한다. 코레아인들은 마땅한 낙이 없는 자신들의 삶에 기쁨과 재미를 선사하는 기생들에게 보수를 지불할 때 구두쇠짓을 하지않기 때문이다. p235-2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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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일본의 조심스럽던 행위는 아주 노골적으로 변했다. 코레아는 사실상 일본의 보호령이 된 것이나 다름없었다. 동서남북 어디를 가도 일본이 철도, 우편, 무역, 해운을 온통 손아귀에 넣고 있었다. 코레아 우체국의 코앞에 일본 우체국이 버티고 서 있었고, 국도 주위로는 무장한 일본 경찰들이 순찰을 다녔으며, 도시에서는 일본 경찰들이 자신들 기분 내키는 대로 코레아 군졸들을 다루다가 비위에 거슬리면 바로 엉덩이를 질러대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범죄의 원흉인 일본의 아들들은 자신의 나라에서는 엄두도 못 낼 행위에 대해 처벌을 받기는커녕 대로를 활개치며 다녔다. 반면에 코레아 사람들은 목에는 칼을 차고 다리는 족쇄에 채워진 몸이 되어 싸움에서 약자가 된 서러움을 톡톡히 맛보고 있었다. 비록 이들이 이런 대우를 받아 마땅하다고 할지라도 나는 이들이 한없이 불쌍하게 여겨졌다. 악랄한 압제자의 덫에 걸린 약자를 동정하는 것은 인지상정인 모양이다. p257j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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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말한 바와 같이, 코레아인 가운데 일본 앞잡이들은 일진회라는 단체를 만들었다. 일본으로부터 자금을 지원받는 이 단체는 외국 사절단에게 코레아 백성의 열망은 일본의 통치를 받는 것이라는 인상을 심고, 일본의 이익을 위해 하루라도 빨리 자기 나라를 붕괴시키기 위해 획책하고 있었다.

내가 코레아에 입국할 즈음에 일본인들은 코레아 군대의 무장 해제를 요구하였다. 따라서 일진회 회원들은 군인들이 무기를 지니고 다닐 만한 가치가 없다는 것을 입증시키고자 틈만 있으면 군인들에게 싸움을 걸었다. (...)

그런데 묘한 것은 일본의 태도였다. 일본은 코레아 내에 안정과 질서가 잡려가는 것을 원치 않았다. 이들은 조국을 배반하는 자들을 옹호하였고, 코레아 내의 질서를 유지한다는 핑계를 대면서 자신의 의무를 다하는 군인들을 공격하였다. p257-2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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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이때, 근처에 운집해 있던 수천 명의 군중들이 일본 군인들을 향해 돌을 던지기 시작했다. 코레아인들은 특히 투석전에 뛰어났다. 사태는 순식간에 긴박감을 띠게 되었다. 일본인들은 권총을 빼들고 난사하기 시작했다. 흰 두루마기를 걸친 사람들이 차례로 땅에 쓰러졌고, 나머지 사람들은 '걸음아 나 살려라'하고 사력을 다해 도망을 갔다. (...)

한편 코레아 군인들은 근처에 있던 담을 방패 삼아 진지를 구축했다. 일본인들도 뒤따라 날쌔게 그 담을 뛰어넘었고, 곧이어 안타까운 장면이 벌어졌다. 코레아 군인들이 한 명씩 대로로 끌려 나왔고 총을 버릴 것을 명령받았다. 이 명령이 즉각 이행되지 않자 일본인들이 총을 직접 낚아채버렸다.

가장 안타깝고 유감스러웠던 일은 코레아 군인들 가운데 딱 한 사람만이 끝내 항복을 거부하고 저항을 시도한 일이었다. 이 사람은 착검된 총에서 단검을 재빨리 빼내어 가장 가까이에 있던 일본인의 얼굴 중심부를 공격해 들어갔다.

일본인은 피를 낭자하게 흘리면서 땅에 나동그라졌다. 그러자 나머지 일본인들이 재빨리 무더기로 몰려가 그 용기 있는 코레아 군인을 덮쳐 순식간에 처참할 정도로 요절내버렸다. 일본인들이 그의 몸에서 손을 뗐을 때 그는 이미 사람의 모습이 아니었다.

그는 자신이 부상을 입힌 일본군 옆 땅바닥에 비참한 모습으로 뒹굴고 있었다. 두 사람 다 차마 눈을 뜨고 볼 수 없을 정도로 심한 부상을 입었으나, 일본군은 코레아 군인에 비하면 그래도 훨씬 나은 편이었다. 코레아 군인은 자신의 의무를 충실히 지키려다가 불쌍하게 그 지경이 된 것이었다. 그러나 소수가 다수에게 대들었을 때 항상 그렇게 되는 것이 인생의 법칙인 걸 어떡하랴. p260-2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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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북새통에 서구식 옷차림을 한 젊은이가 불쑥 나타났다. 내우 격해 있던 그는 나를 보자 내게로 달려와 옷자락을 움켜잡고 떨리는 소리로 다음과 같이 말했다. (...) 이 젊은이는 코레아에서 유일하게 발행되는 영자 신문의 편집자였다. 미국인인 이 사람은 일본인을 페스트 대하듯 증오하였고, 코레아에서 행해지는 일본의 정치 음모를 만천하에 폭로하는 데 전 생애를 건 사람이었다. (...)

몇몇 일본 장교들이 수상쩍다는 듯이 우리를 주시하는 것을 알아채고 나는 그의 말을 가로막았다.

