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때와 사춘기 때 접한 것은 무엇이든
마음에 조각칼로 새긴 듯 일평생 지울 수 없는 인상을 남기는 것 같다.
그 시기가 정말로 중요한 이유이기도 하고.
그때 처음 들었던 몇몇 클래식 곡은
말 그대로 영혼을 휘몰아치게 했다.
음악감상 시험을 위해 처음 들었던 스메타나의 몰다우나
슈베르트, 베토벤 등등
그땐 사실 G선상의 아리아만 들어도 전율이 왔다.
바이올린이나 첼로 소리는 다른 것과 비교할 수 없는 신비한 울림이 있었다.
지금은 뭘 들어도 그만큼의 감흥이 없어서 아쉽다.
나는 하모니카엔 별 감흥이 없다. 관련된 추억도 없고.
하지만 김 여사는 다르다.
십대 때 하모니카를 기가 막히게 불던 동네 오라버니가 있었는데
저녁 나절이나 밤이면 그 하모니카 소리가 집까지 들려왔단다.
그 소리가 얼마나 좋던지 지금도 또렷이 생각나신다 한다.
노인복지관에서 하모니카 강좌가 인기 있어 조기 마감되는 이유이다.
그 세대 분들은 하모니카에 관련된 추억이 있는 것이다.
김 여사는 오래 알고 지내던 순옥아줌마의 권유로
하모니카를 배우기 시작했다.
김 여사는 처음엔 잘 안 되어 많이 좌절했는데 일 년쯤 지나니
제법 곡이 느껴지게 부르신다.
하모니카도 종류가 많은데 종류별로 다 구매하셨다.
코로나만 아니면 지금쯤 일취월장했을 텐데
코로나로 복지관이 문을 닫으면서 일 년 육개월째 독학 중이다.
지금은 문을 열었지만 조심스러워서 계속 안 나가고 계신다.
순옥아줌마는 김 여사의 지인 중에서 내가 제일 고마워하는 분이다.
김 여사 즉 우리 엄마에게 하모니카를 권했으니까.
두 분 다 몇 년 간격을 두고 배우자를 암으로 잃었다.
하모니카에 빠져들면서 김 여사는 무언가에 열중하게 되었다.
그리고 노래가 주는 치유와 위안이 분명 존재한다.
좋은 노래는 끝이 없다.
그래서 하모니카도 불러도 불러도 끝이 없다.
이 얼마나 좋은가.
한 달쯤 전일까, 김 여사의 텃밭에 갔더니
두 분이 감나무 그늘 아래서 하모니카를 불고 계신다.
벌써 두 시간째라고 한다.
두 분이 그렇게 유유자적하시길래
체리는 내가 다 땄다.
하늘 쳐다보며 높은 가지에 매달린 체리 따느라고
목이 아파왔지만 마음은 가벼웠다.
우리는 무언가에 기대어 한 시절을 넘어간다.
음악은 많은 이들에게 기댈 언덕이 되어주었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