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라디보스톡에서 우수리스크 지나 하바롭스크까지,
내가 연해주에 처음 갔을 때 그곳에서 만난 독립운동가들의 흔적에
가슴이 먹먹해졌던 적이 있다.
제 한 몸 바로 세우기도 어려운 낯선 땅에서 고군분투하면서도
고향과 나라를 잊지 않았던 선조들의 애국심이
나라 밖에서 더 잘 느껴졌다.
이 책 '뭉우리돌의 바다'는 해외 독립운동의 이야기를 기록한 책이다.
저자는 다큐멘터리 사진 작가다.
평소처럼 사진을 찍으러 갔다가 우리나라와 전혀 상관 없을 것 같은
인도 델리 레드포트가 독립운동사의 중요한 흔적이 있는 곳이란 걸 알게 되고
이후 몇 년 간 해외 독립운동 관련 장소를 취재하고 답사한다.
이번 책은 그 중에서 인도, 쿠바, 멕시코, 하와이, 미국을 다뤘다.
정부가 해야 할 만한 방대한 작업을 한 개인이 소화했다는 것이 놀라웠다.
책에는 사진이 많다. 그 사진들은 과거를 소환하는 힘이 있어
이야기가 더욱 잘 읽힌다.
기억과 현재 사이의 관계를 고민하고
기억과 현재 사이에 '질문'을 던지는 인상 깊은 사진들이다.
저자가 필력도 좋다. 과장도 신파도 없이 담담하게 이야기를 전달하는데
그 담백한 소회가 그가 찍은 사진과 함께
잔잔하게 마음을 파고든다.
각 꼭지가 다 인상 깊었지만
그 험한 노동을 하면서도 '쿠바이민사'를 집필했던 임천택,
미국에서 일본의 입이 되었던 스티븐스를 처단했던 두 청년, 전명운, 장인환 의사.
이후 투옥과 투병 등 험난한 시절을 건너고 한 명은 생을 포기한
두 분 이야기가 특히 기억에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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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한 장으로 역사적 내용을 전부 전달하라는 건 요리사에게 한 가지 음식으로 전 세계 미식의 맛을 모두 표현하란 이야기와 같다. 사진을 거들 뿐이다. 관객에게 잠시 회상의 기회를 준다면 그걸로 준수하게 임무를 달성한 게 된다. 거기다 가슴을 찌르는 무엇, 롤랑 바르트가 '푼크툼'이라 표현한 느낌까지 전달할 수 있다면 흠잡을 데 없이 좋은 사진일 거다. 하지만 이런 작품은 쉽게 찍히지 않는다.
사진은 이미지다. 태생적 한계가 있다. 시시콜콜 기록하고 살고 싶다면 카메라 대신 펜을 드는 쪽이 낫다. 애초부터 피사체의 생을 하나도 빠짐없이 기록하라고 만들어진 매체가 아니다. 주름의 생성 과정을 일일이 다 보여줄 필요는 없다. 사진의 역할은 주름이 가진 감정을 전달하는 데 있다.
직업 내내 매체의 한계를 인정하고 사진이 할 수 있는 일을 찾으려 했다. 귓가를 '엥엥' 울리는 사진보다 차라리 침묵하는 작품을 찍고 싶었다. 사진은 그 소리 없음으로 과거의 모든 시간을 끄집어내야 한다. p396-397
책 이야기/역사, 인물
뭉우리돌의 바다(김동우) _ 가슴 찡한 사진과 함께 듣는 해외 독립운동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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