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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이야기/펌 자료

펌) 혐오가 교실에 퍼지기 전에 / 차승민 쌤

by 릴라~ 2024. 4. 25.

페이스북을 더러 읽는데, 거기서 내게 가장 많은 깨우침을 준 분들은 

초등 쌤들이다. 초등은 아이들을 일 년을 맡다보니 학급 운영에 고수인 분들이 많이 계시다.다양한 무림의 고수들을 보며, 와, 중등은 학생 파악조차 못하고 일 년이 가는구나 했다.다양한 사례 중에서 특히 기억에 남는 사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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혐오가 교실에 퍼지기 전에.
 
“선생님 제 필통에 있던 지우개가 이렇게 되었어요”
 
점심시간이 끝나고 5교시 영어가 시작되기전 현철(가명)이는 차쌤에게 자신의 여러조각으로 부서진 지우개를 보여준다. 현철이는 어제 다른 아이와 화해공감수업을 한 상태다. 전학 온 아이인데 기존의 아이들과 불협화음이 있음을 인지하고 있었다. 그래서 차쌤도 심리전을 준비하고 있던 차에 일이 벌어졌다.
 
같이 수업하던 원어민에게 양해를 구하고, 차쌤은 교장실로 가서 먼저 보고를 한다.
 
“교장선생님. 심각한 일이 벌어질 것 같습니다. 일단 제가 먼저 상황을 파악해보겠습니다.”
 
일단 교장에게 보고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건 간단한 우발사건으로 볼 수 없다.
 
아이들끼리 감정이 흐트러져 싸울 수 있다. 치고 받고 싸우면 오히려 쉽다. 격렬하게 싸워도 그 과정에서 감정이 폭발하고 수습을 하면서 상황파악을 할 수 있다. 그러나 이 건은 다르다.
 
미워하는 감정에서 몰래 현철이의 지우개를 부셨다는 건 혐오의 표현을 드러낸 것이다. 더 중요한 것은 행위를 한 아이는 이렇게 깊이 생각하지 않고 했을 가능성이 높다.
 
차쌤이 생각하는 이유는 이렇다.
 
만약 현철이와 싸웠던 아이라면 이렇게 할 이유가 없다. 싸우는 아이는 서로 빈 구석이 많기 때문에 드러나는 것으로 시비걸어 싸울 수 있다. 이렇게 싸우는 건 차라리 건강한거다.
 
평소 현철이를 못마땅하게 생각하는 아이가 자신은 들키지 않을 것이라 여겨 한 행동이다. 마치 우유먹기 싫어서 자기 서랍이나 사물함 넣어두면 아무 일도 생기지 않을 것이라 여기는 유치한 행동을 하는 아이와 같다.
 
그런데 이게 6학년이 한 행동이면 해석은 또 달라진다.
 
6학년이 이런 행동을 한다면 의도성을 가지고 했다고 충분히 의심한다. 그래서 범인을 잡아내고 책임을 지게 하는 깽값을 물려야한다고 여기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그렇게 했을 때 교육적 효과가 적다. 아니 위험하다.
 
난 깽판을 치면 깽값을 물린다. 하지만 이 경우는 다르다.
 
덩치는 큰데 미성숙한 감정으로 한 행위라 깽값을 물릴만큼 견디기 어렵다. 아무 생각없이 했다고 하기엔 사건이 너무 크기 때문이다.
 
누군지 모르는 부순 아이와 당한 아이와 차쌤의 인식 격차가 크다.
 
당한 아이는 심리적으로 구석에 몰린다. 대체 누가 자신에게 이런 행위를 한지 모르기 때문에 모두를 의심하거나, 모두에게 적대적 적대감을 가질 수 있다. 하지만 자신의 감정을 해소할 방법이 없기에 담임에게 알리긴 했지만 두렵고 고통스럽다.
 
한 아이는 상대를 골려주기 위한 행동이지만 이 정도로 고통스러울 것이라 예상 못한다.
 
난 영어수업을 좀 빨리 마치고 모든 행위를 중지시킨 후 종이 한 장을 나눠줬다.
 
이 상황에 대해 위급함을 설명했다. 그 중심 키워드가 [혐오]다.
 
“누가 했는지 찾을 수 없다”
“누가 했는지 찾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고 넘어가지 않을 것이다”
“지금 이 상황을 너희들은 어떻게 생각하는지 각자의 느낌을 쓰기 바란다”
 
지금으로부터 13년 전 이와 비슷한 일이 교실에서 일어났고, 대수롭지 않게 대처했던 난 범인을 잡아 진실의 실체를 밝히려 했지만 거의 두 달 동안 아이들과 부모들과 사투를 벌여야했고, 진실을 밝혔지만 아무런 교육적 효과는 없었다. 그때 받은 상처와 충격은 엄청난 것이었다.
 