"비록 인간으로서 인간을 대하는 태도가 이래서는 안 되겠지만 아직까지 누가 살해된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무슨 말씀을 하시는 겁니까? 지금 끌려간 사람들은 생전에 다시는 햇빛을 볼 수 없을 겁니다. 종적도 없이 사라지는 것이지요. 일본의 언론조차도 이들의 운명에 대해서는 입을 다물고 맙니다. 땅이 갈라져 그들을 삼킨다고 생각하십니까? 아니면 하늘에서 천사들이 내려와 그들을 데려간다고 믿으시나요? 이봐요. 당신에게 한마디 하겠는데, 만약 이 불행한 나라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이 세상에 알려졌을 때 사내대장부라면 누구나 울분을 금치 못하고 통곡을 할 것이오." p262-2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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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아맞출 수 있겠어요?"

내가 모르겠다고 대답하니 독일 영사는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만약 이 십자가들이 보존될 수만 있다면, 이것들은 일본인들이 코레아를 강점한 동안에 저지른 가장 악랄한 행위에 대한 경종이 될 것입니다. 바로 이 하얀 십자가가 서 있는 곳은 세 명의 코레아 농부들이 일본인들에게 강제로 토지를 빼앗긴 데 대한 항거의 뜻으로 최근에 완성된 철로를 부수려다가 발각되어 무참히 총살을 당한 장소이지요. 이 십자가 세 개에 몸이 묶인 세 명의 불쌍한 '죄수'들이 여기에 서 있었고, 땅이 울퉁불퉁한 저쪽에 일본 군인들과 그들의 지휘관이 정렬해 있었습니다. 시간이 되자 발사 명령이 떨어졌고 군인들은 57발의 총탄을 날렸습니다. 코레아인들은 몸이 벌집이 되어 죽었지요. 또한 시체를 옮기는 것이 금지되어 시체는 이곳에 엿새 동안 버려져 있었습니다. 결국 매장하기 위해 시체를 옮길 때에는 독수리와 육식 조류들이 얼굴을 파먹어 신분조차 확인할 수 없었습니다." p2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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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코레아인들의 심성이란 게, 특히 죄수를 다룰 때는 짐승과 별 차이가 없다는 사실을 모두가 익히 알고 있었다. 사람들을 잔인하게 다루는 것은 오랜 옛적부터 내려온 동양의 폐습이었다. 본래 폐습이란 하루아침에 없어지는 것이 아니지 않은가? p2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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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레아의 감옥을 구경한 후)

그러나 탐구심이란 원래 타고난 본능이자 의무이기도 하다. 혹자는 세상의 아름다운 면만을 보기 위해 한쪽 눈을 감고 인생을 살아갈지도 모른다. 하지만, 삶에 대한 이런 사람의 이해는 밝고 아름다운 것은 될 수 있을지언정 바른 것은 될 수 없다. 우연히 한쪽 눈을 떠서 실상을 직시했을 때 그는 감당할 수 없는 충격에 휩싸이게 될 것이다. 삶의 흉한 면만을 보는 사람들도 있는 바 이런 부류의 인간들은 그 인생이 가련하다 하겠다. 내 자신이 속하고 싶은 세 번째 범주의 사람들은 아름다움과 추함, 선함과 악함을 모두 다 본다. 이들은 인생에 대한 망상을 품지 않는다. 따라서 이들은 적당하게 균형이 잡힌 행복을 영원히 누릴 수 있다. 물론 잘 균형이 잡히고 철저하게 계산된 어떤 상태를 행복이라고 부를 수 있다면 말이다. p2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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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둥병은 코레아 전역에 만연되어 있다. 더구나 문둥병 환자들을 격리 수용하지도 않고 치료도 해주지 않기 때문에 환자의 수는 해를 거듭할수록 늘어날 뿐이다. 물론 이 나라에도 나름대로 치유법이 있기는 하나 그 치유법이란 것이 어떤 종류의 것인지 한방 치료에 관한 이야기에서 이미 말했기에 가히 짐작이 갈 것이다. p322-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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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후에 우리가 둘러볼 강화도의 구경거리들 중 첫 번째 목표를 향해 발걸음을 떼었다. 20여 분 만에 우리는 목적지에 도착했다. 수풀과 잡초 사이에 난 있는 길은 섬 안쪽으로 들어갈수록 높아졌다. 구경거리란 게 고작 초지진이라 불리는 옛 성채였기에 우리는 꽤 실망을 했다. 코레아 역사에서 여러 차례에 걸쳐 중요한 역할을 담당한 이 보루는, 미국인들이 1871년에 이 섬을 공략하였을 때도 요새로서의 구실을 충실히 해낸 곳이라 한다. 하지만 지금은 몇 군데의 무너진 담장들, 썩어 나자빠진 울타리, 앙상하게 골절만 남은 탑, 부서진 평석들, 썩어가는 대들보만이 옛날의 영과으로부터 남은 것들이었다. 시간이란 냉혹한 것으로 이 시간의 파괴를 막을 수 있는 사람은 없다. 유적지의 보존 상태는 한 민족의 민족성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p3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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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의 거리들을 오랜 시간 산보한 후 피에르 형제는 호텔까지 나를 동행했다. 우리는 엠버얼리 씨와 어울려 유쾌하게 저녁 시간을 보냈다. 이 두 사람들이 나눈 대화의 내용을 지금 다시 반복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러나 그들은 코레아인들과 일본인들의 국민성에 대한 자신들의 풍부한 지식을 토대로 하여 많은 예측을 하였다. 그 예측들은 내가 코레아를 떠난 후 역사가 되었다. 그들이 펼쳐 보인 코레아의 미래는 밝은 것이 아니었다. 정신적으로 정체해 있는 한 민족을 기다리고 있는 것이 암담한 미래 외에 무엇이 있겠는가? p3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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