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중년이 처음입니다"
예전에 서점에서 얼핏 본 책 제목이다.
내용은 별로 흥미 없어 보여서 책을 사지는 않았지만
제목에는 정말 공감이 갔다.
그래, 우리 모두에게 중년은 처음이니깐.
나이에 붙은 4라는 숫자에 이제 좀 적응할 만하니 5가 다가온다.
20대와 30대는 당연하게 받아들였는데
그 다음 숫자들은 왜 그렇게 낯선 것일까.
중년의 위기는 길은 잃은 느낌에서 시작되는 것 같다.
지금까지 앞을 향해 열심히 달려왔는데
갑자기 어디로 가야할 지 앞이 보이지 않고 막막한 느낌.
혹은 에너지가 바닥 나서 어디로 가야 할 지 무엇을 해야 할 지
더 이상 하고 싶은 것도 재미 있는 것도 모호한 상태.
삶의 진정한 만족감은 어디에서 올까.
중년엔 정서적으로 안정된 가정과 경제적 자유를 많이들 꼽지만
그것보다 한층 더 깊이 내적 행복을 좌우하는 것이 있는 듯하다.
정서적, 경제적 안정보다 근본적인 영향을 미치는 것이 있으니 그것은
'자기 길'을 걷는다는 느낌 혹은 확신이라고 생각한다.
지금까지 내가 내 길을 걸어왔고
지금 걸어가고 있고 앞으로도 힘을 내 걸어갈 것이라는...
크고 작은 쾌락을 얻기가 무척 쉬운 시대다.
그럼에도 사람들이 방황하는 이유는 쾌락은 많지만
'자기 길'을 걷는다는 느낌 혹은 확신이 부족해서가 아닐까.
넘쳐나는 정보의 시대가 오히려 사람들로 하여금
자기를 보기보다는 타인의 시선에 내몰리게 하는 면도 있다.
삶은 곧 시간이다.
내 삶을, 내 시간을, 내 길에 써왔다는 느낌,
엉뚱한 것에 허비하지 않았다는 느낌,
내 길을 걸어왔다는 느낌, 내가 타인의 삶이 아니라 내 삶을, 내 시간을 살았다는 의식.
이것이 우리를 굳건히 서게 만든다.
내가 내 젊음을, 내 시간을 내가 원하는 시간과 장소에서 썼다는 것,
이것이 행복과 만족감의 원천이라고 생각한다.
소확행이 삶의 궁극적 목적이 될 수 없는 이유도
자기 길을 걷고 있지 않을 때 소확행은
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이 아니라 잠깐의 위로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중년에 찾아오는 회한은
내가 내 젊음을, 그토록 소중한 젊음을, 그 시간을
엉뚱한 데 썼구나 하는 뒤늦은 깨달음에서 나온다.
잘 쓴 시간은 '그리움'으로 남지만
잘못 쓴 시간은 '회한'으로 남는다.
그렇다고 가버린 시간 앞에서 당황하기만 할 수는 없다.
노년이 되면 이 중년 또한 진한 그리움으로 남을 것이기에.
진짜 '나'로 살아야 한다.
길게 남았든 짧게 남았든 하루든 십 년이든
자기 자신으로 진하게 살아야 한다.
그동안 사회에 적응하기 위해 익힌 페르소나를 벗어버리고
자기로 살아야 한다.
한 인간으로 돌아가야 한다.
남은 날들은 매순간 내가 내 길을 걷고 있다는 감촉을 발 아래 느끼며 살고 싶다.
사는 이야기/일상의 기록
삶의 진정한 만족감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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