차쌤 역시 이런 활동이 쉽지 않다. 아니 피할 수 있으면 피하고 싶다. 그래도 해야 한다.
 
가장 중요한 것은 교사의 감정이 흐트러지지 않는 것이다.
 
“마지막 친구가 다 쓰고 나면 차쌤을 불러라. 나도 이 기분을 정리해야 한다.”
 
연구실에서 마음을 정리하고 있으니 반 회장이 부르러 왔다. 칠랑팔랑하던 녀석인데 가장 진지한 모습으로 차쌤을 부른다.
 
교실에가니 쥐죽은 듯 조용한 가운데 차쌤의 앞에는 종이가 있다.
 
하나씩 소리내어 읽는다.
 
당황스럽다.
현철이가 마음이 아프겠다.
누가 했는지 알고싶다.
우리 교실에서 이런 일이 일어난 것이 슬프다.
아이들은 많이 적지 않았다.
적을 것이 없어서, 표현력이 부족해서 채우지 못하는 것이 아니다.
적어도 아이들은 이 과정을 심각하게 대하는 차쌤의 의도를 받아들인 것이다.
 
“우린 범인을 찾을 수도 없고, 찾지도 않을 것이다”
“그렇다고 잊을 수도 없다. 특히 현철이는 잊어지지 않는다”
“공개적으로 이것을 밝혔으니 다른 아이들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우린 살아야 한다. 공부해야 하고 배워야 한다”
“우리의 이 감정은 모두 쓰레기통에 버리자”
 
아이들에게 쓴 종이를 다시 나눠준다. 누가 썼는지 이름도 안적었다. 아무 종이나 잡고 발기 발기 찢어서 버린다. 다 버리고 난 종이박스는 포장을 해서 버린다.
 
현철이를 부른다.
“지금 느낀 너의 감정을 아이들에게 말해줄수 있겠니?”
 
현철이는 고개를 끄덕인다. 그리고 말을 한다.
“정말 고통스럽고, 힘들고 괴롭다. 왜 나에게 그런 짓을 하는거니? 나에게 나쁜 짓을 한 친구가 누군지는 모르지만 이젠 안했으면 좋겠다”
 
현철이는 목이 메어 흐느낀다. 그러다 오열한다. 보던 아이들도 숙연해진다.
“이 종이박스는 현철이가 버리도록 해라. 대신 현철이가 가장 신뢰하는 친구 한명과 같이 가도록 해라”
 
현철이는 종수를 지명했고 종수는 수락했다.
“종수야 현철이와 함께 버리고 오고 현철이가 진정될 때까지 기다렸다 교실로 들어오너라”
 
현철이와 종수가 나갔다.
침묵이 흘렀다.
“더 이상의 수업은 무의미하다. 현철이가 돌아오면 마치자”
 
한참이 지난 뒤 현철이는 돌아왔다.
“현철아 힘들지? 오늘은 아무것도 하지 말고 쉬어라. 집에 가서 자도록 해”
 
아이들이 갔다. 머리에 스팀이 쫙 올라온다.
교장실에 가서 보고를 핑계로 하소연과 함께 교장선생님이 타주시는 진한 커피한잔을 마시고 회복한다.
퇴근하기 직전 현철이 보호자에게 문자가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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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
현철이 엄마입니다.
전화드리려다 감정 컨트롤이 되지 않을까 걱정되서 문자드립니다
현철이 와서 이야기 나누고 자리에 누웠습니다
어제 저는 학교에서
현철이 그림보고,
담임선생님 뵙고나니 우선 안심이 되었고요
오늘 일은 마음이 아픕니다
제가 뭘 잘못한건가란 죄책감도 들고 아이가 느꼈을 감정을 생각하니 얼마나 힘들었을까
가슴이 미어집니다
현철이가 잘 헤쳐나가길
바라고 담임 선생님이 잘 이끌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아이들 모두가 더 성숙해지고
모두가 건강하고 예쁘게 자랐으면 합니다
현철이 잘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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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호자에게 전화를 한다. 다독인다. 위로를 한다.
아이보다 더 힘든 것이 부모다. 그래도 차쌤을 믿고 잘 따라준 부모에게 고마움을 전한다.
 
“힘드시죠? 맞아요 힘들어요. 애썼어요.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이 있어요. 아이들은 어떻게든 살 겁니다. 그걸 지켜보는 어른이 더 잘해야 합니다. 아이가 보기에 괜찮은 어른으로 살아가야 할 의무가 우리에겐 있어요. 그것이 현철이를 위하는 거에요. 오늘 정말 애쓰셨어요”
 
수화기 너머 흐느끼는 보호자의 목소리가 들린다.
“선생님 정말 고맙습니다.”
 
어제 정말 큰 고비를 넘겼다. 고비가 더 있을지 아닐지는 모른다.
 
아이들과 함께 오늘 하루 다시 시작한다. 이것이 교육의 현실이고 교실의 생생한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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