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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이야기/다큐

[다큐] 엔니오, 더 마에스트로

by 릴라~ 2023. 8. 1.

파시즘이 유럽을 휩쓸던 무렵

프랑코 치하 로마에 살던 가난 트럼펫 연주자는

아들이 생계를 위해 먹고 살 길을 트럼펫 이외에는

상상할 수 없었던 것 같다. 

의사가 꿈이었던 아들에게 트럼펫을 배워서 먹고 살라고

아들을 국립음악원에 보낸다. 

아들은 낮에는 학교에 다니면서 

아버지가 아파서 연주를 할 수 없는 날 밤이면

아버지 대신 무대에서 트럼펫을 연주하는 생활을 한다. 

음악원을 다니며 트럼펫보다는 작곡에 더 재능이 있음을 발견하고

작곡을 배우기 위해 학업을 계속한다. 

당대 대가로 인정받던 페트라시에게 배우며

우수한 성적으로 음악원을 졸업하지만

음악으로 일자리를 찾기는 막막했다. 

결혼을 하며 생계를 위해 시작한 대중음악 편곡. 

당시 대중음악의 배경음악은 반주 정도로만 여겨지던 시절에

그 청년이 편곡한 노래들은 참신하고 풍부한 전주,

강조되는 메인 테마, 실험적인 편곡으로 메가 히트를 치게 되고

그 성공은 영화 음악 의뢰로 이어진다.

 

당시만 해도 영화 음악 작곡이 주류에서는 전혀 인정받지 못했고

스승 페트라시조차도 천박한 일이라며 비난하던 시대였다.

70년까지만 해야지, 80년까지만 해야지, 90년까지만 해야지,

하던 영화 음악 작업은 2000년대까지 이어지고

대중음악과 클래식 사이에서 갈등하고 방황하던 그의 정체성은

세월이 흐르며 작품 안에서 모두 만나서 조화를 이루고

그는 그 자신의 음악을 만들었다. 

마에스트로, 엔니오 모리꼬네다. 

1984년, 영화 '원스 어펀 어 타임 인 아메리카'가 개봉됐을 때

스승은 편지를 써보낸다.

우리가 잘못 이해했다고. 정말 훌륭한 음악이라고.

엔니오는 편지를 받고 뜨거운 눈물을 흘린다. 

 

<엔니오 더 마에스트로>는 '시네마 천국'을 만든

주세페 토르나토레 감독이 엔니오 모리꼬네의 음악 인생을

처음부터 끝까지 진지하게 추적한 다큐 영화다. 

장장 두 시간 반 동안 그의 어린 시절은 물론

60년대에서 2000년대에 이르기까지 그가 작업한 대표적인 곡들을

모두 다루고 그 작업에 대한 엔니오 자신의 회고담과

주변 많은 사람들의 증언과 기록이 함께 등장한다. 

거장의 작품 목록을 모두 훑어볼 수 있는 영화임과 동시에

잘 알려진 많은 영화감독과 음악인들이 등장하여 

음악을 통해 영화의 역사를 함께 훑는 재미도 있었다.

이 과정에서 마음에 또렷이 남는 것이 있었으니 

첫째는 엔니오 모리꼬네의 음악적 고민이었다. 

그는 대위법 등 클래식 작곡에 정통했으며

현대음악의 거장 페트라시에세 사사했고

존 케인즈 등의 영향으로 전위음악에도 큰 관심을 가졌고

다양한 음향 효과들을 음악에 동원했다.  

그는 생계를 위해 타인의 요구를 들어야 하는

편곡과 영화음악 작업에서도 탁월한 창의성을 발휘하여

늘 새로운 시도를 했으며 영화 음악 작업 중에도

한편으로는 자신의 음악을 작곡하곤 했다. 

 

그 갈등과 분열이 한계에 다달했을 때 그는 영화음악을 버리고

클래식으로 돌아가려 하였으나 운명처럼 대작을 연이어 만들고

그의 모든 작업이 음악의 역사로 자리잡는다.

영화는 말한다. 그가 진정으로 위대한 것은

"자기 시대의 음악"을 했기 때문이라고. 

모짜르트나 베토벤처럼 그의 음악은 20세기 음악 자체라고. 

그의 생애의 그러한 결말 또한 마음에 깊이 남았다. 

음악가들은 그가 200년 뒤에 더 훌륭한 평가를 받을 거라고 예상한다. 

그렇게 이 영화는 엔니오 모리꼬네의 음악이 훌륭한 영화음악일 뿐 아니라

20세기의 가장 뛰어난 음악이라는 점을 부각시킨다.

200년 뒤에도 살아남을 만한 한 시대의 마스터피스 말이다. 

그는 영화음악의 방향을 결정하고 그 역사를 새롭게 썼으며

영화음악의 테두리를 넘어 음악 그 자체로서

수많은 음악가들에게 영감을 주는 '마에스트로'가 되었다.  

 

처음부터 끝까지 대화와 작품 소개로 이어진 영화지만

정말 버릴 게 하나도 없이 엔니오를 제대로 소개하는 영화다.

한 인물에 대한 다큐는 이렇게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도 갖게 했다. 

영화 '미션'이 언제 나오나 계속 기다리며 봤는데

1986년작이다보니 한참 뒤에 나온다.

하지만 공연 실황 장면은 가장 길게 보여주었고

정말 천상의 음악이구나 싶었다.

1990년 시네마천국이 잠깐 나와서 아쉬웠고.

 

그의 음악이 그렇게 흥행에 성공하는데도

주류 음악계는 그의 음악을 인정하는데 인색했고

누구나 수상을 점찍었던 영화 '미션'도 오스카 작곡상을 수상하지 못했다.

그의 천재성을 세계가 알아보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지만

90세까지 살며 결국 온세상이 그의 음악을 사랑하는 것을

충분히 지켜보며 살다갔기에 매우 행복한 인생이었다는 생각도 든다. 

예술의 목적은 소통이고, 그는 음악을 통해

전인류와 소통한 사람이었다. 

서부극, 스릴러, 역사물, 휴머니즘 등 수많은 장르의 영화에 

음악이라는 옷을 입히면서 

인간의 감정을 누구보다 잘 이해하게 되었고 

그것이 더 훌륭한 작품을 낳은 원천이 된 것 같다. 

하나하나 색깔이 다른 작품인데도 한편으로는

모두 엔니오의 음악이구나를 느낄 수 있게 했으니

결국 그는 음악으로서 그 자신을 표현해내는데 성공했다고 말할 수 있으리라.

그의 뜨거운 인간애의 바탕에는 그가 십대 시절과 이후에 경험한

파시즘과 세계대전으로 인한 참상이 자리했을 것이며 

그는 독실한 종교인이면서도 반종교적인 영화의 음악도 열심히 작곡했으니

누구보다도 예술에 대해 열려 있는 작곡가였다는 생각도 든다.  

 

20세기를 대표하는 거장의 작품 세계를

그 자신이 직접 전하는 목소리로 들을 수 있어 

러닝타임 두 시간 반이 그저 행복했다. 

오늘이 개봉 마지막날이라 챙겨서 갔다.

돌아와서 '가브리엘의 오보에'를 다시 들었다.

조만간 영화 '미션'을 다시 한 번 봐야겠다 싶다. 

 

 

 

https://youtu.be/0qWEFa4tgh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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